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엽서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 날

 

어제 오후엔 경북대학교 북문으로 승리신문을 배포하러 나갔다. 학교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가시는 한 아저씨에게 신문을 건네니 학교에서 주웠다며 손에 들고 있던 모과를 나에게 주었다. 향은 진하지 않았지만 가을을 실감하게 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가니 옥상엔 석류를 말리고 운동을 막 다녀오신 어머니는 감나무 아래에서 주웠다며 단감 두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셨다. 저녁엔 도토리묵을 따뜻하게 데워서 어머니와 맛있게 먹었다. 몇 차례 우리를 괴롭히던 태풍이 지나가자 이제 완연해진 가을이 아주 맑은 하늘과 맛있는 열매들을 선물한다.

얼마 전 대구시 관할 ‘남구 진학코칭센터’에서 학생들의 자유학기 때에 진로체험 활동을 돕는 자원봉사자 교육을 며칠 받았다. 학생들이 자기의 적성을 잘 파악하고 여러 가지 직업을 체험해보고 자신의 꿈을 정해서 펼쳐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감능력을 키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왕따라는 낱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왕따시키는 일을 하는 학생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아이들의 마음은 리트머스 용지와도 같이 쉽게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 아마도 가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깊이 받고 그것을 해소하고자 제3자를 정해서 왕따를 시킬 것이다.

각 가정의 학부모들은 대체로 바깥 경제활동에서 느끼는 차별과 학대, 분노 등의 스트레스를 가정에서 배우자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재주입시킬 경우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예전사람보다 현대인들은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세계적으로 볼 때 생산력과 경제가 발전한 만큼 자연은 파괴되고 사람들의 양심에도 큰 금이 갔다. 내전이 벌어지는 국가도 많아지고 국가간의 분쟁도 늘어나고 각 국가마다 각종 사건 사고도 늘어났다. 결국은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물질에 관한 욕심과 경쟁을 부추겨 생긴 결과가 아닐까? 물질문명은 사람들을 돈에 눈멀게 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나 인정 동정과 같은 착한 심성은 메마르게 만든다. 이런 사회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기는 쉽지 않다.

암, 심장병, 뇌혈관질환에 이어 한국인 사망의 4번째로 큰 원인은 자살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40대 이하의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려운 경제로 인한 생활고도 있을 것이고 사회생활에서 받는 마음의 상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 또한 청년기에 조현병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도 사회생활에서 겪는 정서적, 정신적 충격이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전에 우연한 계기로 한 청년을 만나서 사귀게 되었다. 고물상을 하는 청년인데 아주 쾌활하고 생활력이 강하였다. 한번은 일당을 받고 그를 따라 한 건물에서 폐기물들을 꺼내 트럭에 싣는 일을 했다. 그와 힘에 많이 부치는 물건들을 같이 옮기고 트럭에 싣느라 나는 몸에 있는 진을 다 뺄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 그는 악착같이 달려들어 일을 척척 해내는 것이 보통 다부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릴 때 슈퍼에서 빵과 음료수를 훔쳐 먹다 들켜 소년원 생활을 하고 그 이후로 사회에 불만을 느끼고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 생활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다정하고 순수했고 거짓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폭력을 써서 교도소에 다시 가게 되고, 또한 감옥에서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웠다. 만약 그의 곁에 그를 공감하고 붙잡아 줄 단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 승리절 행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는 고속버스 티브이에서 25세의 한 아이돌의 자살사건소식을 들었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 자살이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악플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차별과 학대, 열등감과 분노감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서는 그것을 해소하고자 제3자에 대해 악플을 달아서 그런게 아닐까? 특히나 그 제3자가 부와 명예, 아름다운 외모까지 지녔다면 미운 감정이 더 심해져 아주 심한 악플을 달게 되고 그로 인해 제3자는 정신적으로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에 떨어져 이런 사건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회에서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낳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 특히 현대사회는 사람들에게 마음에 생채기를 너무 많이 내기에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이가 많지 않으리라. 더군다나 도시생활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더 지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는 대화하기 전에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서 서로 마음을 무겁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특히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은 절대 금물이 되겠다. 상대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약한 어르신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충고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만나 진정어린 마음으로 해야 상대가 상처받지 않고 잘 받아들일 것이다. 고운 말, 정다운 말, 덕스런 말만 하기에도 우리 인생은 그다지 길지 않다. 오늘부터 우리들 마음속에 ‘공감’, ‘맞장구’, ‘덕담’같은 연고를 담아두고 서로의 마음에 난 깊은 상처에 듬뿍듬뿍 발라주자. 그리고 서로에게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맑고 푸른 하늘을 많이 바라보자고 하자.*

라준경/ 대구승리제단 책임승사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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