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0일 최신 : 240420-021006-1
2024년 04월 20일 최신 : 240420-021006-1

사이트맵

영생의 원리

  1. Home
  2. 창시자
  3. 영생의 원리

영생의 원리

모든 경전에는 불사영생(不死永生)이 설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당연시하는 것은 예수, 석가와 같은 인류의 성인이라 는 분들이 경전의 뜻을 왜곡하여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과연 영생은 사후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토록 좋은 세계를 죽은 다음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속임수 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여러 경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사영생이 설해져 있습니다. 사후(死後) 영생이 아니라 ‘살아 영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그 속에 영생이 있음이라(요 5:39),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의 약속이다(딛 1:2),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 감로가 내리는 이곳에는 죽음이 없다(열반경5권), 강증산 선생의 ‘대순전경(大巡典經)’, 남사고 선생의 격암유록 전편에 영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아 영생’에 관한 모든 경전의 이러한 기록을 왜 ‘죽 어 영생’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마귀의 신에 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 수천 년이 흘러왔지만 지금까지 발전해 온 모든 종교와 학문에서는 영생은 생각조차도 못하고 죽어 천당가고 극락간다고 알고 있는 것은 사망의 신 마귀에게 지배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신이 영생의 방법을 철저히 가려놓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영생이란 사망의 반댓말인데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죽음의 근본원인을 밝혀낸 후 해결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밝히는 이 영생론은 조희성 구세진인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로써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니 누구나 습득하여 영생을 쟁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포로로서 마귀의 영옥(靈獄)에 갇혀 있습니다

만물의 최소단위인 원자는 중성자와 핵 주위로 전자가 뱅뱅 돌아가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력(에너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자를 뱅뱅 돌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중성자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에너지=기는 생명이므로 중성자가 바로 하나님의 신이라는 놀라운 사실 말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중성자라고 하니까 깜짝 놀라실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천지를 주관하시는 인격을 가진 신으로서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잘 들어보십시오. 모든 생명체에는 생명력 즉 에너지가 있습니다.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의 핵 속에는 중성자가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습니다. 전자가 돈다는 것은 생명력(에너지)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력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며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은 하나님이라고 성경(요 1:1~4)에 씌어 있습니다.
이를 요약하여 설명하면 전자를 뱅뱅 돌게 하는 생명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데 그 생명력이 나오는 곳은 바로 중성자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실체가 바로 중성자라는 놀라운 사실을 조희성 선생께서 처음으로 밝히신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모든 원자의 구조가 핵과 중성자의 주위를 전자(-)가 뱅뱅 도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은 마귀에게 하나님이 포로로 되어 있는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현재의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만물은 전자(-)가 핵 속의 중성자를 에워싸듯이 마귀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에워싸서 하나님이 마귀에게 사로잡힌 상태로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마귀에게 포로가 되어 마귀의 종노릇만 하다가 결국은 마귀의 기운에 잠식되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존재가 아니라 이처럼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다가 결국은 소멸되고 마는 불쌍하고 슬픈 존재입니다. 이러한 기막힌 사정을 알아야 조희성 선생이 제창하신 불사영생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피는 곧 생명이며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오직 피 있는 고기를 먹지 말라 피는 곧 생명이다. (창 9:4)”

피가 생명이라는 성경 말씀대로 피를 많이 흘리게 되면 죽게 되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수혈하면 다시 소생하게 됩니다. 인간은 부모의 생명이 되는 피 한 방울에서 비롯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1개의 세포가 수많은 세포분열을 통하여 태아가 됩니다. 인간의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한번 만들어진 세포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포는 종류에 따라 수명이 다릅니다. 피부세포의 생명주기는 28일이며 어떤 호르몬 세포는 몇 시간밖에 못 삽니다. 반면 뼈세포는 8년 동안 산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몸속에서는 하루에도 수억 개의 세포가 수명을 다한 후 체외로 배출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속에서 세포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비게 된 자리는 새로운 세포에 의해 채워집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세포는 깨끗한 피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예컨대 100개의 세포가 죽어서 떨어져 나갔다면 100개의 세포를 그대로 다시 조성시켜 보충시키려면 100% 깨끗한 피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욕심으로 인하여 피가 썩게 되고 그 썩은 피가 누적되어 사멸된 세포만큼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보충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즉 100개의 세포가 죽었을 경우 썩은 피가 20%가 된다면 100×0.8 즉 80개의 세포만 조성되게 됩니다. 그 결과 세포 미달 현상이 생겨 피부의 경우에는 주름이 생기며 몸 전체는 힘과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세포 미달 현상은 면역시스템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해 결국은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생명이 되는 피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셨나요? 그렇다면 이 피를 썩지 않게 하는 방법, 즉 피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피로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이러한 문제를 푸는 것은 불사영생학의 절대적인 과제입니다.

