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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십자가를지지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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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승리제단
조회 3,121회 작성일 14-03-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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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단
 
예수는 십자가를지지않았다

빌라도는 예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고 하였다
  
◇◇빌라도의 무죄판결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빌라도가 예수를 탄압하고 핍박하여 십자가에 처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의 제사장격인 왕으로 세우려 한 사람이다.성경을 자세히 보면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의 왕으로 세워 이용하려 했으므로 유대인들을 설득하여 예수를 무죄 석방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나(빌라도)는 그(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한복음 18:39)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요한복음19:4)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라.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요한복음 19:6∼9) 이러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아 주면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였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보라 (예수는) 너희 왕이로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요한복음 19:12∼15)’라고 답하고 있다.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써 달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요한복음 19:19).
 
  십자가 처형은 예수를 살리기 위한 것
  빌라도는 유대 재판소 최고 고문이자 공의회 의원인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 요셉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고 자칭 구세주인 예수와 결탁하여 예수를 유대인이 기다리는 구세주임과 또 다윗왕의 혈통을 이어 받은 유다 지파의 사람 요셉의 아들(마태복음 1:1~17)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유대의 제사장격인 왕으로 세워 유대인을 통치하는데 이용하고자 하였다(유대의 경전 탈무드는 예수를 로마 병사인 판델라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위장이지만)빌라도는 예수에 대해 십자가 처형의 판결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유대인의 요구대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치 않으면 유대인들이 민란을 일으키고 또한 예수를 유대인의 율법대로 돌팔매질 등으로 즉결 처형할 것이기에 빌라도는 이를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요한복음의 기록들과 달리 다른 복음서에는 이러한 구전된 전승들을 대부분 묵과하고 예수가 핍박받는 내용만을 부각하여 기록해 놓았다. 그래서 실제 일어난 사실들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이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마태복음 27:2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의 율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을 ∼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요한복음 19:7∼9)
  그래서 빌라도는 오히려 예수를 살리기 위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것처럼 꾸몄다. 예수와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등 일부 에세네파의 예수의 제자들과 각본을 짜고 병사들로 하여금 예수를 핍박하며 처형하는 것같이 연극을 하게 하고는 예수 대신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게 하였다.    
  그런 까닭에 성경에는 로마 병사들이 예수를 핍박하는 것같이 나타나 있으나 오히려 예수를 위해 주는 장면이 다른 부분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만나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웠더라(마태복음 27:32).그리고 예수를 빼돌리고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예수 대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도 각본에 따라 학대하고 처형하는 것같이 연극하면서 기실은 각본과는 반대로 살려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위장을 한 대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다른 죄수들은 빨리 죽게 하기 위해 무릎 뼈를 꺾었으나 십자가에 매달린지 6시간밖에 되지 않은 예수(마태복음27:45)를 이미 죽었다고 하면서 무릎 뼈를 일부러 꺾지 않았으며(요한복음19:31)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죽은 시체로 생각케 하기 위해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는데(히브리성경 원전에는 가볍게 찔렸다는 뜻으로 찔린 상처로 기록되어 있다) 죽은 시체에서는 피가 굳어서 나오지 않음에도 산 사람처럼 찔린 상처로 피가 계속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도 죽었다고 선언을 하고 있다(요한복음19:34).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 대역자의 시체(실은 시체가 아니다)는 직계가족이 아닌 빌라도의 친구이자 공의회 의원인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 요셉에게 주었다(요한복음 19:38).
 
당시의 로마법에 따르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정식으로  장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실제로 보초들은 친척이나 친구가 죽은 자의 시체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지켰다. 그렇지만 절차를 크게 무시하고 빌라도는 예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에게 선뜻 내주었다(요한 19:38, 마가 15:45). 이것은 예수 측과 빌라도 측이 공모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입증해주고 있다.(행림출판사 간행 <성혈과 성배> 373페이지 참조)
 
  공의회 의원인 니고데모라는 예수의 제자는 예수 대신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여러 상처들을 치료하기 위해 죽은 시체에는 전혀 필요가 없는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알로에추출물)을 100근(40kg)이나 준비하였다는 기록이 요한복음19:39에 있다.
 
