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무상 諸行無常 제법무아 諸法無我 론은 마군이의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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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수리
    키 마스터

    작성자 : 송근호 Date : 2014-03-10 22:26 | Hit : 9,235
    석가모니불은 죽기전의 마지막 가르침인 열반경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론(論)은 진리가 아니고 참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가르친 방편설 이라 하였다 그러자 지금으로
    치면 학.박사급 제자가 험한소리로 석가모니를 마구잡이로 비난해대는데 그말의 대략은 이러하다
    저 석가모니가 미쳤는가? 언제는 이세상 만물 모두가 영원한 것이 없고 절대로 변치도 않고 죽지도 않는 자아(自我) 는 없고 우리가 불멸의 자아(自我)로 믿고있는 것은 오온(五蘊)의 일시적 모임에 불과 한것 이라고 진리인것 처럼 말하고 가르치더니 이제는 모든 것이 변치 않고 영원하며 모든 법에는 자아(自我)가 있고 그 자아는 불변하고 영원하며 또 이세상은 괴롭지 아니하며 즐겁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자 석가모니 왈
    -선남자여 내가 처음부터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부처님의 세계 즉 이세계의 진짜 모습은 모든 만물이 영원 하며 진정한 <참나>는 불생불멸의 존재로 항상 즐겁고 지극한 쾌락 속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라고 가르친다면 나의 깨달은 바를 전달할수 있겠느냐 그래서 나는 방편으로 먼저 <제행무상/제법무아>와 같은 세상법을 먼저 말했느니라 -하였다
    사람들은 이세상에 태어나서 인생길을 갈 때에 세상만물이 무상(無常)하게 변해도 <나>라고 철석 같이 믿고 있는 <나>는 이세상이 변하고 내육신이 죽어 땅속에 묻혀 흙이 되어도 영원히 존재 할것이라 믿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믿음을 석가모니는 <제행무상/제법무아>론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깨뜨려 주고있다 즉 너희는 이 세상을 한번 봐라 세상 만물중 어느것 하나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이 있는가? 이세상 만물이 그런것 처럼 너희들이 절대적 불변자 라고 믿고 있는 개별적인 <자아>도 다르지 않느니라
    그러면서 석가모니는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에게 보는것이 <너>이냐 보는것이 너라면 보는 눈이 너이냐 네눈에서 너를 찾을수 있느냐 또 눈이 너라면 네눈이 사물을 안볼때 너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그러면 네눈이 너가 아니라면 만지는 것이 너냐 안만질때 너는 어디 있느냐 그렇다면 이런생각 저런생각이 너이냐 네가 생각을 안할 때 너는 어디 있느냐 너가 너를 인식하고 있지 않을때 너는 존재치 않는 것이냐 ………..
    위와 같이 석가모니는 우리가 믿고 있는 <자아>의 실상이 불변하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자아를 비롯한 모든 것은 이것과 저것의 모임과 흩어짐 그리고 다시금 또다른 이것과 저것의 모임과 흩어짐 일뿐 영원히 변치않는 원자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의 모임과 흩어짐 에 의한 일시적 모습과 구조물일 뿐이다 고정불변의 원자같은 것은 없다 그런고로 이세상은 연기(緣起)의 세계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나>라는 생각을 버려라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면)
    즉 우리가 <개별자아>라고 알고있는 <나>라는 <보는놈>은 항상 보고있는 것도 아닌놈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서는<나>를 주장 하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이놈은 올때에는 온곳이 없고 갈때는 간곳이 없다 이는 마치 텔레비존의 콜라광고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광고모델이 시원한 바다로 배경이 바뀌면서 시원한 콜라를 꿀꺽꿀꺽 마시는 장면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이 덥고 갈증이 날때에 자신도 모르게 콜라를 간절하게 원하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고는 갈증이 해결되면 콜라를 간절이 원하던
    <콜라생각>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또다른 생각들이 (오는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놈들이) 왔다가 갈때는 어딘지도모르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과도 같다 이와같이 사는곳이 일정치 않은
    <콜라생각> 같은놈들이 도적처럼 짠하고 나타나서는 주인처럼 행세하다가 사라지고 또다른 놈들이 계속해서 번갈아 가면서 <나>를 주장 하고있는 것이다 (잠시 주인노릇한 콜라생각은 어디로 간걸까?)