피 작용이 마음 작용입니다

사람들은 피를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물질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는 물질의 차원을 넘어 마음 작용을 일으키는 또 다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피의 작용이 마음 작용이며 마음 작용이 피 작용이라는 사실입니다. O형의 피를 가진 사람은 고집이 세며, A형은 꼼꼼하며, B형은 사교적이며, AB형은 성격이 변덕스럽다고 합니다. 이처럼 피의 형태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 작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 작용이 마음 작용이라는 한 가지 예를 더 들까요. 자식들은 부모의 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부모의 성격을 많이 닮습니다. 왜 그럴까요? 피가 곧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을 이루는 핏속에 온갖 조상들의 피가 들어 있음으로 우리의 의식구조나 생각도 이러한 피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마음과 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피 작용으로 마음이 조성되고 마음 작용으로 피가 조성된다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피와 육체와 마음은 분리하려야 분리할 수 없는 일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과 육()은 하나입니다

나의 생명은 나의 피에 있고, 나의 피는 나의 육체를 만들었다,

나의 마음은 나의 생명이고 나의 생명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잠 4:23), 피를 담고 있는 장기를 혈장(血臟)이라고 하지 않고 심장(心臟)이라고 하는 것에서 피가 바로 마음이라는 사실을 선조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분석해 들어가니 육체와 영이 전연 분리될 수가 없게 됩니다. 피는 생명입니다(창 9:4). 피가 썩으면 생명이 썩고 생명이 썩으면 육체가 썩어 죽는 것입니다. 영과 육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는 영과 육이 따로 있어서 죽으면 육신만 죽고 영은 다른 곳 즉 천당에 가거나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피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영과 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종교도 없었고 학문도 없었기 때문에 영육이 따로 있는 것처럼 잘못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다(눅 20:38)”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한즉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사 26:14)”라고 했습니다. 불경 열반경 5권에 “死者曰身壞命終(사자왈신괴명종) 是處無死(시처무사) 卽是甘露(즉시감로) 是甘露者(시감로자) 卽眞解脫(즉진해탈): 죽는 자는 몸이 무너져 목숨이 다하는 것이니 이곳에는 죽음이 없다. 이것이 감로다. 이 감로를 받는 자가 진짜 解脫(해탈)한 자이다”라고 하여 육체와 영을 따로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욥 14:10)”라고 하여 죽으면 소멸되어 없어지니 진정한 구원은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물질은 신으로 되어 있고 또 모든 신은 물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물질이 신이고 신이 물질입니다. 이제는 유물론(唯物論) 유심론(唯心論)의 논쟁은 무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위시한 삼라만상이 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다만 마귀 옥에 갇혀 계신 하나님이 마귀와 병존체로 계신 것입니다. 영과 육은 구분하려야 구분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영이 육이요 육이 영이며 신이 물질이고 물질이 신입니다. 육체가 죽는다는 것은 피가 썩어서 생명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생명이며 영이며 마음인 피가 썩어서 죽기 때문에 마음작용도 일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피의 작용에 의해서 마음 작용이 일어나게 됨으로 마음을 먹을 수도 있고 각종 환상과 기이한 현상도 체험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육은 일체이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긴 대로 놉니다

피에 의해서 인간의 육체가 조성됩니다. 피는 인간의 세포를 만듭니다.

