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과 핍박과 학대는 자존심을 죽이기 위한 연단

이사람은 젊은 시절을 기독교에서 몸을 담고 신앙생활을 하며 살았고, 30대 때에는 전도관에서 모진 시험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전도관 때에 이사람이 마귀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사람도 나보고 마귀라고 그러고, 저 사람도 마귀라고 그러고, 보는 사람마다 마귀라고 하는 가운데서 생활한 것입니다.

신앙촌이라면 지역사회인 고로 거기에서 마귀로 찍히게 되면 쫓겨나야 되는 거지 살 수는 없습니다. 이사람은 거기에서 마귀소리를 듣고 사는 고로 사람들이 집에 와서, 거의 매일 같이 와서 “마귀새끼야 나가”라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또 어떤 때는 밥 먹을 때도 와서 마귀라고 나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사람 가족들한테도 “마귀새끼 나가”라고 소리소리 질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당하는 입장에 한번 서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영모님을 따라 신앙을 하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가족을 데리고 신앙촌에 들어 왔건만, 그런데 거의 매일 같이 마귀새끼 나가라고 학대와 핍박을 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 신앙촌에서 모진 핍박과 시험 당해

이사람이 오만제단에 매일 새벽제단 예배 보러 갈 때나, 일요일 낮 예배를 보러 갈 때에 예배 보는 장소에 가면 이사람을 그냥 멱살 쥐고 끌어냈던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에, 당시에 30대 젊은 청년이요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신만만한 사람인데, 이사람을 개처럼 질질 끌고 오만제단 산꼭대기에서 밑에까지 끌고 내려와서는 개 패듯 뭇매를 때리고 쫓아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사람은 거기에서 실컷 매를 맞고 집으로 가는 척하고 돌아서서 소사 삼거리로 해가지고 농장으로 해서 오만제단을 다시 기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 마귀새끼가 또 올라온다고 주먹만한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치든지 말든지 인정사정없이 마구 던지는 것입니다. 이사람은 날아오는 돌에 정강이도 맞고, 가슴팍도 맞고 하면서 기어이 오만제단 꼭대기까지 올라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또 올라가면 그들은 으슥한 소나무 숲으로 끌고 가서 모포를 뒤집어씌우고 뭇매를 가하는 것입니다. 뭐 이사람이 뚜렷하게 도둑질을 했거나, 강도질을 했거나, 무슨 잘못이 있다고 마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영모님이 다른 사람은 다 안찰을 해주시는데 이사람만은 안 해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람은 늘 안찰 받던 습관이 있는 고로, 안찰을 안 받으면 답답하고 갈급한 고로, 안찰 받기 위해 영모님 앞에 나아가면 아무소리 안 하시고 그냥 끌어내라고 암시를 하니까 끌려 나갔던 것입니다.

이런 광경을 사람들이 볼 때에, 저건 마귀새끼니까 끌어내라고 하나보다 하고서 그 즈음부터 사람들이 마귀라고 하며 이사람을 내쫓으라고 하였고, 마귀새끼라고 하면서 전부 이사람을 미워하고 뭇매를 때렸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로 핍박과 학대를 30년 동안 견디게 돼

그런 핍박과 뭇매를 일 년 이 년 동안 당하는 것도 서럽고 고통스러운데 수십 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게 말이 그렇지 수십 년 동안 이사람이 그 뭇매를 맞으면서, 그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 거기서 견뎌야 하는 말로 할 수 없는 숨은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매를 때리고, 그렇게 욕을 하고, 그렇게 마귀라고 미워해도 이사람이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늘 이사람에게 은혜를 폭포수처럼 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은혜를 부어준 고로 그 모진 핍박과 학대를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와 같이 30여 년 동안 매를 때리고 핍박하면서 제단에 못나오게 하는 고로 어쩔 수 없이 이사람은 얼굴 모르는 곳으로 가면 괜찮을까 하고 여기 저기 서울 전도관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람 얼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고로 가는 제단마다 마귀새끼 왔다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람 예배 보러 오는 것을 받아준 사람이 최수영 승사님이었던 것입니다.

