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확신을 부어주시는 주님

작성자 : 승리제단Date : 2014-02-23 19:46  |  Hit : 2,177  
 신앙간증담 영생의 확신을 부어주시는 주님     박경옥 (71세, 본부제단 권사)
  제 고향은 함경북도 함흥입니다. 1945년에 광복을 맞았지만 삼팔선이 생기면서 분단의 아픔 또한 겪게 되었지요. 물론 그 당시 제 나이가 열 살이었기에 잘 알지는 못했지만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알 수가 있었습니다.아버지께서는 광복 이전부터 포목상을 하셔서 남쪽에 자주 다녀 오셨지요. 그래서 서울이 살기에 좋은 곳임을 아시고 분단이 되자마자 식구들을 이끌고 월남을 시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월남을 시도하다가 그만 삼팔선에서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식구 모두 철창 속에 갇히게 되었는데 마침 밤에 허술한 경비를 틈타 도망을 갈 수가 있었고 산을 넘고 넘어 그렇게 고대하던 서울에 안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20대 때에 남산 밑에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박태선 장로님께서 남산집회를 하셨습니다.소문을 듣고 집회에 참석을 하게되었는데 은혜가 연결되고 기쁨이 충만하여 계속해서 집회가 있을 때마다 따라다녔지요. 그러다가 박장로님께서 이단으로 몰리셨고 목사들이 전도관 집회에 참석을 못하게 막아서 그후로는 집회에 참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세월이 흘러 90년대 초반쯤 어떤 사람의 권유로 대성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은혜체험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했었지요. 그리고 한 5년쯤 지났을까요. 영등포에 있는 롯데백화점에서 야간청소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한때 청소감독으로 있었던 차옥천 장로님의 전화번호가 수첩에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안부전화를 걸었습니다. 그후에 또 전화를 걸었는데 한번 역곡역에서 만나자고 하기에 무턱대고 역곡역으로 갔습니다.차장로님은 만나자마자 자기를 따라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막무가내로 조르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지요. 따라간 곳이 바로 승리제단이었습니다. 그때가 1998년 2월 28일이었죠. 차장로님은 저를 지하 1층 예배실로 인도하였고 이긴자 조희성님의 말씀을 비디오로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가운데 예배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다음날 오라고 해서 나왔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또 다음날 아침에도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밤일을 한 다음이라 피곤에 절었지만 무조건 나와야 한다는 그 말에 또 제단에 가게 되었습니다.21일 교육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항상 피곤에 절었던 터라 교육을 받으면서도 멍한 상태였고 또 뭐가 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긴자라는 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같은 말만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같고 또 자기 자랑만 하는 것 같아서 의심이 들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해가 안가더라도 계속해서 나오고 인내로써 참다보면 이해가 가게 된다는 차장로님의 말씀에 힘입어 꾸준하게 나왔지요.그런데 2000년도가 되니 희안하게도 이긴자의 말씀이 하나 둘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기성교회에서부터 애타게 찾아 헤매었던 영생의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 그 자체였지요. 나같은 죄인이 이러한 진리에 접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영생의 확신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항상 기뻐서 웃는 모습이 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답니다.얼마 후, 주님께서 옥중에서 나오셔서 단에 서셨습니다. 처음으로 직접 뵈었던 저로서는 감격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옥체를 이렇게 직접 뵐 수 있다는 그 감격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그리고 새식구 접견이 있어 2층 주님실로 안내를 받아 주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저는 참으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답니다. 제 나이 20대 초반쯤 되었을 무렵입니다. 부모님께서 일하러 나가신 사이 잠깐 잤는데 그만 연탄가스가 방문 틈으로 들어와 의식을 잃어버렸지요. 때마침 동네 사람들이 이를 발견하였고 저를 바깥으로 끌고 나와서 큰 채반을 둘러엎어 씌우고 찬물을 끼얹으니까 살아나더라는 겁니다.이 외에도 숱한 고비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슬하게 살아나곤 했지요. 이 못난 죄인을 살려주신 분이 구세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승리제단에 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저는 젊었을 때부터 유난히 다리를 자주 다쳐 다리가 온전치 못했습니다. 2002년 쯤에 답십리 쪽으로 야간청소를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새벽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타려고 길을 가던 중에 갑자기 왼쪽 다리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이 되면서 움직일 수가 없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도저히 걸을 수 없게 되었고 다리가 헐렁헐렁하게 되어버렸지요. 새벽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전철역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을 붙잡고 억지로 올라가서 집으로 겨우 돌아왔습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병원으로 간다고 차장로님에게 전화를 하고 또 주님에게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그렇게 조치를 취한 다음에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의외로 수술결과가 좋았고 일주일 만에 완쾌되어 퇴원하였습니다. 너무나 빠른 회복과 완쾌에 저 자신도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의 한없는 은혜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 후 예배시간에 주님께서는 제가 앉은 쪽으로에 눈길을 자주 주셨고 저는 감사의 눈물을 흘린 적이 많이 있습니다.하나님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했던 순간은 또 있습니다. 제게는 둘째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그 애와 함께 산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발을 잘못 딛는 바람에 나뭇가지에 팔이 걸려 팔이 어깨에서 탈골이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어깨가 붓기 시작하여 아이가 자지러질 정도가 되어버렸답니다.저는 급한 마음에 돈도 준비를 못하고 아이를 병원으로 바로 데리고 갔는데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먼저 내지 않으면 치료를 해줄 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그냥 데리고 왔는데 죽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그때부터 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매달렸습니다.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애걸복걸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의 어깨를 고쳐달라고 흐느끼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깨에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울음이 그쳤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고 아이의 어깨를 만져 보았는데 탈골된 어깨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겠습니까!저는 그 당시 분명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존재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승리제단에 와서 구세주 하나님을 뵙고 나서 사람속에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형제의 몸을 내몸같이 여기고 희생적인 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될 때 하나님의 뜻은 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구술정리 이승우 기자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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