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앞에서 만난 하늘의 사람

작성자 : 최고관리자Date : 2014-02-24 11:22  |  Hit : 2,255  
 입문수기 죽음앞에서 만난 하늘의 사람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죽기로 결심하고 뛰어내릴고층건물을 찾았는데 그 순간 멀리서 남자 한 분과여자 한 분이 웃으면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저는 전도지를 건내받고 건물 옥상이 아닌승리제단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 고향은 김해시 장유면에 있는 외진 산골입니다. 저는 삼남삼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형들과 누나들은 셋째 누나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갔답니다. 제가 20살이 되어서야 연락이 가능하게 되었지요.저희 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땅도 없었고 집도 없어서 동네에서 버려진 다 무너져 가는 작은 집을 얻어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순진해서 한 동네에 사는 먼 친척에게 속아 돈 한 푼도 못 받고 돌아가실 때까지 이용만 당하시다 폐병으로 제가 15살 때 돌아가셨습니다.그래서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을 못 주셨지요. 어머니가 산나물과 도토리묵을 해서 생계를 겨우 꾸려나갔습니다. 그래서 하루생활하기도 힘들었지요.그리고 누나와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차로 가면 15분 걸리고 걸어가면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저희는 차비가 없어 울면서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당했답니다.게다가 우리는 도시락을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점심은 수돗물로 채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이 되었지만 우리는 도저히 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에 선생님께서 졸업장을 가져다 주셨고 저희에게 후에라도 꼭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라는 말씀을 하시고 가셨습니다.몇 년 뒤 저는 15살이 되었고 동네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였지요. 몇 달 후 셋째 누나도 일을 하게 되었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저희는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았습니다.그 당시 어머니는 술을 드시기 시작했고 저희들 월급의 반 이상이 술값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드셨답니다. 어머니가 술을 드시는 날에는 저희들은 집에 못 들어가고 동네에서 버려진 작은 가옥에 있다가 새벽녘에 들어가곤 하였습니다.거기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울다가 잠든 날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빈속에 일하러 가야만 했지요. 그나마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참 시간에 나오는 빵과 우유가 있었기 때문이랍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20살이 되었는데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래서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하였답니다. 그 당시 월급도 조금 올랐지요. 그러나 셋째 누나는 몇 달 후 그만 참지를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하루는 학원을 마치고 밤 10시쯤 집에 왔는데 불도 껴져 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나서 울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술을 드시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 버려진 가옥으로 가서 촛불을 켜고 모기향을 피워 놓으며 공부를 하다가 새벽녘에 들어갔습니다.공부하다가 그대로 자고 일하러 갈 때도 자주 있었습니다. 중학교 졸업장을 따고 며칠 뒤 신체검사가 나왔습니다. 다행히 면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군대를 갔으면 아마 승리제단에는 못 왔을 것이라 생각됩니다.그리고 2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장까지 딸 수 있었습니다. 기쁨도 잠시 뿐이었고 어머니께서는 쓰러지셨습니다. 검사결과 당뇨와 술로 인한 뇌출혈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해 시내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시켜 드렸습니다. 저도 직장을 김해시로 옮기고 병원에서 자면서 병수발을 하였지요.형님들과 형수님들도 수시로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일 년 뒤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겼고 직장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는 남해에 있는 큰 형이 어머니를 모시고 가게 되었는데 저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그 당시 큰 형은 작은 비닐공장을 하고 있었고 빚도 좀 있었습니다. 두 달쯤 되었을 때 저의 장래에 대해 큰 형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큰 형은 자기 밑에서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지만 저는 공부를 더 해서 다른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급기야 자기 말을 듣지 않자 저에게 손찌검을 하게 되었습니다.20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이제 와서 큰 형이라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형도 미웠고 탈출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아픈 어머니를 뒤로 한 채 눈물을 삼키고 큰 형 집에서 나와 김해에 있는 학원 동기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나왔습니다.그런데 배도 고프고 갈 데도 없었습니다. 마침 호주머니에 몇 천원이 있어서 빵과 우유를 사서 주위를 둘러보니 운동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운동장 계단에 앉아서 빵과 우유를 다 먹고 고민을 했습니다.여러 가지 생각 끝에 죽기로 결심하고 건물옥상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앞에 고층건물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멀리서 남자 한 분과 여자 한 분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전단지를 주면서 웃으며 무슨 말을 했습니다.그 말에 이끌려 무엇에 홀린 듯이 김해제단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잘해 주셔서 금방 21일을 마쳤고 김해 승사님의 권유로 부산제단에서 주님의 이끄심과 성도님들의 사랑 속에 신앙을 시작했습니다.첫날 예배를 볼 때 첫 찬송이 <세상에서 방황할 때>이었는데 가사가 너무나 와 마음에 닿아서 찬송 내내 울었습니다. 말씀 중에 ‘나’라는 의식이 죄고 ‘나’라는 의식 때문에 피가 썩어서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과 그래서 ‘나’라는 의식만 제거하면 영생한다는 말씀이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21일을 채울 때는 ‘나’라는 아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잠만 오더니 서서히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고생을 해야만 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그 동안 크고 작은 연단들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잘 넘어가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영생의 진리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힘들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보잘 것 없는 힘이지만 제단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승우 기자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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