    이와같이 석가모니는 불멸의 자아를 믿고 그 자아에 집착하는 대중들의 생각을 돌이켜 무아론을 가르쳐 놓고선 죽기전에 참진리는 그게 아냐 이것이 참이고 지금까지 말한거는 모두 임시방편이야 하고 발표했어도 따르던 이들 이하 오늘날 까지도 연기론(緣起論)을 불교의 진리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 열반경에 <참나>는 부처님의 마음이 인간의 <참자아>이며 이러한 <참나>만이 영원 불멸 하는 존재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존재요 그러한 부처님들이 사는 세계는 영원히 즐거움과 쾌락을 누리는 세계다 라고 하였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오늘날 까지 비진리의 방편설을 고집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즉,
    불교의 가르침 속에 모든 만물과 사람 속에는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佛性)은 곧 부처님의 마음인데 내속에 이미 부처님이 내재(內在)해 있다면 그대로 부처님과 내가 다르지 않고 또 불생불멸의 부처님 처럼 나 또한 불생불멸 이어야 할텐데 무슨 이유로 부처님은 내속에 들어와서 꿈적도 않고 가짜 내가 부처님 집을 마음대로 해도 어찌하지 못하고 성불(成佛)하라는 소리만 하는가? 또한 부처님 세상은 <불생불멸 불증불감>의 세계인데 어째서 이세상은 연기(緣起)에 지배되는 것이냐 ? 입이 있으면 말좀해봐라! 그러나 석가모니 선생은 가고 없고 열반경에 이르기를 말법시대에 <연기법과 제행무상/제법무아>를 고집하고 믿는자는 나의 제자가 아니고 마군이의 제자라 하였다 그런고로 이러한 혼란은 부처님의 세계가 어찌해서 오늘날과 같은 죽음과 고통의 세계가 되었으며 무슨 연유로 내속에 존재하는 부처님이 수행을 해야만 다시 부처님으로 되돌아 갈수 있는 것이냐? 이러한 의문에 답이 있어야 연기론에 빠진 불제자들이 허무적멸에 빠지지 않고 모두가 성불(成佛)에 이를 것이다. 아래는 이러한 의문의 답론이다.
    불경과 성경의 논리는 서로 같다 다만 같은 말씀이 색깔을 달리 할뿐이다 그래서 필자의 글에는 성경 불경의 말씀이 서로간에 국경이 없다 몇가지 예를 들어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의 핵심주제는 영생이고 불경의 핵심은 성불이다 영생과 성불이 서로 다른가? 같은 말이다 어째서 그런가? 성경에 이르길 “너희가 성경을 자세히 보는 것은 그 속에 영생이 있음이라” 하였다 또한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의 약속이라> 하였다 이 말씀은 영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다른 표현으로는 <구원>이라 하고 구원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것처럼 기록 돼 있으나 실상은 동일말씀의 다른 표현 일뿐으로 이를 통털어 <구원론>이라 한다 그래서 구원의 방법을 기술한 말씀을 펼치면 다음과 같다
    1)너희는 성령(중생)으로 거듭나야 구원(영생)을 얻는다
    2)생명과일을 먹어야 영생(구원)이다
    3)부활함을 입어야 영생(구원)이다
    4)순교자가 구원(영생)을 얻는다
    5)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영생)을 얻는다
    6)안식일에 참례해야 구원(영생)을 얻는다
    위의 말씀들이 동일한 말씀의 다른 표현임을 깨닫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과 인간이 어떤 존재 인지를 알아야 한다 흔히 비성경적 성경해석으로 사람을 진흙을 빚어 만든 피조물로 잘못인식 되어 수천년을 잘못 전해진 때문에 생명경시 풍조와 유물론적 사유를 낳아 물질이 진화해서 생명이 탄생했다는 진화론 까지 낳았다 이는 그릇된 성경해석 때문으로 그 여파는 모태신앙이 대부분인 서구라파 사람들과 배다른 형제의 나라인 중동사람들을 위시로 해서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주역인 서구인들의 세계관이 되었다 .
