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성탄절)

영적 예루살렘 소사(素砂)에 양력 8월 12일 성탄절이 이르니, 때는 이천삼년 여름이라. 주님께서 성전 안 2층 집무실에 계시니, 기독교인들이 주를 찾아뵙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 예수를 부정하고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하시오” 하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하나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10:22~24 의역)

태몽

조희성님의 모친께서는 조희성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이러한 꿈들을 꾸셨다. 어떤 사람이 계양산(桂陽山:인천 부평 소재)에서 모친을 향해 손짓을 하며 자기한테로 오라고 하길래 그 사람을 따라갔는데 산 정상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 순간 갑자기 오색찬란한 빛과 구름이 온 산을 뒤덮더니 흰옷을 입은 선녀들 10여 명이 하늘에서 날아와 모친에게로 내려왔다.

그 선녀들은 성모님 주위를 에워싼 후 빙빙 돌더니 일제히 성모님을 향해 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모친은 깜짝 놀라 “어떤 연고로 그러시느냐”고 하니까 선녀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의 태중에 계신 분은 인류 중에서 가장 크신 분인데 그분은 온 인류를 위하여 일할 위대하신 인물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태중에 계신 그분을 향해 예를 드리는 것입니다. 옥체를 잘 보존하십시오”라고 하였다.

또 이런 꿈도 꾸었다. 부평읍에서 서쪽으로 5리쯤 가면 계양산이 있는데, 이 산은 예로부터 명산으로서 많은 전설을 지니고 있는 산이다. 하루는 꿈에 계양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산봉우리가 셋이 있고 가운데 큰 봉우리의 정상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거기 있는 맑은 물이 근원이 되어 옥수(玉水)같이 깨끗한 물이 끊임없이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마음이 흡족하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것에는 편편하고 넓적하게 생긴 바위가 하나 있고 그 위에는 깨끗한 물동이와 바가지가 놓여 있어서, 이 맑고 깨끗한 수정 같은 물을 바가지로 떠서 물동이에 가득 채워 놓으니, 어디선지 하얀 비둘기가 날아와 물동이 위에 앉아, 모친은 그대로 물동이를 이고 감정리 집으로 내려왔다.

며칠 후에 다시 그 산을 올라가니 낯선 청년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저쪽을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니 새하얀 옷으로 예쁘고 아름답게 치장한 처녀들이 30여 명 줄지어 걸어오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기이하기도 하여 그 청년에게 “저 처녀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입니까?” 하고 물으니, “당신을 하늘나라로 안내하기 위하여 환영나온 선녀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참으로 기분이 좋고 마음이 홉족함을 느끼며 산을 내려왔다. 또 하루는 어느 동산에 올라갔는데 큰 옥수수대가 둘 있고 잘 영글은 옥수수가 한 대에 한 개씩 열려 있었다. 옥수수를 모두 따 자루에 담으니 자루 두 개가 가득하여 그것을 또한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나타나 하시는 말씀이 “장차 이 아이가 태어나서 성공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절대로 꿈에서 본 광경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모친께서는 이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계시다가 조희성님이 밀실에서 연단을 받고 완성자가 되어 영생(永生)의 역사를 시작한 1981년도에 와서야 비로소 조희성님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천도교인이자 한학자이신 외할아버지가 외손자의 이름을 짓다

조희성님은 경기도 김포군 감정리에서 1931년 8월 12일(음력 6월 28일 새벽 4시경) 농부이신 부친 조경남(曺慶男)과 모친 오지덕(吳只德)사이에 9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런데 증조부께서도 형제 두 분 중 둘째였고, 조부와 부친께서도 역시 둘째였으며 조희성님 대에 와서도 남자 5형제 중 둘째였으니, 4대를 계속해서 차자(次子)로 이어져온 것이다.

조희성님은 어렸을 때부터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외할아버지께 들어서 알고 있었다. 외갓집이 부평 ‘덴말’이라는 동네에 있었는데, 어릴 적에 외갓집에 가면 외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어린 것을 업으시거나 손을 잡으시고 장능산 지름길 다니시기를 좋아하셨으며,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와 필요한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절대로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한다. 어느 집에 가더라도 그냥 나오지 말고 엽전 한 닢이라도 놓고 나와야 한다.”라고 훈육하셨다. 외할머니께서 “이 영감쟁이 매일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먹을 것이 나오느냐?”고 성화를 부리셔도 외할아버지께서는 대꾸하지 않고 여전히 책만 보며 잠자코 계시면서 언행을 흩뜨리지 않으셨다.

