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로 바라보고 고도로 사모해야

 2005년 8월 1일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은 바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음은 곧 피 속에서 피의 작용에 의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피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람에게 생명 따로 있고 마음 따로 있고 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생명의 근원이 있고 피 속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마음먹는 대로 피가 변한다는 것을 이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이 되지만, 의아한 마음을 가지면 그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마귀가 의아한 의심을 갖게 하는 것이지 마귀의 마음은 의심의 마귀인고로 의심을 하면 그는 영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확신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요 하나님의 마음이 확신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희생적인 마음이 하나님 마음의 속성입니다. 희생적인 마음이 없으면 그는 영생을 얻을 수 없고, 희생적인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희생적인 마음이 없으면 결코 한 발자국도 영생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올시다.

그리고 인내력의 속성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꾸준하게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인내력과 희생적인 마음의 꽃이 웃음이며 기쁨입니다. 기쁨이 없는 자는 그대로 하나님의 속성으로 변할 수 없는고로 시간 시간 항상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생활을 함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람이 일단 말씀 드린 다음에 그 말씀을 안 지키면 그게 무슨 죄가 되느냐 하면 그건 바로 불순종의 죄가 되는 겁니다. 이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불순종의 죄예요.

「매일 예배」는 하나님의 지상명령

우리 제단은 매일 번제를 드리는 제단이지 하루라도 빠지는 제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일 제단을 쌓아야 구원이지 하루라도 빠지면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일부러 이러한 법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구세주가 모든 사람들을 살리려면 매일 예배를 드려야 6천년 묵은 마귀를 계속 공격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마귀가 약해져서 거의 비틀비틀 약하게 되었을 때 그때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사람은 매일 예배를 보라는 말씀을 매일 제단에 설 때마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루 예배 빠지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우리 식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새기고 24시간 기도를 해야 구원

이사람은 사람 속에 있는 피를 바꾸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속에 있는 피를 바꾸어놓는 작업을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 마음으로 바꾸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갖도록 바꾸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을 계속해서 가지게 되면 피가 하나님의 피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피로 변해야 하나님이 되는 거지 그 피가 사람의 피를 그대로 가져가지고는 하나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항상 하나님을 고도로 사모하고 또 고도로 사모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늘 마음 속에 새기고, 쉬지 않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이사람만 그런 기도할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 얻을 자는 24시간 늘 기도해야 됩니다. 눈만 뜨면 24시간 늘 기도해야 됩니다. 걸어다녀도 기도를 해야 되고, 앉아서 예배를 봐도 기도를 해야 되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기도를 해야 됩니다.

안 바라봐질 때는 ‘가로막는 마귀 뿌리째 뽑아서 박멸소탕’ 기도해야

여러분들에게 초초로 구세주의 얼굴을 바라보라고 그랬습니다. 하늘을 봐도 구세주 얼굴이 보여야 되고 땅을 봐도 구세주 얼굴이 떠올라야 되고 사람을 봐도 구세주 얼굴로 보여야 합니다. 전도할 때도 구세주 얼굴을 전도하는 사람에게 새기면 전도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전도가 안 됩니다.

아무리 성경적으로 이야기를 잘 해도 전도가 안되는 이유는 그 사람 속에 마귀가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사람을 초초로 바라보라고 그랬던 것입니다. 영모님도 단에서 ‘바라보시라요’ 그랬습니다. 초초로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라고 했던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바라봐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바라보려고 해도 생각이 안 나서 바라봐지지 않으면 사진을 바라보라고 그랬습니다. 사람 얼굴 같으면 왜 안 바라봐지겠어요. 사람 얼굴은 다 생각을 하면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이사람의 얼굴은 사람 얼굴이 아닙니다. 사람 인두겁만 썼지 사람 얼굴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바라보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은 마귀가 주체영으로 있기 때문에 마귀가 구세주 얼굴을 바라보다가는 마귀가 죽으니까 마귀가 바라보지 않도록 방해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라보려고 애를 써도 안 될 때는 ‘가로막는 마귀 뿌리째 뽑아서 박멸소탕’이라고 해야 합니다.

나라는 주체의식이 바라볼 수 없게 가로막는 마귀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때는 가로막는 그 마귀를 뿌리째 뽑아서 박멸소탕이라고 기도하면 다시 바라봐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노력도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해버리기 때문에 바라봐지지 않는 겁니다. 기도법을 가르쳐 준 대로 해보세요.

<무량대수 마귀 일초동안에 무량대수 회수로 계속해서 몽땅 뿌리째 뽑아서 성령의 검으로 난도질하여 성령의 도끼로 짓이겨서 성령의 멧돌로 갈아서 성령의 불로 태워서 유황불로 박멸소탕 박멸소탕 박별소탕 박멸소탕 박멸소탕 박멸소탕>

마음 속에 이긴자의 얼굴을 새겨야 감로이슬 은혜를 받아

여러분, 초초로 바라봐져야 이 길을 가는 것이지 안 바라봐지면 이 길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승리제단에 나온다고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눈이 뚫어져라 바라봐야만 되는 것입니다. 단상에서 예배를 볼 때는 바라봐지는데 예배만 끝나면 생각이 안 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걸 이사람은 다 압니다.

왜냐하면 바라봐지는 사람한테는 이사람을 통해서 은혜가 가고 있기 때문에 누가 바라보고 있는지 누가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사람은 사람 몸만 입었지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라고 격암유록에 씌어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니까 그 눈에 나타나지가 않는 겁니다. 그 얼굴이 나타날 때는 바로 마귀가 죽는 겁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초초로 바라보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것만 기도가 아니라 바라보는 것도 기도입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이긴자 얼굴을 새기고 있으면 하나님의 영이 마음속에 있다가 되는고로 마귀가 죽어버리게 되어 있어요. 마귀가 죽으니까 이긴자의 얼굴이 새겨지지 마귀가 죽지 않고서는 이긴자 얼굴이 새겨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진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바라보는 연습을 해서 바라봐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귀가 죽은 상태로 그 마음이 이루어져야 감로이슬이 가는 것이지 마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감로이슬이 그 사람에게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사이클이 맞아야 은혜가 간다고 그랬던 것입니다.

잡념이 많은 사람은 잡념을 없애야 초초로 사모할 수 있어

그리고 잡념이 많은 사람은 이 길을 못 간다고 그랬습니다. 잡념이 많으면 이긴자와 마음의 사이클을 맞추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애를 쓰고 기를 써야 되어지겠죠. 이사람도 옛날에 되어지지 않으니까 되기 위해서 펑펑 울기도 울고 대성통곡 을 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어 울면서 애원을 하고 매달리니까 나중에는 조금씩 되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간절한 심정으로 매달려야 이 길을 가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점잖 빼다가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간절한 심정이 있어야 그것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해요. 아무리 바라보려고 해도 안 될 때는 ‘가로막는 마귀 뿌리째 뽑아서 박멸소탕’을 계속하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될 때에는 ‘온전히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서 맡아주세요’고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온전히 맡겨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것이 되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에게 온전히 맡기는 생활을 해야 그것이 쉽게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지 맡기는 생활을 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생활을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승리제단은 의인을 키우는 역사를 하는 곳

승리제단 역사는 숫자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을 키우려고 하는 겁니다. 의인이 한사람 두 사람 열 사람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수월해집니다. 의인의 숫자가 자꾸 늘어나면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미어터집니다. 미어터지고 앉을 장소가 없게 됩니다. 아시겠어요? 의인의 숫자가 채워지지 않으니까 예배봐도 빡빡하고 그런 겁니다. 아시겠어요?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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