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恨을 풀어주시는 구세주 하나님

작성자 : 승리제단Date : 2014-02-23 19:34  |  Hit : 2,363  
 신앙 간증담 인생의 恨을 풀어주시는 구세주 하나님   염월순(83세, 권사. 부산 해운대구 거주)
저는 전도관 역사 초창기에 은혜를 입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앙생활을 해 왔으니 시간 양만 따진다면 반세기를 훌쩍 넘는 오랜 기간이 됩니다. 그러니 제 삶의 대부분을 하나님께 매달리는 생활로 일관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저의 친정은 불교를 믿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제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외로왔던 저는 18세가 되던 해에 결혼을 하여 딸 하나를 낳았는데 남편과의 사이는 그다지 원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자연스레 기성교회에 다니게 되었지만 예수님의 은혜로는 저의 힘든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제가 28세 되던 해의 어느 날 딸아이로부터 권유를 받고 박태선 장로님이 이끄시는 부흥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박장로님께서 ‘만세반석 열리니’의 찬송을 인도하시는데 그 음성이 너무도 듣기 좋았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님의 음성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영혼을 울리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인도하시는 박장로님의 모습이 구름 속에 둘러싸여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손만 보였는데 나중에는 손도 가려지고 완전히 구름덩이 뿐이었습니다. 구름 속에서 찬송소리가 퍼져 나오는데 구름과 함께 이슬비 같은 것이 내리는 것도 보였습니다.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신령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저는 그분의 힘찬 음성과 은혜로운 기운으로 인해 ‘이제부터 나의 죄악을 깨끗이 씻겠다’는 각오와 함께 희망이 샘솟았습니다. 기성교회에서는 건성으로 예배를 보았는데 이곳은 아주 딴판이었습니다.은혜창파 속에서 예배를 끝내자 박장로님께서는 각자 자기가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각자 교회로, 절로 돌아갔고 그 얼마 후 동대신동 장공장이 있었던 곳에 전도관이 설립되었으며 그때부터 저는 본격적으로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집에서는 남편이 저를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본시 남편은 외도를 일삼으면서 자기의 약점이 노출될까 두려웠는지 오히려 저를 윽박질렀는데 이제는 저의 신앙생활을 문제삼아서 모질게 압박을 가해왔습니다.남편으로부터 받은 육체적인 상처와 정신적인 고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섬뜩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남편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늘어놓으면서 저를 오히려 ‘음란한 년’이라고 뒤집어씌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매를 맞고 욕을 들어도 신앙을 그만둘 수는 없었던 것이, 모진 매를 맞을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강하게 전해져왔기 때문이었습니다.핍박을 견디고 난 그런 날에는 자주 꿈을 꾸었습니다. … 빨갱이(마귀)가 나를 막 죽이려는데 나는 죽지 않았고 자신도 모르게 하늘로 날아서 도망을 갑니다. 돌아보니 마귀가 된 남편이 칼을 들고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경주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니 박장로님께서는 설교 중에 ‘믿지 않는 남편과는 헤어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내게 하시는 것으로 받았고 이에 순종하여 남편과 헤어졌으며 그 이후는 결혼한 딸의 집에서 기거하게 되었습니다.이후로도 변함없이 신앙을 지켜나갔지만 박장로님이 행하시는 하늘의 역사는 저와 같이 나약한 한 인간이 따라가기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권능과 생수의 체험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늘의 역사는 꼭 박장로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전도관에서 힘든 나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정작 박태선님께서는 <밀실>에서 후일 승리제단을 설립하게 되시는 조희성님을 <완성자>로 키우고 계신 줄은 그 시절에는 그 누구도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하늘의 사람은 마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극도로 비밀리에 하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계속). 