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속의 죄가 소멸되는 여러 체험들

작성자 : 승리제단Date : 2014-02-23 18:57  |  Hit : 2,238  
 신앙 간증담피 속의 죄가 소멸되는 여러 체험들나는 결혼전 감리교회를 1년쯤 다녔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이 박태선 장로가 이끄는 전도관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나는 아무런 의미도 모른 채 감리교회에 다녔기에, 처음에는 다소 거부감도 있었지만 어느 새 남편을 따라 부산 영주동에 있는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다.1956년의 어느 날이었다. 새벽제단을 다녀오면서 향취와 생수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가슴과 뱃속을 거쳐 팔까지 연결되는 시원한 생수 은혜에 대하여 들은 바가 없었기에, 몸 안의 이같은 이상한 현상에 대하여 혼자 생각하기를 ‘혹시 냉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고 병원에도 가보고 한방에 가서 진맥도 해보았으나 정확히 알지를 못했다.어떤 때는 갑자기 몸에 뜨거움이 확 임할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같은 현상들이 은혜가 연결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이러한 전도관 생활을 계속 해오다가 청량리로 이사를 하게 된 얼마 후 남편의 사업이 잘못되어 재산이 다 날아가 버리자,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걷기도 힘들 뿐 아니라 시장에서 무우 하나 들고 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청량리 김내과에서 매일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자 이윽고 나는 삶 자체를 포기할 정도에 이르렀다.그러던 어느 날, 같은 건물에 사는 김순옥 권사라는 분이 “나 좋은 데 가는 길인데 민집사도 따라가 볼래?” 하기에 나는 “좋으면 물론 가지요.”라고 대답했다. 김권사를 따라가고는 싶었으나 몸이 불편해서 거동을 못하는 형편이라 매우 난감하였다.이렇게 고심하고 있던 차에 김권사님이 “내일 주님이 이리로 오신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는 주님이 이긴자 되신 후 세상에 처음 나오신 직후여서 아직 본격적인 전도 활동을 하지는 않았을 때였다. 그러니까 그때가 81년 10월 11일이었다. 남편은 돈을 털어 마지막으로 한약 반달치를 사오니 그것을 먹고 사느냐 죽느냐 하는 아주 절박한 때였다.이튿날 약속한 두명의 집사님과 함께 우리들 세명이 동시에 주님이 계신 방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전도관에서 오랜 은혜 체험을 한 터라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눈에서 음란의 영이 나오는지 선한 영이 나오는 지를 구별할 수가 있었던 때였다.주님께서 자기를 바라보라기에 눈을 바라보니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도 신기하여 그분의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그분의 말씀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하지요?” 하시는 것이었다. 주님이 “나는 영모님을 초초로 안 놓치고 바라보고 이겼어요.” 하시는 말씀에 언뜻 내 머리에 스친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그러면 나는 이기신 이 분을 바라보면 나도 이기게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을 계속 바라보니 진액 즉, 살마광선인 감로수 이슬을 부어주시는 것이었다.어느 날 예배를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층인 우리집 계단을 올라 가는데 이전 같으면 기운이 없어서 서너 번을 쉬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 날은 계단을 막 올라서려는데, 몸이 붕 뜨면서 어느 틈엔가 내가 날아서 이층 바닥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내 다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느끼지 못한 채 저절로 몸이 붕 떠서 단숨에 이층 계단을 훌쩍 날아오른 것이었다. 그 때 얼마나 놀랐겠는가.그즈음 나는 예배를 보고 나면 너무나 기쁘고 몸이 가벼워서 몸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치 못할 지경이었다. 겪어 보지 않고서는 이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처음 제단에 나올 때는 몸이 천근 만근 늘어지게 아팠는데, 어느 날 예배볼 때 바람이 머리 위에서 싹 불기 시작하고 몸을 감싸고 돌더니 뱃속의 주먹만한 둥그런 것이 뚝 떨어져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 때가 처음 주님을 바라보라 하실 그 때다.요즈음 나는 병이 완쾌되어 날듯한 몸으로 전도를 다닌다. 지금 이 순간도 은혜주시는 주님께 몸과 마음을 온통 맡긴다.*  
민혜경 권사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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