외조부께서는 한문책을 마차에 싣고 산속의 절에 가서 다 읽으시곤 집으로 내려오시곤 했다. 한학자요 미국유학을 마치고 오신 분으로 영어회화도 잘 하셨다, 외손자 조희성님은 이런 외할아버지께서 천도교인(天道敎人)이셨다는 것을 후에 가서야 알았다. 마을 사람으로부터 칭송을 받으며 지내시던 외할아버지는 부평에서 김포 부락까지 약 30리가 넘는 거리를 늘 걸어서 왕래하시면서 외손자를 업고 다녔다. 외할아버지 댁 뒤안에 석청 꿀을 내는 벌들이 들어왔다. 그래서 해마다 석청 꿀을 따는데, 그 석청을 들고 김포 외손자 집에까지 갖다주시면서. 어머니에게 말씀하기를 “이 꿀은 아무도 주지 말아라. 둘째 아들 조희성이한테만 주어라.”고 신신당부했다.

철학과 사주팔자를 푸는 것도 잘 하신 외할아버지는 외손자가 신미생(1931년생)으로 태어났고 양띠 달(음력 6월)과 별수 날(음력 28일), 그리고 새벽 4시에 태어났으니까 으뜸 원(元)자 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임을 아셨다.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가 한학을 하시는 분이라 당신 외손자가 이 세상에서 큰일을 할 것을 아신 것이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외손자를 업고 가면서 당부한 것이, “희성아, 너 내말을 잘 기억해라. 너는 앞으로 엄청난 큰일을 할 사람이야. 그런데 이 말은 너희 아버지나 엄마한테도 얘기하지는 마라. 이걸 말했다가는 너는 죽는다. 너는 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어린 외손자에게 이와 같이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조희성님은 세상에서 큰일 한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외손자가 새벽 4시에 태어났다고 하여 새벽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려고 했는데, 새벽별은 밝은 별인고로 밝은 희(熙)자, 별 성(星)자로 ‘희성’이라고 작명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할아버지를 주장하시어 틀림없는 구세주가 갖게 될 이름을 짓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묵시록 2장 26절로부터 28절에 “이기는 자는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리리라. 또한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라는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조헌 선생의 예언(豫言)이 적중되다

조희성님이 태어난 부락은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 조헌(趙憲) 선생님은 조선시대의 사충신(四忠臣)으로 우리나라 역사책에 나오는 매우 훌륭한 충신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미리 아시고 조정에 상소(上疏)를 올리고 또한 직간(直諫)을 하였다고 함경도로 또 옥천으로 귀양을 가셨던 것이다.

그때 병력을 준비하였더라면 임진왜란 때 그렇게 비참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때가 임박하니 귀양살이 중에서도 의병을 모아 활쏘기 연습과 창칼 쓰는 법을 익히게 하였고 왜병이 쳐들어올 때, 너무나 활을 많이 쏘아서 열 손톱이 다 빠져서 나중에는 발가락으로 활을 쏘아 발톱도 다 빠지고 700명의 의병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를 하였다고 전한다.

이처럼 훌륭한 조헌(趙憲)선생은 “이 부락(감정리坎井里)에 세계에서 제일가는 큰 인물이 태어나는데 그분이 오시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예언하셨다고 한다. 조희성님의 친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친손자가 조헌선생이 예언한 인물임을 일찍이 아시고 금지옥엽으로 키워왔는데 6.25전쟁 때 인민군들에게 붙잡혀 포로로 북송된 이후 생사를 알길이 없는 가운데 친손자가 고향 김포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다가 결국 속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조희성님이 포로생활 3년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을 그토록 기다리셨던 할아버지께서 2개월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매우 애통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우리 희성(熙星)이가 장차 큰일을 할 골상을 지녔어. 손에는 임금 왕자의 손금이 있고, 가슴에는 북두칠성에 해당하는 점이 있으니 큰 인물이 될 것이 틀림없어.”라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친손자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박태선 기자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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