조희성님의 발자취
조희성 선생이 걸어오신 길
조희성 선생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것은 스스로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이라는 탈은 죄의 옷입니다. 조희성 선생은 그 죄를 완전히 이기고 하나님(부처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은 영생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조희성 선생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겠다는 평생의 기도대로 승리제단을 세우시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구세주의 사명을 다하시고 하나님의 신으로 다시 환원되셨습니다(승리진경, 보광과 재림 1:18-21)
선생이 죄를 이기고 하나님이 되기까지에는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곤경과 고난과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죽음과 영생의 문제에 맞닥뜨린 어린 시절
조희성 선생이 영생을 찾게 된 것은 계기가 있습니다.
중학교 2년 때 절친했던 친구의 돌연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철학적 근본 문제인 죽음과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겨울이면 죽었다가 봄이면 다시 살아나는 잔디처럼 내 친구는 다시 살아날 수는 없는가?’ 등등의 철학적 근본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중학교 시절 거의 모든 철학 서적을 다 독파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서를 통하여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모든 철학 서적이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논리를 전개하는 상당히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왜 죽는가?’라는 문제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알아보기 위하여 임종을 맞이하는 수많은 사람을 일부러 찾아가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탐구과정에서 사람은 누구든지 죽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을 때에는 삶의 의지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자신이 죽기 싫은 것처럼 전 인류의 소망이 되는 영생을 기필코 쟁취하여 인류에게 영생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남다른 사명감을 청년시절에 갖게 되었습니다.
조희성님은 원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죽음과 영생의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고 죄를 짓지 않은 자는 부활한다는 내용이 성경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차피 죽기는 싫지만 죽고 나서 부활하여 천국에 간다고 하니 차라리 이게 더 낫지 않는가 하여 김포읍에 있는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6.25 전쟁이 터져서 인민군들이 김포읍까지 내려왔을 때 선생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을 비롯한 재직자들이 전부 피난하여 일요 예배를 볼 수 없는 것을 알고는 선생은 교회 종을 쳐서 신도들을 모은 후 예배를 인도하다가 인민군들에게 체포되었고, 그 후 열성 예수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민군들에게 반동분자로 몰려 평양까지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 예수를 안 믿겠다면 살려준다는 회유의 말에도 끝까지 예수를 믿겠다고 하여 기어이 총살을 당하였습니다(승리진경, 탄생과 성도 1:13-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총알을 빗나가게 하는 기적으로 살아나 이북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신 후 반공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죄 없는 포로를 석방하라’라는 반공포로석방 운동을 전개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조치에 제1번으로 석방되었습니다(승리진경, 탄생과 성도 2장).
선생은 6.25 전쟁 때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으면서 하나님의 실존에 대하여 절실히 깨달은 바가 있어서 대한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성경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성경 공부를 통하여 성경은 죽어서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영생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죗값으로 죽는 고로 죄를 해결하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전력투구하게 되었습니다.
죄라는 것은 욕심에서 나오며(얍1:15), 욕심은 ‘나’라는 의식에서 비롯하므로 바로 ‘나라는 주체의식’이 죄의 뿌리라는 것을 알게 된 선생은 ‘나’를 버리기 위하여 결사적인 투쟁을 하였습니다.
선생은 군 장교 시절 1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허약한 병사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인 자신의 장교식사를 주고 대신 병사의 밥을 먹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배우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봉급을 털어 천막을 짓고 학용품을 사주면서 공부를 가르쳐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소재 일동중학교,
경기도 양주군 남면 상수리 상수중학교와 상수장로교회, 28사단 백학교회,
파주군 마지리 감리교회,
경기도 동두천 안흥리 농축기술중고(현 신흥실업고),
전남 광주시 상명여자고등학교,
전북 익산군 금마면 동고도리 금마재건중학교(현 익산 중고등학교),
대구 기술고등학교 등의 중고등학교 7개교와 수 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과의 운명적인 만남
선생은 이러한 희생생활로 폐가 나빠져 폐병을 앓게 되었고 몸이 무거웠습니다.
또한 6·25전쟁 때 폭탄 소리에 고막이 터져 한쪽 귀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박태선 장로님이 오셔서 배에 안찰을 해주시고 고막을 꺼내서 수술을 해주셨는데 실제로 꿈을 깨어보니 무거웠던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귀가 잘 들리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길로 선생은 박태선 장로님을 찾아가 전도관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생은 눈길로나 입술로나 마음으로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박 장로님의 가르침에 따라 죄를 짓지 않으려고 결사적인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나’라는 것이 죄의 뿌리라는 것을 알고 소위 ‘반대 생활’을 하였습니다. 반대 생활이란 ‘나’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나’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이른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세상의 흐름과 역행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즉 졸리면 잠이 안 올 때까지 안 잤으며, 졸리지 않을 때 잤습니다. 또한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나올 때까지 금식을 하였고, 먹고 싶은 생각이 없을 때 먹었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다 보니 열흘씩 금식기도는 떡 먹듯이 하였고, 30대 초반에는 30일씩 14번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그것도 13번째는 자갈을 깔아놓고 그 위에 무릎을 꿇고 금식기도를 하였고, 14번째는 유리병을 깨서 칼날처럼 날카로운 유리 조각 위에 무릎을 꿇고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유리가 정강이를 뚫고 들어와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꼼짝도 하지 않고 30일간 금식기도를 하고 보니 피는 응고력이 있는고로 죽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승리진경, 회복 3:8-21, 탄생과 성도 4:15-16).