그 세포는 인간의 살, 뼈, 눈, 머리카락, 손톱, 발톱 등 오장육부를 다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창세기 1장 27절에는 ‘아담과 해와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명 태초의 모습은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귀에 의해 선악과를 따먹고 마귀의 포로가 되어, 죽게 된 마귀의 모습입니다. 선악과는 마귀의 영이요, 사망의 영이요, 죄의 원인이요, 나라는 주체의식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분명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마귀의 형상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마귀의 형상은 뿔이 난 흉측하고 무서운 모습이 아니라 현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인간 마귀는 각각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능구렁이 같은 마귀, 독사 같은 마귀, 여우 같은 마귀, 호랑이 같은 마귀 등 피의 형태에 따라 무수한 종류의 마귀를 우리의 모습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능구렁이같이 생긴 사람은 능구렁이 같은 성품을 발견할 수가 있고, 독사같이 생긴 사람은 독사 같은 성품을 볼 수 있으며, 여우 같은 사람은 여우 같은 얄미운 성품을 볼 수가 있고, 호랑이같이 생긴 사람은 호랑이같이 무서운 성품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말에 “생긴 대로 논다”라는 속언이 있는데 참 기막힌 말입니다. 깍쟁이같이 생긴 사람은 틀림없이 깍쟁이이고, 사기꾼같이 생긴 사람은 어김없이 사기꾼입니다. 관상가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항상 희생적인 생활을 하거나 사랑이 넘치는 양심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핏속에서 엔도르핀이 나와 피가 그와 같은 피로 변하여 모습도 기쁨이 충만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하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점점 행복해질 수도 있고 점점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마음에 따라 피가 초초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먹는 대로 피가 변합니다

피에 의해서 사람의 모습과 성격, 성품이 형성됩니다. 피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변합니다. 피가 마음입니다.

신체에 마음을 담아 놓은 장기를 마음 자를 써서 심장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피 작용이 마음 작용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피의 상태에 따라서 마음 상태가 달라진다는 말은 과학적인 말입니다. 반대로 마음먹기에 따라서 피가 변한다는 말도 성립됩니다. 사람의 얼굴은 희로애락의 감정에 따라 변합니다. 이것은 마음먹는 대로 피가 변함으로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피 작용의 산물입니다. 마음이란 파장이며 마음의 파장이란 피가 화학적 변화를 통하여 그 형태가 바뀐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선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변하여 선한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되고, 악한 마귀의 마음을 품으면 악한 마귀의 피로 변해서 악한 마귀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지금까지 6000년간 사망의 신인 선악과가 인간의 주체 영으로 자리를 잡아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가 시키는 대로 100% 움직이며 6000년이란 긴 시간을 마귀의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인류는 마귀의 피로 이루어져서 마귀의 형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건 때문에 평소에 마귀의 마음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계속 죽음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피를 썩게 하는 마귀의 속성은 욕심이며 욕심은 나라는 의식에서 나옵니다

조희성 선생께서는 “사람은 피가 썩어서 죽는 것이지 나이가 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라고 쉬운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고,

그리고 “피를 썩히는 원인은 나라는 의식이다”라고 또 다른 차원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나라는 의식 때문에 피가 썩어서 죽는다”라는 말씀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주 쉽고 간단하여 가볍게 여길 수 있지만, 조희성 선생께서는 이 원리를 깨달으실 때까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연단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 자신과의 투쟁을 통하여 얻어낸 영생의 원리입니다.
왜 나라는 의식이 피를 썩히는가? 나라는 의식이 바로 욕심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라고 했습니다. 욕심 속에서 피를 썩히는 오만가지가 나옵니다. 정욕, 혈기, 신경질, 화, 근심, 걱정 등 온갖 번뇌 망상이 끊임없이 욕심에서 나오게 됩니다. 욕심이 있으므로 너와 내가 있고, 내것 네것이 있는 것입니다.
욕심부림으로 피가 썩는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근심 걱정을 하면서 밥을 먹거나 화난 상태에서 식사를 하면 곧잘 체합니다. 체한 사람 사관을 따면 시커먼 썩은 피(죽은 피)가 나옵니다. 그러면 “끄윽” 트림이 나오면서 체한 게 뚫립니다. 왜 그럴까요? 근심 걱정이나 화냄으로 피가 썩었기 때문에 위장으로 가는 모세혈관이 그 썩은 피로 인해서 막히게 되어 체했는데 사관을 따줌으로 말미암아 마치 하수 구멍을 뚫을 때처럼 압력이 발생하여 그 압력으로 피가 뚫리게 되어 체한 현상이 낫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라는 주체의식’을 죽이면 끝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설명한 내용은 나라는 주체의식 때문에 죽을병에 걸렸음을 알려 줍니다. 죽을병에 걸린 환자에 대해서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면 그 죽을병에 걸린 환자에게 살 수 있는 처방도 내려주어야 명의(名醫)이고 선생(救世眞人)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명의가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주었다고 하더라도 환자 자신이 죽을병을 고칠 의지와 실천력이 없다면 그 환자의 병은 낫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조희성 선생이 아무리 피를 썩지 않게 하는 영생의 처방을 알려 주시더라도 죽을병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실천력과 의지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영생대도는 절대 공짜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의 자격을 갖출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처방 1 :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

