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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상 구세주는 ‘동방의인’‘감람나무’‘이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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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승리제단
조회 2,845회 작성일 14-03-11 20:04

본문

 
성경상  구세주는 ‘동방의인’‘감람나무’‘이긴자’이다.
 

  
예수는 성경에 예언된 구세주인가? 기독교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성경은 예수를 구세주로 예언해 놓지 않았다. 성경에는 구세주란 단어가 직접 기록된 곳은 없고 그 대신 임마누엘, 동방의 의인, 이긴자, 감람나무라는 이름으로 구세주를 예언하고 있다.
 
  ◇ 첫째 공식, 임마누엘이라는 존재는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한다.
  예수가 구세주라는 첫째 주장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사 7:14-15)” 이사야서의 위 구절처럼 마리아라는 처녀가 아이를 낳았으니 예수는 바로 임마누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예수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니 태어날 때부터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임마누엘은 죄인으로 태어났다가 의인이 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의 후반부에 “그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 때”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태어날 때는 악을 아는 존재인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으로 태어났다고 하니 임마누엘이 아닌 것이다.
 
  ◇ 둘째 공식, ‘동방의 의인’이어야 한다.
  예수가 구세주라면 ‘동방의 의인’이어야 한다. 이사야서 41장 1절 이하에 ‘동방의 의인’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즉 ‘동방의 의인’은 동방 땅 끝 땅 모퉁이에서 태어난 존재로 열국의 왕들을 다스린다고 기록되었으니 구세주의 대명사임이 분명하다.
  1950년대에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가 출현하여 ‘동방의 의인’을 언급하기 시작하니 기성 종단에서는 그에 대한 대응으로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동방의 의인이라고 갖다 붙이기 시작하였다. ‘고레스’는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킨 왕인데 만일 그가 ‘동방의 의인’이라면 열국의 왕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아 그는 ‘동방의 의인’이 아니다. 또한 예수도 열국 왕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으니 역시 ‘동방의 의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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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 셋째 공식, ‘이긴자’여야 한다.
  계시록에는 ‘이긴자’라는 용어가 7차례 등장한다. 그런데 ‘이긴자’가 구세주를 말하는 술어임은 계시록 2장 26절 이하를 보아서 알 수 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鐵杖)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 2:26-27)” 이 구절에서 이긴자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고 하였으니 구세주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동방의 의인’이 열국을 다스린다는 것과 내용이 동일하다. 따라서 ‘이긴자’와 ‘동방의 의인’은 동일한 한 존재 즉 ‘구세주’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는 계시록 이전의 인물이므로 ‘이긴자’에 당연히 해당되지 않는다.
 
  ◇ 넷째 공식, ‘감람나무’라는 상징에 해당되어야 한다.
  마지막 공식은 성경 호세아 14장에 있는 ‘감람나무’에 해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행목 같으리니(호 14:5-6)”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은 ‘이긴자’를 뜻하므로 그 ‘이긴자’가 ‘감람나무’와 같다고 하였으니 ‘감람나무’는 ‘이긴자’의 대명사이며 아울러 앞에서 ‘이긴자’가 ‘동방의 의인’이라고 했으니 ‘이긴자’=‘동방의 의인’=‘감람나무’라는 등식이 성립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감람나무’에 대해서 우왕좌왕하면서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즉 구약성경 스가랴서 4장 11절에 나오는 ‘감람나무’에 대해서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라고 하고 있다. 스가랴 4장에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에 대한 기록이 많이 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감람나무’를 상징하는 존재는 아니다.
  왜냐하면 ‘감람나무’는 미래에 나타날 존재에 대한 대명사이지 과거에 존재했던 인물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 계시록 11장에 나오는 ‘감람나무’에 대해서는 ‘모세와 엘리아’라고 설명하는 이중적 해석을 보이고 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중략)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3-6)”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 애굽에 있는 물 전체를 다 피로 변하게 한 재앙을 내린 사람이고, 엘리아는 3년 반 동안 비를 못 오게 한 기록이 있으니 그들이 맞다고 말한다. 그러나 계시록 11장의 ‘감람나무’는 지나간 과거의 인물들의 기록이 아니고 미래에 나타날 구세주에 대한 예언이므로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계시록 11장의 ‘두 감람나무’는 평범한 물을 생명의 물(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행사한 박태선 장로와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한 조희성 선생을 말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는 이사야 7장 14절의 ‘임마누엘’도 아니며, 이사야 41장 1절 이하의 ‘동방의 의인’에도 해당이 안 되며, 계시록 2장과 3장에 기록된 ‘이긴자’도 아니며, 스가랴 4장 11절과 계시록 11장의 ‘감람나무’와도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는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 구세주가 아니므로 기독교인들은 덮어놓고 성경을 믿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구세주가 누구인 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이사야 34장 16절 말씀대로 서로 짝이 맞아야 하며, 이치에 맞아야 하며, 하나님의 입장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무턱대고 성경에 쓰여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러한 성경 해석 기준에 맞는 말씀이라야 하나님의 말씀이다.*                           
김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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