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기철

내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
나로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내 밟고 온 길
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
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이
내 길 건너며 무표정했던
이웃들에 사죄합니다
내 작은 앎 크게 전하지 못한 교실에
내 짧은 지식 신념없는 말로 강요한
학생들에 사죄합니다

또 내일을 맞기 위해선
초원의 소와 순한 닭을 먹어야 하고
들판의 배추와 상추를 먹어야 합니다
내 한포기 꽃나무도 심지 않고
풀꽃의 향기로움만 탐한 일
사죄합니다
저 많은 햇빛 공으로 쏘이면서도
그 햇빛에 고마워하지 않은 일
사죄합니다
살면서 사죄하면서 사랑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며칠간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비가 대기를 깨끗이 씻어 공기도 맑고 햇볕도 좋아 나들이하기에 딱 좋다. 햇빛을 보니 우울한 기분도 확 날아가 버려서 볕이 좀 따가워도 감사한 마음만 든다. 오늘은 초복(初伏)인데 과일가게나 음식점에 매상이 많이 올라 상인들도 기분좋고, 시민들도 잘 드시고 건강하면 좋겠다.

나도 마트에 가서 수박과 바나나를 샀다. 바나나 한 송이가 2000원이다. 낮은 가격이라 편하게 사 먹는데 열대지방 대규모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겐 미안하다. 이윤을 올리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농들은 낮은 노임을 유지시킨다. 도시의 말단 노동자들도 대우받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나도 우유배달을 하지만 우유는 2개월, 신문은 6개월 무료로 미리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1년을 받는 것으로 계약을 한다. 판촉을 위해 소비자에겐 혜택을 부여하지만 배달원의 배달단가는 여전히 낮기만 하다. 얼마 전 아침 이른 시간에 트럭에 감자상자를 가득 실은 상인에게서 감자 20kg을 8000원에 샀다. 이웃들과 나누어 아직까지 잘 먹고 있는데 감자농사 지으신 분들께는 감사하고 죄송스럽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실제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가 빈번하다. 노동시장의 임금이 실제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가만히 살펴보면 농민과 생산, 유통, 사무직 말단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생긴 폐해로 제일 많은 희생을 당한다. 어쨌든 이런 모순된 체제 안에서 함께 엮여 살아가는 우리들은 물건을 사용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농민과 노동자분들에게 늘 감사하고 사죄하지 않을 수 없다.

비가 와서 며칠간 모기가 덜 설쳐 지낼 만했는데 오늘 저녁부터는 다시 전투를 벌여야 할 것 같다. 나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서 웬만하면 에프킬라를 써는 생화학전은 벌이지 않는다. 걔들도 생명체인데 죽을 때 느끼는 고통은 인간과 매양 다를 바가 없을 터, 몇 초라도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서다. 그리고 아침이면 무조건 휴전이다. 내 피를 먹고 포동포동한 모습으로 커튼에 붙어있는 녀석을 보면 약간 얄밉긴 하지만 낮엔 볼 일이 없으니 그동안 편안한 안식을 취하게 그냥 둔다. 인간을 무는 모기는 산모들이다. 그들도 새끼를 키우려고 사투를 벌이는데 너무 몰인정하게 굴면 안 될 것 같아 봐준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전라도 새만금 공사현장을 보았다. 포크레인이 지나간 자리에 철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었다. 바다를 막은 갯벌엔 게가 말라 죽어 있었고 바닷물과 소통이 안 되는 해안에는 삽질을 하니 전체가 오염된 썩은 토양이었다. 인간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의 보금자리를 이렇게 파괴해도 될까? 해안의 일부를 개발하더라도 일부는 생명체가 살도록 남겨두는 것이 인간과 동식물 상호간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매스컴에서 미국의 한 무인도에 땅을 깊고 넓게 파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들의 관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유행하자 큰 구덩이를 파서 돼지들을 산 채로 생매장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돼지들에게 전파력이 강한 전염병이 유행하면 인간처럼 치료하고, 축사에 거리두기를 시행하진 않는다. 곧바로 생매장한다. 소나 닭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대량으로 수정하고 좁은 축사에 항생제, 성장제를 먹여가며 급속도로 키워 잡아먹고 전염병이 돌라치면 인정사정없이 매장해버린다. 넓은 공간에 그들을 방목하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하고, 늘그막에 잡아먹는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몽고 지역의 유목민들은 키우는 양이나 말을 한 마리 도축할 때 신에게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조금이라도 살생에 대해 속죄를 해서 마음의 부담을 덜고 싶어서이다.

우리도 고기를 먹으며 “남의 살점이니 맛있다.” 같은 우스갯소리만 하지 말고 잠시나마 사죄의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간혹 한밤중 주방에 불을 켜면 바닥을 기던 바퀴벌레가 죽을똥 살똥 도망을 친다. ‘저희도 얼마나 죽음이 겁이 나면 저리도 쏜살같이 도망을 칠까?’ 불쌍한 생각이 든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행복을 추구한다. 한 할머니가 참새에게 쌀을 한 줌 주니 짹짹 큰 소리로 동료들을 불러 함께 먹이를 먹더란다. 작은 생명체들도 인간과 다름없는 감정을 지닐 뿐 아니라 인정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을 대할 때에 지금보다는 생각이나 감정이 좀 더 민감해져야만 할 것 같다. 백인들이 흑인, 동양인, 히스패닉을 함부로 대할 경우에 지탄을 받는다. 그와 같은 잣대로 우리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의 생명과 행복도 존중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보호해 줄 때 우리도 보호받을 수 있다. 인간은 이기심으로 그들의 보금자리인 자연을 파괴하여 그들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주었다. 그 반대급부로 이상기온, 쓰나미, 지진, 태풍, 홍수, 코로나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인간 사이의 상생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 간의 상생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기까지 인간은 얼마나 더 큰 값을 치러야 할까?* 라준경 / 대구승리제단 책임승사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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