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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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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지아롱
조회 2,269회 작성일 14-01-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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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의 진실

태초에는 이 우주가 음과 양의 세계가 아니라, 중성의 세계였다. 또한, 그 세계는 어둠의 세계가 아닌, 빛의 세계였다.
오직 생명, 즉 죽음을 모르는 불멸의 영생만을 알았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모든 것은 다 선한 것들뿐이었다. 한편,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먹고난 이후, 에덴동산은 파괴되었고,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 갇혀버린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천지창조' 이다.

1)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진실
태초에 에덴동산에는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창조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원래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고로, 하나님, 아담, 해와 이 셋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삼위일체로써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위(三位)는 모두 같은 마음, 같은 피, 같은 형상을 입은 일체(一體)였던 것이다. 그런 고로, 아담과 해와는 원래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아니였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듯이,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창세기 1:26). 한편, 하나님의 형상은 남자, 여자의 형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중성이요, 성의 구분이 없다. 그런 고로,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아담과 해와의 모습이 남자, 여자의 형상이 될 수 없다. 그런 고로, 아담과 해와는 남자, 여자가 아니다.

창세기를 저술한 저자 역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던 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와 같이 잘못 서술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미 잘알고 있듯이, 인간은 자신의 경험의 범주를 벗어난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런 고로, 자신이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인의 입장에서는 죄인의 관점에서 확립된 기존 개념 안에서밖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창세기의 저자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잘못된 서술을 한 것이다 (창세기 5:2).

더 나아가, 하나님이 흙을 빗어서 아담과 해와를 만들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욕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흙을 빗어 사람을 만들었다면 (창세기 2:7),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해와를 버리고, 새로운 아담과 해와를 또 만들었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미 선악과를 먹은 죄인이 온 천지에 수없이 퍼져서 더 큰 죄를 더 많이 짓게 될 것임을 알았고,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6:5).

또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해와가 원죄의 씨앗이 될 것임을 인식한 자비로운 하나님이 였다면 새로운 아담과 해와를 반드시 만들었어야 마땅하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목적은 이 땅에 많은 의인을 창조하여 의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새로 만든 의인과, 선악과를 먹은 죄인중에서 어느쪽에서 의인이 더 많이 나올까 ? 의인이 더 많은 의인을 만들 것이라는 데에 대하여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덴동산이 파괴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태초에 이미 이 땅위에 낙원이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의인을 계속해서 만들지는 않고 이 세상을 포기하여 내 던지고, 죄인의 씨앗이 온 세상에 퍼지도록 놔 둬서, 죄악이 온 세상을 지배하도록 내 버려 두는 하나님이라면, 그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온 인류를 저주하고 있는 악독한 마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악독한 마귀가 아니다.

하나님은 아흔아홉마리 양을 놔두고 길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 나서는 자비의 영이요, 이른번씩 일곱차례 용서하는 관대한 영이다. 더 나아가, 한 차례 잘못한 것으로, 아담과 해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고, 자손만대로 저주하는, 그러한 악한 영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런 고로, 하나님이 흙을 빗어서 아담과 해와를 만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욕 돌리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흙을 빗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마귀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고로, 성경책을 보고자 하는 사람 이라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성경을 봐야 가리워져 있던 말씀의 진실된 의미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죄인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책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원래 뜻과는 상관이 없는 잘못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을 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밖에 있을 수 없다. 그런 고로, 오직 하나님 만이 성경의 주인인 것이다.

유사이래, 성경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성경의 해석자 곧 하나님으로 완전히 회복된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해석하려던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전부 옳은 길에서 벗어나 넘어졌던 것은 그들이 죄인의 탈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사야 1:3).

이제 가리워 졌던 진실을 말할 때가 왔다.

아담과 해와는 흙에서 나온 피조물이 아니다. 피조물이 아닐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모든 것을 창조했던 창조주였던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는 만물을 창조한 삼위일체의 영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고로, 그 영들은 처음 부터 같은 형상을 가졌고, 같은 피를 가졌고, 같은 마음을 가졌다. 즉, 태초에 세 에덴동산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마음을 의미하는, 곧 천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에덴동산에 있었고, 아담의 마음도 에덴동산에 있었고, 해와의 마음도 역시 에덴동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에덴동산이 각각 다른 에덴동산이 아니라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왜냐 하면,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가 삼위일체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존재로써,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였고, 전지전능의 권능으로 온 우주를 엄마와 같은 사랑으로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 였던 것이다.