  또 붕대를 감거나 옷을 입히게 되어 있는 유대의 장례법과는 달리 몸을 세마포로 덮어 쌌으며(요한복음19:41) 치료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사람의 왕래가 없고 다른 사람이 사용한 적 없는 새 무덤을 사용(요한복음 19:41)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아두었다(마태복음 27:60)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로마법 상 공개된 장소에서 하게 되어 있는 십자가 처형을 아리마대 요셉의 개인 동산에서 하게 하였으며 아래 성경구절에서와 같이 약속된 몇 사람 외에는 동산 아래 멀리서 바라보게 하였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태복음 27 : 55). 유대의 풍습에는 개인의 옥내에는 허락없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4세기 초, 초기 신약성서들이 모두 불태워진 적이 있었다. 교황이 된 프랑스와 브리튼의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명령으로 신약성경이 재편집되면서 새로운 성경에 위배되는 4세기 이전의 성서들은 모두 몰수되고 불태워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없어진 초기 신약 성서 내용들 중에 일부가 1945년에 이집트 남부의 나그함마디 마을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밀봉된 항아리 속에 파피루스 두루마리로 발견되었는데 그 나그함마디 문서의 위대한 세트의 ‘대속론 제2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쓸개즙과 식초를 마셨던 사람은…다른 사람이었지 내가 아니었다. 어깨에 십자가를 졌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이 가시관을 씌웠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높은 곳에서…그들의 실수를…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무지에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 부활의 연극을 완벽하게 해낸 예수는 배를 타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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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후손으로 추징되는 싱클레어와 손자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 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한편 예수의 친척이 된다는 증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聖堂騎士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이 기록들은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발견된 바 있다.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써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를 제시할 수 있다.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그러한 내용들이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사기극이었음을 더욱 분명히 해주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되며 보관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이나 준비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알로에추출물)(요한복음19:40)과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거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기에 만들어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는 넌센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년 9월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쌌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이후 감정 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복음서에 있는 예수에 관한 묘사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다고 하는 것이 허구임을 유추하게 한다.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적은 예루살렘에 있는 기존의 유대교 세력이었다. 예수는 유대교의 장로회인 산헤드린에 의해 최초로 정죄되었다. 그 후 산헤드린의 장로들이 그를 빌라도에게 데리고 가서 재판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세 권의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는 유월절 밤에 산헤드린에 의해 체포되어 기소된다.
 
그러나 유대의 율법에 보면 산헤드린은 유월절 동안 모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Cohn,예수의 수난과 죽음, p.97).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의 체포와 재판은 산헤드린 앞에서 밤에 이루어졌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의 율법에 의하면 산헤드린은 개인 집에서 또는 성전 경내 이외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밤에 모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복음서에서는 산헤드린은 사형선고를 내릴 권한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를 빌라도에게 데리고 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사형선고를 할 권한은 있었다. 물론 그 사형집행방법은 십자가에 매다는 것이 아니라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산헤드린이 예수를 제거하고자 했다면 그 자신의 권한에 입각하여 그를 돌로 쳐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빌라도를 귀찮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예수의 죽음의 책임이 로마에 있지 않고 유대인들에게 있다고 덮어씌우기 위해 만든 각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대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압박을 받았던 이유는 예수를 유대인들이 죽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십자가 처형이 각본임을 입증하는 예는 다른 데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군중이 선택하는 한 명의 죄수를 석방하겠다고 빌라도가 제시한 제안에서이다. 마가와 마태복음에 의하면 이것이 ‘유월절의 관례’였다는데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의 권위 있는 학자들에 의하면 어떠한 정책도 로마인 측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예수나 바라바 중에 하나를 석방하겠다는 제안은 순전히 허위라는 것이다.
 
