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생활의 실천만이 죄의 탈을 벗게 돼

◇ 하나님은 육체의 하나님이다
  생명이 영인 줄도 모르는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성경에 마음이 영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피가 마음입니다. 마음이 영이라면 피가 영이라는 것입니다. 피가 영이라면 피로써 살이 되고 몸이 되니까 몸 자체가 영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하나님이다(신명기 27:16)”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눅 20:38)” 살아있는 사람만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거지 죽은 사람은 이미 지옥에 떨어졌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을 때에 영이 죽기 때문에 육이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말씀입니다. 영이 죽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 거지 죽은 사람의 영이 떠나간다는 것은 엉터리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이 떠나간다는 것은 영의 실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이 있는 곳이 있는데 어디에 있나요? 살아 있는 자손들 속에 있죠? 죽은 사람의 내세가 살아 있는 자식들의 세계입니다.
  살아있는 사람 속에 흐르는 피는 조상의 피이므로 조상의 영이 살아 있는 후손들 속에 있다는 말은 지극히 과학적인 말이면서도 확실한 성경적인 말씀이 됩니다. 오늘날 그 후손들마저 죽어버리면 조상 대대로의 영이 다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후손이 영생을 얻으면 그 조상의 영들이 다 함께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구세주가 죽은 사람의 영을 영원무궁토록 사는 실체로 만드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이치가 맞지 않는 말은 믿을 사람이 없으며 이치가 맞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기 때문에 100퍼센트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사람이 죽은 사람의 사진을 방안에 걸어 놓지 말라, 죽은 사람 산소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사진을 걸어놓으면 – 죽은 사람의 영이 사자 귀신입니다 – 사자 귀신을 바라보면 사자 귀신이 들어와서 죽을병을 일으킵니다. 사자귀신이 잡아 가려니까, 산사람을 잡아 가려니까, 그 죽을병에 걸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상집에 갔다와서는 죽을병이 걸려서 죽는다는 예가 많이 있죠? 초상집에 갔다오면 열 명이면 한 다섯 명은 다 죽을병에 걸려요.
  통계적으로 나와 있죠. 그러기 때문에 장례식장에는 안가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죽었고 죽은 사람을 찾아간다고 해서 살릴 수 있습니까? 그리고 죽은 사람의 사진을 방안에 걸어놓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산소에 찾아가지 말라. 죽은 사람을 생각하지 말라.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 죽은 사람의 영이 되는 사자귀신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죽을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사자귀신이 사람을 잡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의 움직임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고 가르쳐 주는고로 구세주가 아니면 그런 걸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구세주인고로 소상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음식을 먹을 때도 마늘을 많이 먹으라고 했습니다. 마늘이 지독해서 못 먹겠으면 양파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마늘이나 양파에는 항암제가 들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밀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이사람만 혼자 알면 안 되는고로 다 같이 알고 다 같이 영생의 길로 손에 손을 잡고 가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사람이 성경 속에 있는 말씀 말씀을 일일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9절에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주님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주님이지 하나님 아들도 주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주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주님인 것입니다.
  ◇ 사람은 구세주가 될 수 없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구세주가 되는 것이지 사람은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구세주의 그 증표가 호세아서 14장 5절에 씌어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그런 말씀이 씌어 있습니다. ‘내가’는 하나님이죠? ‘이스라엘에게’했으니까 ‘이스라엘’은 히브리어인데 번역하면 ‘이긴자’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이긴자라는 뜻이며 이긴자에게 ‘저가 이슬과 같으리니’라고 했으므로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 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슬을 뿌린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람 가는 곳곳마다 이슬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이슬을 못 내립니다. 불경 열반경에 감로이슬을 내리는 자가 생미륵불이라고 했습니다.
  감로 이슬을 내리는 자가 해탈한 자라고 했습니다. 해탈자라는 것은 바로 생미륵불이라는 뜻입니다. 생미륵불이 중생들에게 이슬을 내려서 그 이슬이 중생들의 털구멍으로 들어가 열반에 든다는 것은 영생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죽은 것을 열반에 들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말하기를 “나더러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자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열반경에 씌어 있지요. 석가모니가 말하기를 “나는 열반에 들지 못했다. 열반에 든 사람은 생미륵불이다. 그 생미륵불이 장차 오시는데 그 생미륵불이 오시면 나도 그 생미륵불한테 귀의해야 열반에 들 수 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 나를 죽이려면 반대생활을 해야
  오늘날 불교나 기독교나 전부 영생을 논했지 죽는 것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영생이 이루어져야 종교지 영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영생을 얻으려면 사람 그대로는 절대로 영생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디. 그러니까 나를 죽여야 됩니다. 나를 죽이려면 반대생활을 해야 합니다. 반대생활을 해라. 나를 죽이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일하기 싫으면 열심히 일을 하고, 내가 공부하기 싫으면 열심히 공부를 하고, 내가 고기를 먹고 싶으면 씀바귀를 먹고, 그러니까 같이 밀실에서 연단 받는 청년들이 “왜 고기를 놓아두고 쓰디쓴 씀바귀를 잡수시느냐”고 그랬을 때 이사람이 “나는 고기를 못 먹어요” 했습니다. 누구든지 고기가 맛있죠? 그런데 그 맛있는 고기를 안 먹었습니다. 고기를 왜 안 먹었냐하면 나라는 게 먹고 싶으니까 안 먹었습니다.
