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너는 아니

이해인

친구야 너는 아니?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거래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도
참 아픈거래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참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잣말처럼 하시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날 친구야

봄비처럼 고요하게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 싶은 내 마음
너는 아니?
향기 속에 숨긴 나의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
너는 아니?

며칠전 저녁부터 새벽까지 봄비가 무척 많이 내렸다. 새벽에 일하는데 신발이 젖고 손이 시려웠다. 비바람에 조금 붙어있던 목련과 벚꽃잎들도 마구 다 떨어졌다. 미세먼지로 우울한 이 봄에도 나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예쁜 꽃들을 활짝 피우더니 아쉽게도 그렇게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날씨가 개이고 나니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거리의 이팝나무, 플라타너스가 봄비를 흠뻑 맞고 뾰족뾰족 새잎새를 낼름낼름 내밀었다. 이른 봄 매화가 꽃봉오리를 처음 펼쳐보일 때만큼이나 반가왔다. 그 싱싱한 신록을 보니 나도 모르게 기운이 나고 입가에 미소가 돈다.

사실 한반도의 봄은 역사적으로 돌아볼 때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뜨거운 심장들이 동백꽃처럼 뚝뚝 떨어졌던 너무나 가슴 아픈 계절이다. 멀리는 동학교도들부터 가까이는 군사독재하에 간첩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이 된 청년들까지 아름다운 영혼들이 하필이면 꽃 피는 이 4월에 안타깝게 쓰러져갔다. 욕심이 많은 인간들이 있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피와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랄 수밖에 없다. 용기와 양심을 가진 이들이 이 땅에 흘린 피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올 봄 들어서 주민센터에서 주최하는 ‘민요 교실’과 ‘척추운동 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두 교실 다 연세가 많으신 여성분들이 많으셔서 조금 어색한 기분이 없진 않으나 한편으론 내가 정서적으로는 눈높이가 맞기에 그분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것같다. 다들 즐겁게 건강을 챙기시며 예쁜 장밋빛 노후를 보내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척추운동 교실 선생님은 아주 젊은 여성이신데 예전에 현대무용을 했으나 다치는 바람에 무용은 접고 요가강사와 척추운동 강사 생활을 한다고 하셨다. 부상으로 인해 무용에 대한 청춘의 꿈을 접어야 했을 때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지만 새롭게 인생을 다시 설계하여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교정하고 치료하면서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대위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연기를 연출하는 것 못지않은 기쁨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가 봄엔 꽃을 피우고 여름엔 무성한 잎과 가지를 키우고 가을엔 열매를 맺듯이 우리 인생도 한고비 한고비 넘기며 각기 다른 테마에 열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생각과 형편이 변하면서 청춘의 시기 때에 꾸었던 꿈과 중년과 노년의 시기에 품게 되는 꿈은 달라져간다. 꿈의 내용이야 어쨌든 간에 크고 작든 꿈이 있고 그것을 좇는 열정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꿈을 쫓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난 도대체 요즘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된다. 예전엔 대학교, 도서관, 공원 등을 돌며 맨투맨 전도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힘껏 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는데 요즘은 블로그를 만들어 인터넷 전도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1년이 지나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도 한 가지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 되었는데 그것도 아직 못하고 있다.

남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다. 그리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만 식지 않으면 고생을 해도 행복에 겨워 웃음이 나오는 삶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만큼 열정과 안타까운 심정을 가져야 하고 고달픈 생활도 각오해야 한다. 내 나이 20대 때의 정열을 다시 회복해야겠다.

몇 년 전에 수원에 사는 후배를 만나 우리가 20대에 품었던 뜻을 새로이 하고자 박노해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선물했을 때 후배는 나에게 미키마우스 티셔츠와 ‘89’수자 로고가 붙은 모자를 선물하였다. 그때 월트 디즈니처럼 어려운 가운데에도 희망을 간직하고 89년 내가 갓 20살 먹었을 때에 품었던 열정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며칠 전 비가 내릴 때 오랜만에 그 모자를 쓰고 일을 했다. 마음으로는 ‘그래, 내가 50살이지만 내 마음의 나이는 20살이다. 앞으로 영원히 20살이다. 20살의 뜨거운 심장이 늘 펄떡펄떡 뛸 것이고 반짝이던 이성의 눈빛도 늘 빛날 것이다.’하고 되뇌었다. 그러고 나니 웬지 기분이 좋아지고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났다.

어제 볼일을 보다가 동대구역에 들러 여행객들에게 승리신문을 전달했다. 역 광장 중간에 패넬을 세워놓고 행인들을 붙잡고 설명하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있기에 궁금해서 가보았다. 한 NGO단체에서 나와 시민들에게 기부를 요청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및 저개발국가에서 식수가 부족하여 오염된 강물과 늪지대의 물을 먹고 많은 사람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탱크와 간이수도를 설치하여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에 후원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나에게 진지하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청년의 눈빛엔 굳은 신념이 서려있어서 정감이 갔다. 얼마 전부터 나는 형편이 어려워져 유엔난민기구에 매달 기부금 내는 것을 중지하고 있다. 하지만 늪지대의 흙탕물을 먹고 생활하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적은 돈이나마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와 신문을 돌리고 있는데 아까 그 청년이 다가와 가게에서 산 음료수를 내 손에 쥐어주며 “화이팅 하세요!”하며 내 어깨를 꽉 껴안는다. 사명감에 불타는 눈빛을 가진 청년의 힘찬 포옹에 힘입어 나 또한 심지를 곧게 세우고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했다.*

라준경/ 대구승리제단 책임승사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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