한편, 아담과 해와가 마귀에게 포로가 되고난 이후, 삼위일체는 깨어지고,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던 당신의 힘과 권능을 잃고, 마귀의 지배하에 구속되어 버렸다 (요한일서 5:19).

그런 고로, 성경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세상의 있는 것과 (요한일서 2:15), 세상과 친구삼는 것이 모두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 4:4).

그러나, 이제 드디어, 하나님이 한국에서 잃었던 삼위일체, 곧 잃었던 아담과 해와를 회복하여 난공불락의 삼위일체가 완성되었다.

또한, 완성된 삼위일체 하나님이 현재 전세계의 마귀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중인 것이다.

2) 선악과의 정체
인류 역사 이래, 선악과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도 알지 못했다. 만약, 그가 알았다면, 그것을 벌써 제거하여 인류는 지금쯤 죽음이 없는 영생을 누리면서 살고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선악과를 통하여 이 땅에 왔기 때문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선악과가 사과, 혹은 복숭아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넌센스가 아닐수 없다. 잘 알고 있다 시피, 성경은 육적인 책이 아니라, 영적인 책이다. 그런 고로, 선악과가 사과나 복숭아 같은 세상의 과일이 될 수 없다.

선악과는 영적인 과일을 말한다. 또한, 영적인 과일은 곧 영인 고로, 선악과는 성령이나 악령같은 영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먹고난 후,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은 잘못된 기록이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먹기 전부터 이미 선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엿새동안 세상을 만드시고, 그 만든 것을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은 (창세기 1:31),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부터 이미 좋은 것은 알고 있었다는 뜻이며, 세상 천지에 좋은것만 있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있었다 (창세기 9:6). 다시 말해, 아담과 해와의 마음은 선하고 좋은 하나님의 영(靈)으로 가득 충만되어 있었다. 그런 고로,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를 먹기전부터 이미 선하고 좋은 것은 알고 있었음이 명확하게 입증된다.

사실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악한 것을 더 알게된 것이다. 그런 고로, 선악과는 아담과 해와로 하여금 악(惡)을 알게해준 것이다. 그런 고로, 선악과가 곧 악한 마음이다.

한편, 악한 마음이 곧 악한 영이요, 악한 영이 곧 마귀인 고로, 선악과가 곧 마귀이다.

또한, 성경은 뱀이 해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기 3:1). 그 뱀은 거대한 용을 가르키는데, 다름 아닌 마귀를 말한다 (묵시록 12:9). 그런 고로, 선악과와 뱀은 같은 존재이다. 뱀이 마귀라면, 선악과라는 것은 마귀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고로, 뱀이 곧 마귀요, 마귀가 곧 선악과요, 선악과가 곧 뱀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가 먹을 것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에덴동산 가운데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는 존재였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담과 해와를 넘어 뜨리려는 마귀임에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마귀일 수는 없다. 그런 고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다는 말은 넌센스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가 당신의 말을 들을지 안들을지 시험하기 위하여 선악과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물며, 이세상 죄인 인간들도 아이들이 먹으면 죽을 염려가 있는 먹기좋고 보기좋은 양잿물을 방 한가운데에 놔두고 "너, 이거 먹으면 안돼 !" 하고서 아이들이 부모 말을 듣을지, 안들을지 시험하는 부모가 있을 수 없건만 이러한 간악한 속임수에 빠져 길을 잃고 헤메는 사람들이 셀수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다.

앞에서 논한바 있지만, 선악과는 태초부터 하나님을 거역한 마귀였다. 다시말해, 멍텅구리 사이비종교가들이, 소위 "자유의지" 라는 터무니 없는 이론을 내세워가며, 성령을 대적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해와가 자신이 원해서 선악과를 먹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3:6).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만일, 해와가 자신이 원해서 선악과를 먹었다면 그 원하는 마음을 갖는 순간, 하나님도 역시 먹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졌다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는 같은 형상과 같은 마음과 같은 의지를 가진 삼위일체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 더구나, 아담과 해와 조차도 선악과를 동시에 먹은 것이 아니다. 해와가 먼저 먹고, 아담이 나중에 먹었다 (창세기 3:6). 그런 고로, 선악과를 원해서 먹지 않았음이 분명하게 입증된다.