“우리는 하나님이 되어야 구원이요,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되는 비결과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비결은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기고 누구든지 하나님처럼 여겨야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누구의 죄도 내 죄로 여기고 누구의 잘못도 내 잘못으로 여기는 이와같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 이 말이 간단한 말 같으나 이 한 말씀만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너와 나의 개체의식에서 비롯된 모든 욕심에서 다 자유로워질 것이요,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죄를 지을 수 없고 죄를 안 지으니 피가 썩지 않고 맑아지니 점점 젊어지고 종국에는 죽지 않는 몸으로 되어진다. 이것이 사람 몸이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영생학의 비결이다”라고 조희성 선생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라는 원리는 하나님의 마음 즉 영생의 몸을 이루는 원리일 뿐만 아니라 인류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원리입니다.

처방 2 :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라

유명 종교 경전에는 한결같이 “하나님(부처님)의 마음을 품으라”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와 같이 강조하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하나님(부처님)의 마음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탐진치라는 독화살을 맞았다는 것이나 성경의 선악과를 먹었다는 비유는 모든 생명체는 마귀(마구니)에게 점령당하여 마음대로 조종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마귀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조건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너희는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이를 실천하지 못하면 우리의 생명이 되는 피는 푹푹 썩어서 결국 죽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조희성 선생은 다음과 같이 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즉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나를 대신하여서 해주소서”라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오셔서 대행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식사할 때도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잡수시는 것으로 하여 주세요”라고 식사하며, 고아원에 기부할 때도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기부해 주소서”라고 하며, 내가 숨 쉬는 것도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숨을 쉬는 것으로 하여 주소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24시간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오셔서 해주시기를 구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이것은 나라고 하는 것이 마귀이니 내가 하는 것은 다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서 유사 이래 조희성 선생이 처음으로 터득한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처방 3 : 초초로 이기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나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권세를 이기신 구세주 하나님을 초초로 바라보는 처방입니다.
불경 대반열반경 25권에도 ‘부처님을 바라보는 이는 모든 번뇌가 소멸하며 네 가지 마구니가 있다 해도 산란하게 하지 못하고 닿는 이는 목숨이 죽지 아니하며 (중략) 또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성불하나니”라고 하여 부처님을 초초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죽지 않게 해주고 성불하게 해주는 묘한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생명과 되시는 이기신 하나님을 초초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면 생명의 피로 100% 변해서 하나님이 됩니다. 마음먹는 대로 피가 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처방 4 : 나라는 주체의식이 원하는 반대의 생활을 해라