최수영 승사님이 남대문지관 전도사로 계실 때에 거길 찾아가니 내가 생각할 때에 ‘나를 처음 보는 전도사고 하니 이 양반 날 모르겠지’ 하고서 같이 예배 보니까 아무 소리 안 하고 그냥 놔두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알면서도 그냥 놔두었는데, 알면서도 그냥 놔둔 것은 예배 보는 태도가 너무너무 은혜를 갈망하면서 예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또한 이사람이 찬송을 하면 전 교인이 찬송하는 소리보다도 더 클 뿐만 아니라 그 음성이 하늘을 찌르는 사무치는 음성이며 은혜 창파의 음성인 고로 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은혜가 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대문지관에 열심히 나가다가 최수영 승사님이 중부제단으로 이동이 된 고로 또 이사람이 중부제단으로 따라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제단에 가면 이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끌어내고 그러는 고로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시험을 이기게 되니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알게 돼

이사람은 늘 그러한 모진 연단을 받으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고로 그런 모진 연단과 시험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승승장구로 이기고 이기면서 나를 죽이게 되니 하나님의 깊은 뼈아픈 사정을 알게 되는 고로 이사람은 늘 매일과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다녔던 것입니다.

이사람이 핍박 받는 게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게 아니라 하나님이 육천 년 동안 마귀 옥에 갇혀가지고 발버둥치고 안간힘을 쓰는 하나님의 그 안타까운 사정을 이사람은 느끼고 있는 고로 이사람 속에서 하나님이 우시는 거죠? 이사람 속에서 하나님이 우시는 고로 늘 눈물을 흘리고 다닌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버스를 타면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고로 어떤 사람은 위로해 준다고 “기왕 돌아가신 분은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산 사람이나 그냥 이제 마음을 돌려가지고 사시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돌아가신 분을 가지고 자꾸 슬피 우시냐”고 옆사람이 자꾸 그만 울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다고 눈물이 그쳐질까요? 눈물이 그쳐지지가 않습니다. 그 눈물은 뼛골 속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입니다.

여러분들! 그 눈물을 흘려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눈물은 쉴 사이 없이 흐르는 눈물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서울시내 나가서 이 다방 화장실에 들어가서 눈물을 닦고, 저 다방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닦고 하여 너무너무 눈물이 많이 흐르는 고로 손수건이 펑펑 젖어가지고 쥐어 짤 정도라면 눈물을 얼마나 흘렸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것은 하나님의 눈물인 고로 그냥 쉴 사이 없이 펑펑 쏟아져 나옵니다.

쏟아지는 그 눈물을 다방 화장실에 들어가서 흘리느라 나올 줄 모르는 고로, 손님들이 연달아 와서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손님들이 다방 레지한테 가서 “어떤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죽었는지 나오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레지가 와서 손님 빨리 나오시라고 해서 그냥 안 나오니까 문을 확 열어요. 그냥 눈물만 닦고 앉아 있으니 빨리 나오시라고 해서 그 다방에서 쫓겨나고.

이사람은 신앙촌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다방에서도 쫓겨나고, 이 다방 저 다방으로 옮겨 다니고, 이 다방에서 쫓겨나면 저 다방으로 저 다방에서 쫓겨나면 저쪽 다방으로 나중에는 얼굴이 알려져서 다방에서도 안 받아줬던 것입니다. 그래서 필동으로 해서 남산 중턱 쯤 지나 7부 능선쯤 가면 이제그대로 으슥하고 깊숙한 인적이 없는 조용한 곳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들어가서 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계속해서 또 눈물을 흘리는 고로 손수건을 짜도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울면서 이제그대로 울다가 보면 그대로 해가 지고 12시가 지나서 통행금지가 되면 내려올 수가 없죠? 내려올 수가 없으니까 남산에서 밤을 새야 하는, 그렇게 살기를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오랜 기간을 했던 것입니다.

◇ 자존심 마귀를 죽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길

그렇게 되니 차도 탈 수가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그랬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눈물을 계속 흘리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소사 신앙촌에서 서울 곳곳까지 이 경인간 도로는 이긴자의 눈물로 적셔진 땅입니다. 이긴자가 수십 년간 눈물을 흘리면서 다닌 땅입니다.

여러분들 이것이 거저 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피눈물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진 시험과 연단을 받은 것은 나라는 자존심 마귀를 죽이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어떠한 시험과 핍박과 뭇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던지는 심정으로 살지 않으면 이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을 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긴자가 살아 온 발자취를 기억하고 항상 생활 속에서 이기는 생활을 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1989년 3월 20일 말씀 중에서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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