  졸려서 자고 싶으면 안 자는 것입니다. 졸리기 때문에 자고 싶으니까 안 자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일주일이 넘도록 잠을 안자는 것입니다. 거짓말 같죠? 사실은 자고 싶은 생각 때문에 안 잤던 것입니다. 일하기 싫으니까 이사람이 나가서 산에 나뭇뿌리를 전부 캐내고 산을 개간하려니까 바위 같은 것이 막 나오면 전부 오함마로 까부수는 것입니다. 마귀 해골통을 까부수는 심정으로 오한마로 그 바위를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부숴가지고 그 산을 전부 개간해서 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일을 너무 힘들게 하니까 ‘그만 쉬어서 해라’ 하는 마음이 생기므로 ‘이 마귀새끼야! 니가 힘들어? 너 어디 언제까지 힘든가 보자’하고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기절해서 정신을 잃어 버렸습니다.
  정신을 잃어버릴 때까지 인내하면서 일을 했던 것입니다. 너무 힘드니까 사람의 육신인고로 기절해서 쓰러진 것입니다. 그래서 한 두어 시간 만에 깨어났어요. 깨어나가지고 이사람이 숙소로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쉬었지만은…
  ◇ 반대생활을 하니 죄의 피가 쏟아져 나와
  이와 같이 연단기간에 반대 생활을 하니까 소변으로 항문으로 피가 막 콸콸 쏟아졌습니다. 피를 그렇게 많이 쏟으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어지럽겠죠? 그렇게 피를 많이 쏟았는데 어지러운 게 아니라 더 초롱초롱하고 기운이 뻗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피를 쏟고 나서 사람으로서는 들 수도 없고, 사람으로서는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바윗덩어리를 지게에다가 올려놓고서 짊어지고 밀실 안에다 옮겨놓았습니다.
  이사람이 그러한 경험을 몸으로 체험을 하니까 분명히 옛 사람의 피가 바뀌어 쏟아지고 하나님의 피로 채워졌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변했습니다. 생각이 변하여 이름을 잊어 버렸다고 했죠? 50년 동안 불렸던 조희성이라는 이름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한 일주일간을 이름을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한테 “내 이름이 뭐였던가” 하고 물어보면 “이런 미친놈” 하고 욕을 하겠죠? 그런 미친 소리를 듣지 않으려니까 물어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혼자서 ‘내 이름이 뭐였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납니다. 조희성이의 영이 죽어버렸습니다. 그 조희성이의 영이 되는 피를 다 소대변으로 쏟았기 때문에 완전히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희성이의 이름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만에 이사람이 밀실에 들어갈 때에 입은 양복의 안주머니를 뒤져보니까 거기 주민등록증이 나와요. 주민등록증에 쓰여 있는 이름(조희성)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해와이긴자께서 “너 신앙촌 어머니댁에 갔다와”라고 하십니다. 신앙촌 어머니댁에 갔다오라고 하는 데에 신앙촌이 어디가 붙어있는지, 동쪽에가 붙었는지 북쪽에가 붙었는지 서쪽에가 붙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람의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그 주소를 보고 물어 물어서 찾아갔습니다. 30년 동안 산 집입니다.
  “C5동4호실이 어디냐?” 어른들한테 물어보면 미친놈이라 하겠죠? 그 소리를 안 들으려고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아이들이 나를 알아봅니다. “아니 아저씨! 이게 바로 C5동4호실 아니에요? 다 아시면서 물어보고 그러세요” 아이들한테 망신당했습니다. 이렇게 변화되는 과정이 너무나 뚜렷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이 사람의 몸을 입을 때는 하나님의 신이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죄의 피를 다 쏟아 버리니까 하나님으로 도로 환원된 것입니다.*
 2000년 9월 24일 말씀 중에서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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