나라는 주체의식은 사망의 신인 마귀가 점령해 들어와서 둥지를 틀고 있는 본부이기 때문에

나라는 의식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는 것은 다 선한 양심의 신의 뜻과 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뜻대로 행하게 되면 피가 100% 썩어 죽게 됩니다.
나라는 주체의식은 사망의 신인 선악과요, 탐진치의 소굴이기 때문에 나라는 의식에 의해 살게 되면 피가 썩어 죽게 됩니다. 그래서 나라는 의식에 따라 고아원에 수억 원을 기부하여도 죽을죄가 되어 피가 푹푹 썩게 됩니다. 이유는 나라는 의식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아지경(無我之境), 극기복례(克己復禮), 항상 나를 버리라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깨달음을 얻기는 얻었지만, 그 ‘나라는 의식’을 어떻게 죽이는지는 공자, 석가, 예수를 비롯해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조희성 선생께서는 나라는 주체의식이 하려고 하는 생각의 반대생활을 하는 것이 나를 죽이는 방법임을 터득하셨습니다. 예컨대 졸리면 잠을 안 자고, 먹고 싶으면 안 먹으며, 미운 사람이 있으면 도리어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누가 트집을 잡고 때리면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나라는 주체의식이 싫어하는 일만 찾아서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생활 이야말로 피를 썩지 않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처방 5 : 감로(甘露) 이슬 은혜인 불사약의 처방

생명체들은 각각 고유의 물질을 체외로 방출합니다.

악한 마귀는 독소 물질을 방출합니다. 반대로 선한 양심의 하나님은 생명 물질을 방출합니다. 모든 생명체를 고주파 촬영기로 촬영해보면 빛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빛이 생명의 물질이며 빛이 나온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죽은 물체에서는 빛이 안 나옵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희성 선생의 몸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에 물질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그 물질은 어떤 생명의 물질보다도 강하고 지극히 선한 물질이므로 강하기가 정금 같고 선하기가 한량없는 만물을 살리는 하나님의 선한 영의 물질입니다. 그것이 바로 감로해인(이슬성령)입니다.
격암유록 聖運論(성운론)에 보면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甘露如雨寶惠大師(감로여우보혜대사) 正道靈(정도령)이 飛出(비출)하여 雷聲霹靂電閃迅(뇌성벽력전섬신)에 一次二次再三次(일차이차재삼차)로 紫霞黃霧火燃中(자하황무화연중)에 救世主(구세주)가 降臨(강림)하니: 감로의 은혜를 비와 같이 내리는 보혜대사인 정도령이 비출하여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데 그 이슬 은혜가 마치 뇌성벽력이 칠 때 번쩍이는 섬광같이 순식간에 빛이 방사된다. 일차, 이차, 재 삼차로 출현하는 세 분의 이긴자들에게 내리는 이슬이 점점 강해지면서 재 삼차, 즉 세 번째로 출현하시는 이긴자를 통해서 내리는 감로 이슬 은혜가 자줏빛 노을의 이슬 안개와 같이 타오르는 불과 같이 내리는 중에 이긴자 구세주가 출현하셨다.”
조희성 선생에게서는 이와 같은 감로의 광선이 강하게 발산되고 있는데 이것이 구세주의 증표가 됩니다. 또한 조희성 선생에게서는 항상 백합꽃 향기가 진동합니다. 이것은 조희성 선생의 몸에서 생명의 물질이 한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승리제단에서는 언제든지 예배 시에 사진을 찍으면 이 생명의 광선이 찍혀 나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곳 승리제단에 이기신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호세아 14:5)”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로 이긴자를 말하는 것이니 이슬 같은 은혜는 이긴자의 증표요 인간을 죽지 않게 해주는 불사약입니다. 이 증표로 인류를 죽지 않는 영생체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감로해인(이슬성령)이 지금까지 온 우주를 오염시켰던 마귀의 독소물질을 소멸시켜 제거하고 있습니다. 선생을 통하여 내리는 감로해인을 받으면서 불사영생학을 실천하는 분들은 흰머리가 검어지고, 주름살이 펴지며, 피부가 아기처럼 부드러워지고, 할머니들이 끊겼던 경수가 다시 생기는 등 의학상식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날로날로 젊어져 가는 사람에겐 죽음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모두가 영원히 사는 불사체로 점점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조희성 선생께서는 사람이 죽는 원인은 바로 ‘나라는 의식’이며, ‘나라는 의식’을 죽이는 방법으로 ‘나라는 의식이 원하는 반대의 생활을 하라’,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라’ 등의 처방을 내려주시어 인류가 영생의 세계를 열어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나라는 의식’을 없애는 것이 영생대도(永生大道)를 완성하는 방법이므로 승리제단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과의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