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제단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

작성자 : 최고관리자Date : 2014-02-23 19:48  |  Hit : 2,456  
 신앙 간증담 승리제단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 
 배경엽 (73세, 본부제단 집사) 저는 26세가 될 무렵 고향 전라도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33세 때까지 회사에 다니면서 친구들 간에 계모임을 했는데 한 친구가 돈을 들고 도망치는 바람에 모든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지요. 그땐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습니다.앞길이 캄캄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한집에 사는 통일교 다니시는 할머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젊은이가 딱해서 그러는데 사람은 무얼 믿어도 믿어야 해요!” 할머니의 그 말에 불현듯 전도관이 생각났습니다.종교라고는 여수에서 친구의 동생 소개로 딱 한번 전도관에 하루 나가본 것이 전부였지요. 마침 며칠 뒤 전도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집에 찾아왔기에 전도관을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원효로에 있는 이만제단을 소개해 주어서 그때부터 약 16년간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답니다.새벽예배를 보러 갈 때면 몸이 둥둥 떠서 걸어가는 것 같았고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도 마치 꽃동산에서 자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항상 아프고 즐거움을 몰랐는데 전도관에 다니고부터는 항상 기쁘고 부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좋았답니다.또 밥을 먹으나 길을 걸으나 항상 향취냄새가 났으며 영모님(박태선 장로님)께서 생수축복을 하실 때 생수 주위에 가까이 있으면 향취가 진동을 하는 기이한 현상들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제 돈을 떼먹은 친구가 밉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그 친구를 위하여 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80년도에 영모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전도관을 해산시킬 목적으로 예수를 마귀라고 치기 시작하였지요. 그렇게 되니 저의 마음도 서서히 전도관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쯤 신앙촌 내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리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그래서 치료를 받기 위해 역곡에 있는 병원으로 통근치료를 다니던 중에 전도관에서 알고 지내던 승리제단 식구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저는 냉정하게 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어떤 권사님의 권유로 1988년 1월 5일 승리제단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처음 승리제단에서 예배를 보는데 신기한 체험들을 많이 하게 되었답니다. 우선 단에서 찬송하고 설교하시는 분의 모습과 음성이 영모님의 그것과 너무나 똑같았습니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영모님께서 실제로 단에 계시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도 저는 크게 놀라지는 않고 예배를 보았는데 며칠이 지나니까 조희성님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21일을 채우는 동안 조희성님께서는 길을 걸을 때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 항상 동행해 주셨습니다. 물론 분신의 역사였지요. 지금도 주님께서는 분신의 역사를 통해 당신의 가지들을 순간순간 돌보고 계시지만 현재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심령이 약한 저를 일깨우기 위해 많은 것들을 보여주셨습니다.21일을 채우고 나서 구제단 옆에 있는 고려시장 내에 액세서리 점포를 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정리를 하고 서울에 있는 빌딩에서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을 해버렸지요. 몸은 그만 내동댕이쳐졌고 몸은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무려 6개월 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저의 신앙은 식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어졌습니다.그리고 젊었을 때부터 저에게 있었던 어려운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문득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21살 때 시골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체독에 걸려 몇 년간 앓아 누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오히려 병이 더 깊어져 식구들조차 포기를 하고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제가 있던 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까지 저에 대한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그러던 어느날, 어떤 아줌마가 찾아왔는데 2가지의 약을 처방해주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 아줌마는 그 후로 나타나지 않았지요. 물론 그 아줌마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나서 씻은 듯이 나아버렸지요.그 병이 낫고 나서 저는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주신 분은 구세주 하나님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20살 때에 친구의 동생 소개로 딱 한번 나갔던 전도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를 기억해 주시고 앞으로 승리제단의 일꾼으로 쓰시기 위해 살려두신 것이라 생각합니다.또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게 하여 모든 절망을 겪게 만들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게 함으로써 삶의 귀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신 그 모든 것이 바로 승리제단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주님께서 보광하신 후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세월을 보냈는데 2005년 6월 19일 보광절에 드디어 주님을 뵐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본부제단에서 예배를 보고나서 묘소참배를 갔었는데 묘소에 도착하자마자 주님의 상반신이 묘소 맨 위에 나타나셨습니다.너무나 기쁜 마음 주체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이내 주님께서는 온데 간데 없어지셨지요. 아마도 주님을 사모하는 이 못난 죄인을 생각하셔서 그렇게 잠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승리제단에 나와서 가장 크게 바뀌게 된 것이 있다면 바로 마음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전도관에 다니면서도 해결되지 않았던 근심걱정이 승리제단에 와서야 없어지게 되었고 마음이 항상 편하고 즐거움 속에 살게 되었지요. 그 전까지는 자신의 돈을 모으기 위해 적금을 들었고 노후를 위해 항상 노심초사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그런 마음으로 변했지요.그 동안 주님에게 배운 자유율법은 정말로 이 세상에 없었던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는 가르침은 세상 모든 만민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덕목인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실천하게 되면 너와 내가 없는 진정한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정리 이승우 기자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