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야

눈물 흘리지마
작은 골목 귀퉁이
꿈을 잊었다고
눈물 흘리지마
구름처럼 스쳐간
허무한 것을

슬퍼도 울지 못하는
민들레 꽃 위에
햇살 가득한데
보아도 보이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네
어디 있니 누나야

젖은 노래처럼
너의 작은 가슴에
비가 내린다고
언젠가 말했지
하염없이
걷고만 싶어진다고

하늘가 저편 맴도는
새들의 날개 짓만 공허한데
들어도 들리지 않고
찾아도 찾을 수 없네
어디 있니 누나야

 

-김창완

 

내가 초등학생 때였다. 고등학생이었던 큰누나가 저녁 늦은 시간에 작은 누나, 형, 나를 데리고 시장골목 중간쯤에 자리한 중국집에 갔다. 그리고는 짜장면 네 그릇을 주문했다. 우리 넷은 참 맛있게 먹었다. 큰누나는 우리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하다는 명분으로 사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짜장면 값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용돈을 아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계산이 있었던 큰누나는 자기욕심을 접고 어려운 가정형편을 감안해 그 당시 2년제였던 교육대학을 진학해 졸업 후 곧 교편을 잡고 가계를 도왔다. 큰누나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착한 작은 누나도 대학 졸업 후 바로 안동에 내려가 농협김치공장에 식품영양사로 취업하여 지금까지 줄곧 일하고 있다. 큰 누나는 내가 혼자 사니까 힘들지 않을까 싶어 가끔씩 용돈을 보냈으나 몇 년 전 나는 받기가 싫어져 보내준 용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쓴다고 하니까 더 이상 부치지 않았다. 작은 누나도 가끔 전화로 어려움이 없는지 묻고 김치도 보내준다. 자형들이 자상하긴 하지만 가정을 꾸리면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누나들은 늘 바쁘다. 이제는 몸도 여기저기 쑤셔오니 휴식을 취하며 건강관리를 해야할 텐데 둘 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네 형제가 어린 시절 한집에서 옹기종기 함께 살다가 헤어져 산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꼬부랑 삶의 고갯길을 넘어오며 누나들은 여러 가지 삶의 지혜가 몸에 배이고 성품은 더 원숙해졌다.

친누나는 아니지만 나는 살아오면서 훌륭한 누나들을 많이 만났다. 어릴 적 전도관에 다닐 때는 떡장사 행상을 하시는 어머니를 열심히 도왔던 단발머리를 한 점잖은 누나의 깊은 눈동자가 아직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축제기간이 되어서 동아리 여자선배에게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행사에 참여하러 가자고 하니 도시빈민과 연대하는 행사준비를 하던 그 누나는 나에게 엄마가 달래듯 “그런 행사에 가서 놀고 싶니?”라고 한마디 하고는 묵묵히 일만 했는데 그 목소리도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또 같은 대학동기임에도 불구하고 누나같이 느껴지는 친구들도 많았다. 동아리 탈춤반에서 민요를 가르쳐주던 여학생도 그랬고, 태극권반 활동을 하면서 학내매점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학생도 그랬다. 정말 수수한 옷차림에 우아한 행동과 말씨에 매점아주머니들도 반하여 촐싹대는 나에게 좀 배우라고 핀잔을 주셨다.

지금도 내 주변엔 몽실언니같은 손아래 누이들이 많다. 제단 가까운 시장에 가보면 치킨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누이, 떡집과 과일집에서 일하는 누이, 약국에서 보조하는 누이, 혼자서 돼지머리국밥집을 경영하는 점잖은 누이들이 나에겐 누나처럼 느껴진다. 마치 세상이치를 다 통달한 것같은 이미지에 정숙한데다 수다떠는 일이 없다. 물론 거저 생긴 내공은 아닐테지만 말이다.

생존을 위한 노력으로 유전자가 조금씩 변이해 온 탓일까? 내가 보기엔 여성들은 육체적 힘은 남자들보다 약하지만 그만큼 생각은 훨씬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하고 정신력이나 공감능력, 인내심은 더 강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들끼리는 대화하면서 농담으로 남편을 가장 큰 자식으로 취급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대만, 뉴질랜드, 독일 등 여성이 수장을 맡고 있는 나라에서는 아주 선방을 하고 있다. 그만큼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어 자식을 보살피듯 세심하고 치밀하게 배려하고 대처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을 중시하는 경향이 높아질 터인데 지구 생태계의 조화와 생명을 사랑하는 모성애적 가치관이 세계를 지배하지 않을까싶다.

나의 질녀들은 현재 요양병원과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수고하고, 일선학교에서 좀 더 나은 원격수업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머지않아 이 아이들도 누나처럼 느껴질 정도로,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지혜와 인품이 성숙하지 않을까? 그 전에 나도 생의 전선 한 가운데에서 많은 땀을 흘리면서 좀 더 굵어진 뇌혈관과 심혈관을 지닌 삼촌이 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겠다.*

라준경 / 대구승리제단 책임승사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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