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

존댓말

㉮“아저씨, 말 좀 물어보겠습니다.”(길 가던 젊은이가) ㉯“아버님, 식사하세요.”(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아버지가 편찮으십니다.”(손자가 할아버지에게) ㉱“회장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사회자가) 이 중 제대로 된 말은 없다.

㉮의 제대로 된 말은 “말씀 좀 여쭤보겠습니다.”이다. 요즘은 “말 좀 물어보겠습니다.”고 해도 괜찮은 편이다. “뭐 좀 물어봅시다.” 식으로 다짜고짜 묻는 것은 실례다. ㉯의 경우는 “아버님, 진지 잡수십시오.”가 맞는 말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언어에는 ‘말씀’‘진지’‘생신’‘연세’‘병환’ 같은 어휘가 실종되었다. ‘여쭈다’‘잡수시다’‘주무시다’ 역시 좀처럼 듣기 어렵다.

㉰의 경우는 “아버지가 아픕니다.”라고 해야 한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말할 때 아버지는 할아버지보다 손아랫사람이므로 낮춰 말해야 옳다. ㉱는 “회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가 옳다. 무조건 높이다 보니 행위나 물건까지 존대하는 경우이다.

국어학자들은 존댓말이 6.25 전쟁 이후, 산업화 초기에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나 먼저 먹고 나 먼저 가려는 마음이 앞서면서 남에 대한 배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존댓말을 쓰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낮아진다고 느낀다고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들고 온다.’고 했다. 남을 배려하는 말씨를 쓰면 남도 나를 배려하는 말을 하게 된다. 서울 신당초등학교가 존댓말을 공용어로 썼더니 싸우거나 선생님에게 대드는 일이 확 줄었다고 한다. 어린이들끼리, 그리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존댓말을 쓰면서 어린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존댓말을 듣는 인격체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의 덕분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맥도날드’에서 존댓말을 배운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서 처음 존댓말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한다. 존댓말이 살아나면 우리네 심성(心性)의 모난 부분도 많이 깎일 것이다. 인간은 말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말부터 다르다. 그들의 말은 늘 확신에 차 있고, 긍정과 낙관으로 가득하다. 성공했기에 말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말이 다르기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할 기미가 없는 사람들을 보라. 말에 자신이 없고 부정과 비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늘 남을 탓하고 남을 욕한다.

인간의 뇌세포는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말에는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 말을 하면 그 말이 뇌에 박히고 뇌는 척수를 지배하며 척수는 행동을 지배한다. 존댓말을 쓰게 되면 자연히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되고 그러한 자신의 말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됨으로써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게끔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그 결과의 수혜(受惠) 대상자는 결국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중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 된다. 예의 바른 사람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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