그러나 30일간 금식기도를 해도 어느 정도 ‘나’를 이기기는 했지만, 완전히 ‘나’를 이기지는 못하였습니다.
이긴자가 되다
그러다가 해와이긴자로 불리는 홍업비 권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홍 권사님은 경기도 소사 노고산 중턱에서 ‘밀실파’라 불리는 신앙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홍 권사님은 박태선 장로님이 해와이긴자로 키우신 분으로 전도관에서 고도의 연단을 받은 후 이긴자가 되어 천 리 떨어진 사람의 마음조차도 거울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승리진경, 탄생과 성도 5:7).
홍 권사님은 소래산과 노고산 중간쯤에 위치한 밀실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명령에 따라 아담이긴자를 키우는 역할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홍 권사님은 자신을 따르는 신앙인들에게 과거에 행한 일을 생각하는 것은 ‘뒤돌아보는 음란죄’, 미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예산하는 음란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관심의 음란죄’라고 하면서 오직 하나님이 주신 생각만 하여야 되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행동만 해야 하는 자유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해와이긴자는 자유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은 주먹 따귀를 때리며 혹독하게 연단을 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아담이긴자 후보자들이 이 밀실을 거쳐 갔지만 아무도 아담이긴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선생은 박태선 장로님의 지시에 따라 밀실에 들어오게 되었고, 자유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모진 중노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면 죄가 되는 고로 스스로 중노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너무너무 힘든 중노동을 하게 되니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선생은 중노동을 하다가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쉬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일을 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경지를 넘어서 일을 하다가 의식을 잃고 까무러쳤다가 다시 소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중노동을 하다가 까무러쳤다가 몇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깨어났을 때 ‘어휴 힘들어서 내가 까무러쳤나 보다’라는 생각이 나는 고로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쉬고 싶은 생각과 반대로 쉬지 않고 곧바로 중노동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이기고 죽여 나가니 드디어 1980년 10월 15일 자신 속의 마귀를 완전히 죽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해와이긴자로부터 이긴자가 되었다는 인가(認可)를 받게 되었습니다. 해와이긴자는 조희성 선생에게 “네가 이긴자가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선생은 즉시 마음으로 “내가 이긴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희성이라는 마귀를 죽이고 좌정하시니 하나님이 이긴자가 되셨나이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해와이긴자는 “또 네가 이겼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도 선생은 즉시 “또 이긴 것도 내가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셨나이다”라고 마음속으로 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해와이긴자는 “네가 완성자가 되었다. 네가 하나님이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도 선생은 “하나님께서 조희성이를 죽이고 좌정하시니 하나님께서 완성자가 되셨나이다.”라고 답하였습니다(승리진경, 탄생과 성도 6:1-2).
선생이 이긴자가 되었다는 인가를 받고 산에 올라가니 공기가 춤을 추며 선생을 맞이하였고, 길옆 풀은 깡충깡충 뛰며 기뻐하였고, 나무들은 가지를 서로 엇갈리면서 춤을 추며 이긴자의 출현을 반겼습니다(승리진경, 회복 5:39-42)
이러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화엄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華嚴經第五十九卷 {화엄경제 59권}
菩薩摩呵薩 坐道場時 一切世界 草木叢林
보살마하살 좌도량시 일체세계 초목총림
諸無情物皆曲身低影 歸向道場 是爲第四未曾有事
제무정물개곡신저영 귀향도량 시위제사미증유사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모든 세계의 초목과 숲과 무정물들이 몸을 굽히고, 그림자를 낮추어 도량으로 향하나니, 이것이 네 번째 처음 있는 일이니라”
인류 구원의 역사 시작
선생이 이긴자가 된 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렸던 아담과 해와를 찾아 삼위일체를 회복하셨으니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다. 에덴동산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영생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생들을 보니 구원 얻을 자가 한 사람도 없다. 싹 쓸어버리자. 이 역사를 여기서 끝내버리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선생께서는 “하나님, 인간들을 제가 구원해 보겠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를 주신다면 희생제물이 되어 인류를 구원해 보겠습니다”라고 간청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는 너에게 달려 있으니 한번 해보라고 하여 인류의 구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선생께서 인류 구원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세상과 우리는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승리진경, 이긴자 4장).
이렇게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선생으로 하여금 죄를 담당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밀실에 있는 식구들의 죄를 선생께서 담당하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오늘은 한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이기게 하였고,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이기게 하여 한 번에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능력으로 키우셨던 것입니다(승리진경, 탄생과 성도 6:7).
그리하여 어느 정도 죄를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자 세상으로 내보내셨는데 바로 그날이 1981년 8월 18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