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서학에 비친 하나님 모습

작성자 : 승리제단Date : 2014-03-04 18:39  |  Hit : 2,311   논단 동학과 서학에 비친 하나님 모습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며,그분의 가르침은  ‘인간이 하나님으로 되돌아가라’는 인내천 사상이다 

하나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의문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천상(天上)에서 엄마랑 손잡고 징검다리를 건너던 아이가 갑자기 들이닥친 급류에 엄마를 잃고 하생하여 천상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린 가운데 문득 사무치는 그리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이와 같이 어린 아이와 같은 심령으로 돌아가서 동학 속에 나오는 한울님을 찾아보고 또한 서학 속에 나오는 하나님을 찾아본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 선생은 32살 때 한울님을 보았는데, 이마가 넓고 머리털은 약간 기른 상태이기에 스님처럼 보이지만 스님 같지 않고 또한 사람처럼 보이나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용모가 매우 깨끗하고 맑아 보였으며, 차린 모양이 의젓하였으며 또한 행실이 공손하였다고 한다. 이는 서학 열왕기서에 등장하는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의 용모와 똑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또한 수운 선생의 제자인 해월 최시형 선생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그리고 목운 영모님께서 키운 조희성님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최제우 선생이 눈으로 본 한울님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수운 선생이 서른 두 살 때에 첫 대면한 한울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 의견이 분분하여 오늘날까지도 학자들의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한울님에 대한 명쾌한 정의(定義)가 확립된다면, 천손민족의 인내천 사상이 동방의 빛이 되어 지구촌에 들끓고 있는 종교분쟁을 종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한울님의 정의(定義)는 천도교와 맥을 같이 하는 승리제단 조희성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충분히 도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문제는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여기서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보다 인간에게 비친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동학의 한울님이 곧 서학의 하나님과 동일한 신(神)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신(神)이 인간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다는 점에서 둘 다 똑같고 그리고 신(神)이 인간에게 일러준 가르침 가운데, ‘인간은 원래 신이었으니 이제 신이 되어라’는 것이 동학과 서학의 공통적인 특징이다.서학에 몸담은 기독교인들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조희성 주님께서 때가 이르매 인봉된 성경구절로 시편 82편 6절과 요한복음 3장 5절을 끄집어내어 밝히 설명함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이다’라는 인내천 사상이 곧 성경 가르침의 근본임을 알게 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보광 전에 각별히 전수한 말씀 가운데,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 곧 구원의 비결이요 천기이니 이 하나만큼은 잊지 마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 자체가 세상의 모든 종교와 학문을 하나로 만드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요체이다.     1855년(을묘년) 3월에 최제우 선생이 신인(神人)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건네받았는데 책을 들쳐보니 유교의 책도 아니고 불교나 다른 가르침을 담은 책도 아니었다.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세상에 박식한 사람이나 기이한 영험을 가졌다는 사람보다 최제우 선생이 합당하였기에 천서(天書)의 내용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고 그 내용대로 행할 것을 권고하였다. 나중에 동학교도들은 이 일을 두고 「을묘천서乙卯天書사건」이라고 했다. 수운 최제우 선생에게 처음 나타난 한울님은 수평적인 만남이었다. 다시 말해서 한울님이 공중하늘에 있고 최제우 선생은 땅에 위치하고 있는 수직적 관계의 만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신과 인간의 평등한 만남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문밖에서 주인을 찾는 한울님의 음성은 지극히 공손하였다. 집주인 최제우는 ‘누구를 찾으시는지요?’ 하며 정중히 여쭈니, 한울님은 ‘선생께서 경주 최생원 되십니까?’ 응답하였다. 이에 모든 것을 훤하게 꿰뚫어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때가 춘 3월이었는데, 한울님으로부터 뻗쳐 나오는 기운으로 말미암아 주변의 상황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상태에서 한울님은 신비한 책을 수운 선생의 책상 위에 놓고, ‘자세히 살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흘 후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말하고 물러났다. 수운 최제우는 일각이 여삼추 같이 한울님과 만날 날이 기다려졌다. 사흘이 지난 뒤에 다시 한울님이 찾아와서 ‘혹 깨달은 바가 있습니까?’ 물으니, 수운 선생이 대답하기를 ‘제가 이 책의 내용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한울님은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말하기를  ‘이 책은 진실로 선생의 책입니다. 저는 다만 전하기만 할 뿐입니다. 이 책의 내용을 소상히 알았으면 그 내용대로 행하십시오’ 하며, 백배 사례하며 물러나 섬돌을 내려가는데, 몇 걸음을 가지 않아서 문득 보이지 않게 되었다. 수운 선생은 마음속으로 이내 그 사람이 신인(神人)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 서학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났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장막 문 앞에 세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자, 아브라함은 그들을 영접하여 떡과 요리한 송아지와 우유를 대접하니 세 분 하나님은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불러 축복하기를 ‘아들을 낳게 되리라’고 한다. 또 아브라함의 증손자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 동이 틀 때까지 씨름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긴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름을 새로 지어주기 위해 서로 겨룬 씨름에서 일부러 져주었다. 또한 한민족과 동일한 혈족인 단지파 가족 중에 마노아의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아들(삼손)을 낳으리니 태중에서 열 달 동안 아기가 자라 출산할 때까지 어미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고 태교법까지 친히 일러준다.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 마노아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의 사자를 다시 보내주시옵소서’라고 간구했다. 밭에 있던 아내에게 다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기에, 아내는 집에 있는 남편을 급히 불러내어 전일에 오셨던 분과 똑같은 분이라고 증언한다.남편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곧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에게 염소 새끼를 요리하여 올리자, 하나님의 사자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하나님께 드릴지니라’고 말한다. 또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하나님의 사자는 묵시록에 숨겨둔 ‘빛난 새벽별(熙星: 희성)’이라는 이름을 정직하게 밝히지 아니하고, 마지못해 ‘내 이름은 기묘(Wonderful)’라고 말씀하신다. ‘기묘자(Wonderful Counselor)’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미할 때 ‘평강의 왕’이라든지 ‘만왕의 왕’의 별칭과 더불어 즐겨 불러진다. 마노아가 새끼 염소 한 마리와 곡식예물을 가져다가 돌 제단 위에 올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자 돌 제단 위에 저절로 불꽃이 일더니 그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 불길을 타고 하나님의 사자가 올라가는 것을 본 마노아는 그제야 하나님의 사자가 곧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이상에서 본 바, 하나님께서 자상하게 태교법을 일러주는 것이라든지, 인간의 형상을 빌려 나타나되 시차를 두고 두 번 연거푸 나타남으로써 수운 선생이나 단지파 마노아가 환영(幻影)으로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고 실존하는 하나님을 본 것임을 알 수 있다.동학에서도 한울님으로부터 전수받은 ‘시천주 태교’를 중시하고 있다. 동학의 한울님이나 서학의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동일체라는 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진리 말씀이 똑같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진리의 말씀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이다’라는 인내천 사상이다.*   법륜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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