  빌라도가 폭도들의 위협에 마지못해 굴복했다는 사실도 허위다. 실제로 로마의 총독이, 그것도 빌라도처럼 잔인한 총독이 폭도들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거짓 꾸밈의 목적은 예수의 죽음에 대하여 로마인들은 아무 책임이 없으며 그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로마의 청중이 예수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성공을 이루었던 것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로마와 특별한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예수가 로마의 적들에게만 적용되었던 처형방식으로 로마법정에서 로마법으로 십자가에 달린 것은 유대교에 대한 죄 때문이 아니라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죄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유대의 독립을 위해 로마의 분노를 자극하는 어떤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THE DEAD SEA SCROLLS DECEPTION 참조).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죄목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모순투성이다. 현대의 학자들은 4복음서 중 오직 요한복음서만 십자가 사건에 대한 목격자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어떤 학자들은 영지주의적 성격이 농후한 요한복음의 저자를 예수의 처남이며 막달라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로 보기도 하며 요한복음을 4복음서 중 가장 신빙성 있는 복음서로 추정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발은 십자가 위에 고정되었으며 그의 다리는 부러뜨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적어도 이틀이나 사흘 동안은 십자가상에서 살아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십자가에 달린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죽었다고 선언되었다. 빌라도조차도 그렇게 빨리 죽은 사실에 놀라고 있다(막 15:44). 이는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이 위장된 죽음, 즉 조작극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 복음서에 따르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목마르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미리 신포도주에 적셔둔 해융이 주어진다. 신포도주는 소금냄새를 맡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는 일시적인 흥분제다. 상처를 입고 지쳐있는 사람에게 신포도주는 소생의 효과를 준다. 그런데 예수의 경우에는 그 효과가 정 반대였다. 해융을 맛보자마자 그는 유언을 하고 ‘죽었다’고 했다.
  신포도주에 대한 그러한 반응은 생리학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모종의 수면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수면제를 준 것은 그 죄수가 아직 살아 있었지만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고안된 책략의 한가지였음이 분명하다.십자가 처형에 책략이 있었음을 반영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요한복음서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 지라(요 19:41)’고 기술되어 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이 무덤과 동산은 아리마대 요셉의 개인 소유인 겟세마네 동산(마 23:49)이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유한 사람이며 예수의 숨은 제자였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따르면 십자가 처형은 여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멀리서(눅 23:49)’목격되었다. 따라서 십자가 처형은 공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개인 소유지에서 벌어진 개인적인 처형이었다. 개인적인 소유지에서의 개인적인 십자가 처형이었다면 눈속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거짓으로 꾸며진 십자가 처형이었으며 교묘하게 계획된 의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몇 명의 목격자들만이 참석하고 일반 대중은 복음서에 기술되었듯이 그 연극을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거리에서 보면 실제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누구였는지 분명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는 그가 실제로 죽었는지의 여부도 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연극은 본디오 빌라도 또는 로마 행정부의 어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묵인과 결탁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빌라도가 잔인하고 폭군적인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나 그는 아리마대 요셉과 친분이 두터웠고 뇌물에 약하고 부패한 관리였다. 그는 상당한 액수의 돈과 정치적인 선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보로 하여 예수를 살려주었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사기였다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있다. A.D 120년과 130년 사이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리아 학자 바실리데스라는 사람은 히브리어 성서들과 기독교 복음서를 두루 알고 있었고 이집트와 헬레니즘 사상에도 심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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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개에 해당하는 복음서 주석을 쓴 그는 당시에 십자가 처형이 사기였다고 했다.   그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키레네 시몬이 예수대신 십자가에 달렸다고 주장했다(Irenaeus,Five Books ...... against Heresies, p.73). 또 7세기경의 코란(이슬람교의 경전)에도 정확하게 이와 동일한 주장이 실려 있다.
  즉 어떤 대리인이 예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으며, 그를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그를 죽였다고 착각했을 뿐이다(코란 4:157).   이슬람교의 주석자들도 예수대신 시몬이 십자가에 달렸다고 기록했다.
  어떤 이슬람교 작가들은 예수가 벽 속에 숨어 대리인의 십자가 사건을 보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다음에 인용된 나그함마디 문서와도 일치한다. 「성혈과 성배」책자에서 ‘성혈(聖血)’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흘린 피를 뜻하고 ‘성배(聖杯)’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고 그 뒤 십자가 밑에서 ‘요셉’이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컵을 말한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 「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써서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혔다.
*박영진 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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