전도관에 다니면서부터 저는 참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어느날 꿈에서 영모님이 계시는 소사로 가고 있는데 남편이 쫓아와서 못 가게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막아도 물러서지 않고 ‘살 길은 여기밖에 없다’면서 남편에게 함께 가자고 권하였습니다.그러자 못이기는 체하고 남편이 따라 오는데 어느 곳에 이르니 대창으로 사람을 막 찌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 죽게 된 사람을 철판 위에 놓고 돌리며 굽는 것이었습니다. 저걸 보고도 여기 살겠느냐고 남편이 말했지만 저는 막무가내였습니다.그리하여 신앙촌 문에 막 다달아 급히 안으로 들어가니 문은 즉시 닫히고 말았습니다. 뒤따르던 남편은 결국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영모님을 찾아야 내가 산다’고 중얼거리면서 혼자서 헤매고 있을 때 면류관을 쓴 비둘기 한 마리가 구름다리를 넘어 날아와서 저를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둘기를 따라 다리를 넘으니 문득 비둘기는 없어지고 영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안찰을 받아 죄를 씻어야 하는데…’ 생각하니 그 맘을 아신 영모님께서 겨드랑이와 등을 세 번 두들겨 안찰을 해 주시고는 번호표를 주셨습니다. 아마도 천국으로 가는 번호표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왔는데 남편을 어찌하노’ 통곡하다 꿈에서 깨어났습니다.어느날은 주님(영모님은 예수를 주님으로 믿게 하셨음)이 운명하시는데 다시 오셔서 왕이 된다는 내용의 꿈을 꾸었습니다. 또 어느날은 저승사자처럼 새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내게 총질을 해대는데 문득 말 한 마리가 나타나 엉덩이를 내밀며 내게 타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엉겁결에 말의 꼬리를 잡았는데 저승사자는 계속 총질을 해대었고 말은 총을 피하느라 엉덩이를 사정없이 이리저리 돌려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말의 꼬리를 잡은 제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겨우 총질을 피해 살아남은 저는 고개를 넘어 소사 신앙촌에 닿았습니다. 부대처럼 생긴 곳에 철문이 있고 보초가 서 있어서 허락을 받고 들어가니 철문 안은 입구와는 딴판으로 흰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는데 <해와이긴자>라는 분이 나타나 왜 왔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왕이 오신다기에 왕의 그림자라도 보고 싶다고 했더니 동쪽 하늘에 광채를 발하며 너무도 크게 떠오르는 해를 가리키시면서 ‘저 해가 와서 왕이 된다’고 말해 주셨습니다. 저는 울면서 그곳을 떠나오다가 꿈을 깨었습니다.저는 전도관 생활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여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에서도 저는 늘 영모님을 생각하며 울고 지냈는데 그때는 영모님께서 조희성님을 완성자로 만드시기 위해 숨겨서 키우고 계신 줄은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너무도 열렬히 영모님을 사모하자 영모님께서 꿈에 오셨습니다. ‘네 고생을 내가 다 안다’ 하시며 위로해 주시고 ‘마지막이 되어 오라고 할 때 꼭 와야 한다. 그때는 유명달(부산제단 권사) 손 꼭 잡고 오라’고 하셨습니다.그러시던 영모님이 이듬해 2월 운명을 하시자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날이 되면 낙원에서 뵙겠지’ 하면서도 늘 울고 다녔습니다.그러던 중 딸을 찾아 일본에 온 친구 유명달 권사를 만나 꿈 얘기를 하게 되었으며 이후 유권사가 먼저 한국에 나간 후 저는 몇 번이고 갈급한 심정으로 유권사에게 전화를 내곤 하였습니다.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유권사로부터 ‘영모님처럼 이슬을 내리고 야단인 곳이 있는데 동경에도 예배를 보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당장 동경제단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하여 21일 입문 과정을 절반쯤 거친 후 본국으로 아주 돌아와서 이후 계속하여 조희성 주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92년 말이었습니다.승리제단에서 받은 기사이적과 은혜가 더 큰데 저의 간증에 전도관 시절의 이야기가 더 많은 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신이 떠난 전도관에서 헤매는 신앙의 동료들을 깨우쳐주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허망하기 짝이 없었던 제 인생의 굽이굽이에 꿈으로 나타나셔서 위로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생각합니다. 또한 영생을 현실로 이루어주시는 놀라운 조희성 구세주님의 권능에 감사하며 친구이자 영원한 신앙의 동반자인 유권사와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면서 끝까지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구술정리 / 이승우 기자 구술정리 이승우 기자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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