이제, 진실을 말할때가 왔다.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를 먹고 싶어 먹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악과에 의해 먹혔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에 의해 점령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해와는 마귀에게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아담과 해와를 점령한 마귀의 무기는 바로 모방력(模倣力)이었다. 모방력은 마귀가 지닌 능력이다. 성경 기록에 보면, 아론이 모세의 지팡이를 파라오 앞에 던지자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 이에, 마귀들린 술객들도 역시 그와 같이 기적을 행하더라.... (출애굽기 7:10,11). 이와 같이, 태초부터 마귀에게는 창조력이 없는 대신에, 모방력이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마귀는 모방의 왕이었던 것이다.

그런 고로, 교활한 모방력을 통해 마귀가 하나님 행세를 하여 하나님을 포로로 잡았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육천년 전에, 에덴동산을 점령하는데 실패만 거듭했던 마귀가 하나님과 비슷한 모습으로 해와 앞에 나타났다. 그 때에, 해와가 마귀를 하나님인줄로 알고 바라 보게 되었고, 마귀를 바라 보는 순간, 해와는 마귀의 영(靈)에 점령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마귀에게 점령된 해와를 바라보는 순간 아담도 역시 마귀에게 점령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해와는 마귀 마음을 입으로 먹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입이 되는 눈으로 먹은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경은 영(靈)을 마신다 혹은 먹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 구절을 하나 예를 든다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2:13).

한편, 아담과 해와가 마귀에게 점령당하는 순간, 마귀의 영, 곧 나(我)라는 주체의식이 원래의 영, 의식을 누르고 아담과 해와의 마음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었고 또한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또한, 마음과 피가 일체인 고로, 아담과 해와의 마음이 마귀의 마음으로 변하는 순간, 그들의 피가 마귀의 피로 변하였다.

더 나아가, 몸과 피가 일체인 고로, 아담과 해와의 피가 마귀의 피로 변하는 순간 그들의 몸이 마귀의 몸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뭇잎을 기워 몸을 가렸던 것이다. 다시 말해, 마귀는 음양의 영, 혹은 암컷수컷의 영인고로 마귀에게 점령당한 이후, 하나님의 몸이었던 아담과 해와의 몸이 남자, 여자의 모습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몸이 변해버린 고로, 그들은 나뭇잎을 기워 몸을 가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사이비종교가들은 선악과를 먹고 나니까 그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어 몸을 가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논했다 시피, 그러한 해석은 엉터리 해석이다. 만약, 아담과 해와가 원래부터 남자,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굳이 몸을 가려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벗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다시피, 지금 이순간 까지도 아프리카에는 많은 벗고사는 부족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 고로, 몸을 가리웠던 직접적인 동기는 바로, 벗고 있음을 인식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몸이 바뀌었음을 인식해서 였던 것이다.

사실, 태초에는 아담과 해와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 곧 빛이었던 것이다. 그런 고로, 그들은 순식간에 하늘을 여기 저기 날아다닐 수도 있었고 몸을 움츠려 바늘 끝에도 설 수 있었고, 온 우주에 꽉 차게 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어떠한 고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원래 모습을 설명한다면, 생각 그 자체 였던 것이다. 그런 고로, 그들은 원래 절대적이며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귀에게 점령된 이후부터, 그들의 원래 모습과 권능을 잃어 버리고 오늘날과 같은 남자, 여자의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편, 삼위일체가 파괴되고난 후, 우주를 지배하던 권세가 하나님에서 마귀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 고로, 온 우주가 오늘날과 같은 양과 음의 세계로 변해 버렸고 음양의 권세가 온 우주를 뒤덮어 버리게 된 것이다. 극도로 미세한 원자 조차도, 음과 양의 지배하여 넘어가게 되었고, 더 나아가, 썩어 없어짐과 죽음이 이 세상이 왔다. 왜냐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상호작용은 소멸인 고로 죽음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이 생멸의 챗바퀴 속에 갖혀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육천년전에 일어났던 소위 말하는 `천지창조'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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