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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영생 - “마음이 만들어낸 명약 플라세보(Placebo, 僞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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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2,281회 작성일 14-03-0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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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영생
 
 
“마음이 만들어낸 명약 플라세보(Placebo, 僞藥)”
 

누구나 항상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크건 작건 여러 병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고대 사람들에겐 병이란 일종의 재앙과도 같았다. 그들은 병을 악마나 동물들의 저주 등으로 생각했으며 그리하여 병이 생기면 부족의 샤먼(무당)을 찾아가 처방을 받았다. 이때 샤먼은 여러 가지 잡신을 쫓는 굿을 하거나 약초를 만들어 주곤 했는데 이때 사용된 약초가 대부분 ‘플라세보 즉 위약(僞藥)’이었다.
오랫동안 샤먼들은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 약이 아니라 ‘병이 치유된다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약초 또한 그저 그 마음으로 도달하게 하는 매개체로서 사용했던 것이지 그 약 자체에 특별한 치유효과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위약은 고대부터 상당한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으며 오늘날까지 의료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 이 플라세보 가 왜 이런 결과를 나타내는지 알아보자.
플라세보란 실제로는 인체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행하는 위장 의술을 말한다. 플라세보의 어원은 라틴어로 ‘만족시키는’ ‘즐겁게 하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플라세보 효과를 보는 환자는 약 30%~35% 정도라고 한다.
또 이 효과를 판별하기 위한 방법을 이중맹검법(二重盲檢法)이라 부르는데 이는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와 처방받는 환자 모두에게 이 약이 플라세보 즉 위약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제 3자가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플라세보의 이런 현상을 두고 정신적 착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좀더 깊이 살펴보면 놀라운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가짜 약을 먹고도 통증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서 통증을 없애주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이 약을 먹으면 내 병이 나을 것이다.’ 라는 긍정적인 생각에 따라 인체 내의 생리적 변화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까닭이다. 이런 긍정적 위약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약을 먹으면 통증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위를 자극해 소화불량이 생기는 수도 있다’고 일러두면 가짜 약을 먹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두드러기가 난다든가 소화불량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부정적 위약효과로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거라는 부정적 사고방식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또 이 플라세보 효과에 대한 사례는 아주 다양하며 더욱이 마음의 작용으로 진짜 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잘 알려져 있다. 라딘 박사라는 사람은 실험 대상자 20명을 방마다 각각 10명씩 두 방에 배치하고, 한 방에 있는 10명중 9명에게는 활력을 주는 암페타민을 투여하고 나머지 1명에게는 수면제를 복용하게 했다. 반대로 다른 방에서는 9명에게 수면제를, 나머지 1명에게는 암페타민을 투여했다.
그 결과, 첫번째 방에서 수면제를 먹은 사람은 그 방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더욱 활기찬 모습이었고, 두번째 방에서 암페타민을 먹은 사람은 그 방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마음에 의한 플라세보 효과가 진짜 약의 효과를 능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플라세보는 마음의 힘으로 치료하는 약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와는 반대되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을 노세보 효과 (nocebo, 逆僞藥, 라틴어로 ‘나는 당신을 해칠 것이다’라는 의미)라 한다.  이것은  무해한 것이지만 건강이 나쁜 증상을 일으키는 그 어떠한 것을 말한다.
노세보 효과는 어떠한 것이 해롭다는 암시 혹은 믿음으로 인하여 야기된 나쁜 효과를 말하는데 이 효과에 대해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예가 있다.
소련 철도국 직원 한 사람이 냉동차 속에서 일하다가 문이 닫혀 갇히게 되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그는 마지막으로 차가운 냉동차의 벽에 그에게 다가온 죽음의 상태를 기록 하였다.
‘몸이 차가워 온다. 그래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차츰 몸이 얼어 온다. 이제 정신이 몽롱해진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얼마 후 직원 한 사람이 냉동차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얼어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냉동차는 고장이 나서 내부의 온도가 섭씨 13도였고 산소도 충분히 있었다.
이 사례에서처럼 마음의 힘이 육체를 충분히 지배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이 힘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 지는 우리 자신 스스로가 잘 판단해야 한다.
불교 교리 가운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생각의 에너지들은 단지 정신세계의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현실에서 항상 적용되고 있다.
전 인류에게 가장 커다란 노세보 효과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다.’  란 3단 논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만 바꾸면 이 강력한 힘도 반대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플라세보 효과의 사례에서 보았다. 이처럼 마음먹음을 통해서 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에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이를 더욱 발전시켜 전 인류의 숙원이었던 죽음으로 부터의 벗어난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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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臥薪嘗膽)
승리제단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이 이미 1980년 10월 15일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 날은 창조주 하나님이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아담과 해와를 찾아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다시 완성된 날이다. 바로 이날 산천초목이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공기조차도 기쁨의 춤을 덩실덩실 추며 밀실 앞에 있는 풀과 나무들이 감사의 절을 구세주님께 드렸다고 한다.
여기에는 숨겨진 비화(秘話)가 있다. 하나님은 그날 구세주께 이 세상에 구원받을 인생들이 하나도 없으니 이대로 끝내자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구세주께서는 인생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식인고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크디 큰 자비심을 일으키시어 불쌍한 인생들을 다 구원해보겠다고 하나님께 간청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구세주의 뜻이다. 우리 승리제단 성도들이 아니 전 인류가 구세주께 무한 감사를 드려야 할 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인생들은 이러한 구세주의 사랑을 모르고 있다. 육천년간 갇힌 죄인을 살려주신 구세주의 사랑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육천년간 마귀의 포로가 된 채로 종살이를 오래 해서인지 완악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승리제단 식구들은 구세주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구세주의 사랑에 보답하는 일은 무엇일까? 자유율법을 잘 지켜 각자가 구세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유율법을 잘 지키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귀에 대한 복수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에 걸맞는 고사(古事)가 바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오왕 합려(闔閭)가 월나라를 집어삼키려고 쳐들어갔으나 패하고 독화살에 맞아 죽으며 아들 부차(夫差)에게 “너는 이 아비를 죽인 원수가 구천(勾踐)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고 당부했다.
 
부차는 그때부터 장작 위에서 자고(臥薪) 사람을 세워두고 방을 드나들 때마다 “부차야, 아비 죽인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했다. 부차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구천은 미리 오나라를 공격했지만 부차에게 크게 패하고 회계산[會稽山]에서 항복하게 되었다. 포로가 된 구천 내외는 부차로부터 갖은 모욕을 당하고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되기를 맹세하고서야 겨우 목숨을 건져 월나라로 귀국하게 되었다.
돌아온 구천은 부차에게 당한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옆에 쓸개를 매달아두고 항상 이것을 씹으며(嘗膽),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고 자신을 타일렀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는 이렇게 생겨났다. <사기(史記)><월세가(越世家)>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의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마귀에게 당한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자신의 침대를 장작삼아, 벽에 걸린 장식물을 쓸개삼아  하나님의 원수, 마귀에 대한 분노를 매일 되뇌이며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다.*  김종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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