    그런고로 올바른 성경해석론에 따라 근거 말씀을 인용하면
    01) 너희는 신들이니 모두다 지존자(하나님)의 자녀니라
    02) 천국이 여기있다 저기있다 못하리니 너희 마음속에 있느니라
    03) 하나님이 계신곳이 그어디나 하늘나라
    04) 하나님은 영이시다
    05) 하나님은 생명이다
    06)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다
    07) 피는 곧 생명이니 피채 그 고기를 먹지마라
    08)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원인이 없는 존재)
    09) 나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나중에도 있는자니라(불생불멸)
    10) 말씀으로 이세상 만물을 지었느니라
    11) 말씀은 곧 빛이요 빛은 곧 생명 이니라 (말씀=빛=생명=하나님=성령)
    위의 말씀들을 짝을 맞춰 보면 하나님은 불생불멸의 존재로서 원인이 없이 존재하는 자로서 우리인간은 그러한 존재의 자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세상 만물을 말씀으로 만들었는데 말씀은 곧 성령인 하나님인고로 만물자체가 하나님의 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속에 사람의 생명 그 자체이면서 마음으로 존재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속에 계시면 이미 영생이요 구원이요 하나님과 내가 다르지 않은데 왜 또다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것이냐 그뿐만 아니라 어째서 하나님이 나의 생명과 나의 마음으로 와계시는데 나는 하나님 마음도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며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라면서 내몸이 왜 아픈지 아프면 주인인 내가 스스로 고치고 그보다도 근본적으로 아플수도 없는 존재일 텐데 생명되는 하나님에게 살려지고 있는 이놈은 도대체 뭣이란 말이냐? 그리고 이놈의 힘이 얼매나 쎄길레 하나님도 꼼짝 못하고 계시면서 성령으로 거듭나라 영생할 생명과일을 먹으라는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냐? 그런고로 앞서 논한 부처님이 내속에 들어와 계신데 왜 다시 성불을 해야 하느냐 부처님이 내안에 계시면 이제 그대로 부처님이 뭣땜에 부처님이 아니고 사람노릇을 하고 있느냐 하는 논리문제와 같은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부처님을 꼼짝 못하게 하고 지맘대로 우리 인생을 끌고가는 이놈의 정체가 뭣이냐? 이를 성경에서는 욕심이라 하고 불경에서는 탐진치 삼독의 마음이라 하니 결국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그런고로 이물건의 정체를 분석해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말씀에서 욕심 자체가 욕심을 부림이 아니요 <나>라는 주체의식이 욕심의 근본뿌리 인고로 <너>와 <나>를 분별하는 <나>라는 주체의식이 곧 죄요 원죄요 선악과다 그러면 참나요 진짜 주인인 하나님/부처님 을 가두고 있는 <나>라는 주체의식이 어떻게 작용 하고 있는가를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나> 라는 개체의식의 마음이 작용하는 구조>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더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언서4장23절)
    心也者는鬼神之樞機也며 門戶也며 道路也니
    開閉樞機하고 出入門戶 하고 往來道路神이니
    或有善하고 或有惡하니 善者師之하고惡者改之하면
    吾心之樞機門戶道路는 大於天地니라 (화운 증산선생)
    <마음이란 신이 의존해 있는 존재의 근원처요 신이 드나드는 문이며 신명이 오고가는 길이니 <선한신: 하나님/부처님> <악한신: 나라는 주체의식>에 의해
    때로는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나니 선한것은 따라 배우고
    악한것은 회개하여 고치면 천지의 신명이 드나드는 우리마음의
    문호와 길은 천지보다 더 크니라>
    인간의 마음에는 온갖 생각이 드나든다 그것들을 이름하여
    <분노, 슬픔, 증오, 적개심, 고뇌, 번뇌, 시기심, 자존심, 오기심....등등> 이라한다
    사람들은 이 생각들 때문에 <분노하는 홍길동> <고뇌하는 홍길동> <슬픔의 홍길동>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마음의 주인인 홍길동은 분노가 아니요 번민도 증오도
    아니다 이것들은 객꾼이다
    이것들이 들어와 주인행세 하는 바람에 그렇게 보여지고
    불리웠을 뿐이다 분노가 들어오면 그 분노에 휘둘리고 증오가 들어오면 증오에
    휘둘려 분노하는 홍길동 증오하는 홍길동 이 되어 분노와 증오라는 객꾼에게
    마음이라는 방을 내어준다 이와같이 홍길동 이는 어떤때는 슬픔도 되었다
    분노도 되었다 증오도 되었다 하여 일정하게 정해진 모양이 없다(제법무아)
    홍길동이 어느날 마음놓고 있을때 분노라는 객꾼이 들어와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범 객꾼은 도망을 갔다(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홍길동이 갑자기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중벌에 처해야 한다고 하는데 당사자인 홍길동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객꾼이 저지른 죄를 꼼짝없이 뒤집어 쓴 것이다 이럴때
