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만난 하늘의 사람”

작성자 : 최고관리자Date : 2014-02-23 19:22  |  Hit : 2,209  
 신앙 간증담 “얼떨결에 만난 하늘의 사람”  저는 1924년 갑자생이니 세수 81의 노파입니다. 27세에 박태선 장로님을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만나 은혜를 입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제게서 신앙을 빼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정말로 허탈한 인생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제가 박태선 장로님을 처음 뵌 지 36년 만에 완성자이신 조희성 구세주님을 뵙고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되었으니 그 간의 세월이 주마등같이 떠오르며 감회가 새롭습니다.저는 일제강점기에 정신대 모집을 피하기 위해 15세에 조혼을 했습니다. 와세다대학에 유학 중인 지아비를 따라 일본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남편은 독립투사였던 가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이승만 정부에 대해서도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곤 했습니다.
부산제단/ 유명달 권사  
6.25 동란이 터지자 남편은 군에 입대하여 군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뱃속의 8개월짜리 아기는 유복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저는 생활방편으로 초등학교에서 문방구점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의 남편되는 장모씨가 제게 와서 공설운동장에서 박태선이라는 신령한 분이 집회를 여는데 함께 가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별로 관심이나 기대도 없이 따라가 보니 운동장은 대단한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뒤쪽에 앉아야만 했습니다.곧 집회가 시작되어 설교를 맡은 박태선이라는 분이 깨끗한 흰 와이셔츠를 입고 강단에 서서 찬송을 인도하기 시작했는데 나중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찬송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었습니다.유교 집안에서 자라 제사를 지내는 것 정도의 신앙심 밖에 가져본 적이 없는 저는 어리둥절한 채 앉아서 앞을 보니 이상하게 좀 전의 흰옷 입은 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진 젖소가 한 마리 그 자리를 차지한 채 찬송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찬송소리도 ‘음매, 음매’하는 소의 울음소리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저는 옆에 앉은 모르는 사람에게 “설교자가 왜 소로 변했어요? 소가 어찌 찬송을 하는 거에요? 당신 눈에도 소가 보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이 저를 미치광이 보듯이 쳐다보더니 갑자기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고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제게서 비켜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자리가 훨씬 넓어졌지만 저는 또 ‘사탄’이 뭔지를 몰라서 그것도 물어보아야 할 판이었습니다.그런데 단상의 소가 “저 끝에 앉은 아주머니 일어서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저를 사탄이라고 욕했던 여자가 “이 여자야, 일어나라”고 고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벌벌 떨며 강단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소가 아니고 사람이었습니다.‘이제 죽었구나’ 싶어서 간이 콩당콩당 뛰었는데 박장로님께서 “내가 뭐로 보였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제 눈에는 얼룩소로 보였는데요.” 하면서 저는 또 얼떨결에 “옆에 있는 아줌마가 저보고 사탄이라고 하는데 사탄이 뭡니까?”라고 시키지도 앉은 말을 묻기도 했습니다.박장로님은 제게 나이를 묻고 결혼을 했는지도 물었습니다. 제가 답을 하니까 박장로님은 “‘이 산과 저 산이 마주쳐 울려’ 라는 찬송가 가사 속의 산은 시온산이며 산이 마주치면 마지막이 온다, 그러니 꼼짝 말고 앞자리에 앉으라”고 지시하시고는 다시 간증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박장로님이 소로 보이고 ‘음매’ 하면서 우는 것도 들렸다고 간증을 하니 군중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찬송도 잘 부를 줄 모르는 제가 그날부터 3일간 밤샘 집회에 계속 참가하였고 그 후 자타가 공인하는 열심 신도가 되었습니다.집회 중에 열살 된 딸아이가 어린 동생과 함께 밥을 가지고 와서는 ‘엄마가 미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어디선가 자꾸 참외 냄새가 난다’고도 했습니다. 집에 가서 사 먹어야겠다고 했습니다. 달콤한 참외냄새가 은혜의 냄새인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어쨌건 그 날 참외 냄새를 맡았던 아이는 지금은 장성하여 평택제단에서 권사가 되어 저와는 신앙의 동지가 되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집회를 마친 후 저는 서대신동 전도관에 다니며 최고의 충성파가 되었습니다. 박장로님께서 제단에 오시면 머리에 안수를 해주시는데 그럴 때면 저는 온 몸의 장기가 다 쏟아지고 없는 허함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몸이 이루말할 수 없이 가볍고 상쾌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후 몹쓸 병에 걸렸을 때, 기도로 일시에 낫는 체험도 하는 등 많은 기사 이적을 겪으면서 전도관에서 신앙을 다진 세월이 36년이 되었습니다.박장로님께서 타계하신 후, 전도관 신도들에게는 너나없이 방황의 시간이 있었겠지만 그런대로 체계를 바로잡고 계속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날부터 밀실패의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은 밀실패의 두목 조희성이라는 사람이 흰 잠옷을 입고 지하실에서 콜라에 약을 타서 신도들의 정신을 혼미케 한 후 나쁜 짓을 일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신앙을 하다보면 패가 갈리는 일들이 없지 않기 때문에 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다 듣지 않았습니다. 조희성씨가 군인 중위로서 신앙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것을 본 적이 있고 온양전도관의 관장으로 시무할 때 열심히 은혜를 갈구하는 것도 알았고 제 딸 또한 신앙촌 메리야스 공장에 다닐 때 조중위와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나쁜 소문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어느 날, 처음 저를 신앙길로 인도했던 장모씨가 역곡에서부터 찾아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조희성씨에게 가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미쳤소?” 하면서 “일부종사가 미덕인데 신앙의 창녀가 되라는 거냐?”라고 대들었습니다. 그래도 장모씨는 일본에 있는 딸아이 이야기까지 하면서 “권사님 고집도 잘 알지만 그 분을 한번만 만나보시오.”라고 집요하게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장모씨가 다녀간 후 역곡에서 최장로, 배장로 등이 찾아와서 계속 설득을 하였으며 그런 분위기를 알아챈 전도관 쪽에서도 간부들이 꾐에 빠지지 말라고 거듭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차츰 ‘영모님이 돌아가실 것도 짐작하지 못한 우리가 아닌가’하는 생각과 함께 ‘밀실패가 되려는 생각은 없지만 조중위를 인간 대 인간으로 한번은 만나보자’는 생각이 들어 저는 역곡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91년 10월이었습니다.* – 다음 호에 계속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