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호 승리회보 1986년 1월 12일] – 人乃天 思想의 檢討/인간의 신성(神性)의 진실성

작성자 : 최고관리자Date : 2014-03-21 20:40  |  Hit : 1,779  
제48호   승리회보    1986년 1월 12일 
『人乃天 思想의 檢討』  〔5〕
「 인간의  신성(神性)의  진실성 」- 人乃天原則= 人乃天思想
본인은 인간의 신성(內在的  神性= 人乃天原則)


에 관하여 상고할 때, 다음   논점(論點)에서 그 진실성을 믿어 마지않는 바이다. 
① 첫째로 기독교 등 유대교계열에서 믿는 성경에 의하면, 인간의 으뜸 조상에 관하여 가르침에 있어 인내천원칙(인내천원칙)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성서의 (창세기1:26)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말씀 하 시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하는 기록이 나오는 바, 여기서의 「하나님의 형상대로」(in the image of God) 라는 말이 바로 인내천원칙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기서의 「하나님 형상대로」라는 말은 인간의 원래 모습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이요, 인간의 본질(本質)은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즉 하나는, 같은 (창세기27:7)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고 기록되어 있는바 여기서의 생령이란 「산 령」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불가사(不可死)의 영적존재(靈的存在)였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신령(神靈)한 존재」였음을 나타낸다.  ② 둘째는, 이 불가사한 존재였다는 것을 더욱 뒷받침하는 자료가 되는 것으로, (창세기2:8~3:19)의 사이에서 인간의 원조 아담 . 해와가 하나님의 원수 마귀(사탄)의 꾐에 빠져 이른바 금(禁)한 실과(實果)로서의 선악과(善惡果 :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하였던 과정이 기술되며, 그때 이 후에 인간에게 죽음(死亡)이 있게 되었다  하는 기록은 인간의 원래 몸은 불가사의 신령(神靈)한 존재요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단적(端的)으로 잘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단적인 결정적 사실(決定的 事實)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원래 형상이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성서적 근거에 의하여 믿을 수 있다. 〔단, 인간을 가리켜 「흙으로 지었다」하는 구절은 오해(誤解)를 일으킬 수 있는 구절인 바, 이는 비유적 표현이라 하겠다. 그 이유는 인간을 흙으로 지을 수 있었으면 그 임간이 타락하고 마귀의 종자가 되었을 때, 그를 폐(廢)하고 새로이 얼마든지 지었을 텐데 그러하지 않은 것은, 그 인간의 원래구성이 흙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고 그 자체(自體) 신령 적 (神靈的) 존재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이 두 신령 적 존재(하나님의 2위)께서 마귀에 오염됨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에 대해 어찌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본인은 이것 이외의 방법으로는 인간의 근원(根源)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 바이다. 즉 영생교 승리제단의 인류 근원설명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② 둘째로, 불교(佛敎)의 가르침을 보면, 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가리켜 「하나님」이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 단적인 예가 이번에 나온 황산덕 (黃山德)박사의 「창조주의  복귀(創造主의 복귀」라는 책인 바,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이 창조주 하나님인 것이 명확히 설명된다. 황박사는 불교에 조예가 깊으신 분으로서, 우리나라의 신라시대 고승(高僧) 원효(元曉)의 가르침을 이용하며 인가의 신성 즉 창조주성(創造主性)을 단적으로 잘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창조주 하나님)이요,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은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인간은 상상(想像 : 마음) 으로는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의 신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마음은 갇혀있는 상태인 것을 나타낸다. 즉 마귀에 오염(汚染)된 상태 때문에 불가능과 생사병고(生死病苦)의 조건 속을 헤매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인간의 신성을 나타내는 훌륭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런 신 . 인간관 (新 . 人間觀)을 말하였을 뿐, 인간 이외의 딴 곳에 존재하는 신(하나님)을 논하는 법이 거의 없다. ③ 셋째로, 현대인의  심령과학 (心靈科學)중 인간의 잠재능력 (潛在能力)에 관한 과학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간의 신성을 느끼는 바이다. 즉 인간은 잠재적으로는 신(창조주)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잠재 능력적 면에서는 불가능이 없다고 하는 그 가르침은 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현대 각국에서 잘 나타내는 것이다.  현대 각국에서 잘 나타나는 심령과학 . 잠재능력에 관한 책들은 뒷받침한다. 예컨대, C. M Bristol 이 쓴 「 신념의 마력  (信念의 魔力 : The Magic of Believing), D. C l aster 가 쓴「정신력의 기적(精神力의 奇蹟 : The Miracle of Mind power)」등은 그것을 나타낸다. 그것을 근거로 한 인간(人間)개선론(改善論 : 잠재능력개발론 : 잠재능력개발론 (潛在能力開發論)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잠재적으로 신인 것이 명확하다. 