    죄는 미워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세상법 앞에서는 소용없는 것이다
    그런데 분노라는 객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걸까? 아니다
    마음의 작용은 피의변화를 일으키고 피의작용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리를 따르면 분노라는 마음의 작용은 그에 해당하는 피의변화를 일으키는
    고로 분노에 해당하는 피가 그몸속에 들어온 것이다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
    아니다 작용 반작용의 이치를 따라 마음의 작용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피의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고로 분노를 다른말로 분노마귀라 칭하는 것이다
    피속에 들어온 분노는 또다른 분노라는 객꾼들이 들릴때마다 이것들을
    내쫒지 않고 주인이 계속 휘둘리면 분노의 피가 점점 장성하여 나중에는
    툭하면 분노하는 홍길동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분노라 하는 객꾼에게 휘둘리지
    않을려면 홍길동이는 어찌해야 할까? 마음문을 단단히 지키면서 오고가는 객꾼들이
    무슨짓을 하는지 두눈 부릅뜨고 마음의 보초를 서야만 하나?(언제 까지 그저 바라만
    보고있을까? (위빠싸나/마음챙김?) 그냥 그저 보초만 서서는 해결이 안된다)
    최선의 수비는 강력한 공격이라는 말처럼 이미 몸속에 들어온 도적들은 우리들
    피속에 일정지분의 피를 형성하고 있는고로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수시로 작용
    시킨다 그러면 이미 지금까지 들어온 객꾼들로 생긴 그피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피로 바뀔까? 마음먹는 대로 그피가 변한다면 하나님 마음만 막 먹고
    다른마음은 들어올 틈도 두지말고 초초로 하나님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 마음이
    잉태한즉 하나님의 피를 낳고 하나님의 피가 장성한 즉 하나님을 낳을것이 아닌가?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지를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품던지 먹을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마음은 너와 나라는 분별심이 없는
    마음이요 누구든지 하나님처럼 여기는 마음이요 형제의 죄를 내죄로 여기는
    마음이요 형제의 사정을 내사정 으로 여기는 마음으로
    너와 나를 의식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런고로 하나님 마음을 품고 하나님 마음이 나를 주장하는 그 순간은
    하나님의 홍길동이 되는것이므로 시간시간이 초초로 빈틈없이 하나님 마음을
    먹는 사람은 그 순간은 하나님과 한몸일체로 신인일체(神人一體)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마음을 먹고있는 사람은
    엄청 바빠서 자기 주변에 신경쓸 시간이 없는것이다 왜냐면?
    이미 들어와 자리잡은 객꾼들의 피가 계속해서 저를 주장하려고 하고 이것들이
    한눈 파는 사이에 제무리를 불러들여 점점 세력을 형성해서 나로 하여 사망을 낳게
    하려고 하니 잠시도 마음을 놓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분노가 들어와 분노의 피를 형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피도 그와 같아서
    하나님 마음을 품고 먹을때 마다 하나님 피가 점점 장성하여 나중에는 하나님의
    몸으로 변하여지는 것이다 이것이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점점 자라서 사망을 낳는 세상 이치와 반대로 행하는 성령으로 거듭남의
    요체이다 (이는 곧 영육일체론의 적용례 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선공부 하는 옛 어른들 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세상이치에 따라
    순응하면 사람이 되고 까꾸로 하면 신선(하나님/신인일체) 이 된다고 한것이다
    이와같이 가짜주인에게 빼앗긴 마음자리를 하나님/부처님이 재탈환 하면 그것이 곧 성불이요 성령으로 거듭난 중생자요 가짜 내가 하나님을 위해 목 베임을 받았으니 순교자요 하나님이 나라는 주체의식이 되어 불생불멸의 존재자 이니 영원한 생명과일을 먹은 것이다 결국 말씀은 달라도 꼭같은 의미의 말씀인 것이다 그런고로 앞서의 의문에 답변의 결론은 부처님의 마음이 <나>라는 가짜마음 보다 힘이 약해 영적인 무덤 속에 갇혀 있었던 고로 나라는 의식의 포로가 되어 감옥문을 부수고 탈출해서 가짜<나>를 멸하고 마음의 주체의식 자리를 차지해야 비로소 성불 했다가 되고 성령(하나님) 으로
    다시 태어낳았다가 되는 것이다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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