④ 넷째로, 인간 중에는 그동안「신인(神人)의 실제 예가 수없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신약 . 구약성서상의 여러 인물(모세, 엘리야, 예수 등)이 그것을 나타내거니와, 동양에 있어 특히 한국에서의 예로 수운 최제우 (수운 최제우 : 1824~1864년),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 1871~1909년)등이 그 예가 된다. 그리고 그 밖의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있는 신인의 예는 거의 부지기수(不知其數)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신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들에게서만 그런 능력(能力)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그밖에 어느 누구에서나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음(可能함)을 잘 가르쳤기 때문이다. 
종교인(宗敎人 : 宗敎指導者)들은 한결같이 「성령(聖靈)으로 거듭나라 )고 가르치는 경향이었는데, 이는 인간의 내재적(內在的) 신성을 가르치며 그 신으로서의 거듭남(再生, 再構成됨)을 가르치는 것이고, 그 가능성(可能性)응 나타내는 것이며 인간(人間의 神性:  內在的 神性)을 전제(前提)하고 가르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신성은 이런 의미에서도 명확하다 할 수 있다. 본인이 겪은 체험적 사실을 한 가지 이야기 한다면, 본인은 지난 1년 이상 지간에 조희성(曺熙成)선생을 살펴보았는데, 그는 완전히 신(神)으로 화(化)하여 있음을 체험한 바이다. 그는 외관(外觀)모습으로는 우리와 동일(同一)한 인간의 한 사람이었으나, 그의 신적능력(神的能力)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것임을 느끼는 것이다. 즉 그는 자유자재(自由自在)로 풍운조화(風雲造化)를 마음대로하며, 인간의 마음속을 다 들여다보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속은 훤히 내다보시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속에 있는 죄(마귀)를 죽여서 밖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의 행위(行爲)는 전체적(全體的)으로 신적(神的)인 것이다. 그는 결코 이미 사람(미련한 인간)이 아님 것을 확인하는 바이다. 우리나라 고서(古書 : 정감록 등 ) 상에서

「사이비인(似而非人: 사람 같으나 사람이 아닌 존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의 실제존재 예 (實際存在例)라 하겠다. 우리는 이런 실예(實例)를 통하여 인간의 내재적 신성 (人間의 內在的 神性)을 명확히 이해 할 수 있다.
⑤ 다섯 번째로, 한 가지 더 말할 것은 이 인내천원칙을 처음 단적으로 가르친 최수운대신사(崔水雲大神師 : 천도교에서는 그를 大禪師라 부른다)는 그 도(道) 깨달은 것이 아니고 49일제기도 생활을 2차에 걸쳐 행한 끝에 가르칠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그 이전에 20년 가까운 「道」탐구생활을 행한 것이 바탕이 된다는 사실, 그의 제 3교조가 되는 의암 손병희 (義菴 孫秉熙 선생께서도 역시 스승을 따라, 스승이 기도한 곳에 이르러 49일제 기도생활을 행한 후에 그 진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인내천의 원칙은 고도(高度)의 깊은 가르침(진리)이기 때문에 일상적 상식(日常的常識)으로는 그 진면목(眞面目)을 깨달을 수  없고 고도의 신비경(神秘境)에 이르는 기도와 수련(修鍊)중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며, 우리도 사안(事案)을 정밀(精密)하게 살필 때에만 그 진면목을 깨달을 수 것이다. 그러니 이는 상식이상(相識以上)의 깊은 지리인 것을 느껴 신중(愼重)한 마음으로 접근 (接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한 마디로 인내천 원칙은 고도의 신비진리 (神秘眞理)의 것이다.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