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과 역경

조희성님을 죽이려는 마귀를 이기고 무죄로 승리하시다.

조희성 선생이 기성종교와 전혀 다른 차원의 참신한 교리를 내세우며 전도를 해 나가자 이에 예민해진 기성종교 교단에서는 선생을 눈엣가시처럼 보았습니다. 더욱이 선생이 1991년 8월 제단을 신축하여 교세를 확장해 나가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기성교단은 탁명환을 앞장세워 선생이 신도들을 살해했다는 등 고소 및 탄원을 하기에 이르렀고, 1993년에 들어선 김영삼 정부는 종교사정이라는 미명하에 조희성 선생을 구속하기에 이르렀습니다(승리진경, 이긴자의 1차수난 1장).
 

선생을 구속한 김영삼 정권은 선생에게서 신도살해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없자 영생을 준다고 속여 헌금을 받았다며 조희성 선생을 사기죄로 2번 처벌하였던 것입니다. 첫 번째는 2년 6월형, 두 번째는 4년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어 도합 6년 6월형(대법원 상고로 인하여 약 2개월이상이 늘어나서 실제로는 6년 8개월 25일)이 선고되었습니다(승리진경, 이긴자의 1차수난 11:11-13).

더욱이 두 번째 사건은 헌금을 하지도 않는 자들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 첫 번째 사건에 대한 심리가 법원에서 진행되는 과정에서 병합하여 심리할 수 있는 사안을 별개의 사기죄로 다시 기소하여 처벌받은 것으로 매우 억울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검찰이 기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대표적인 직권남용의 재판이었습니다. 즉 동일한 범죄로 인하여 두 번 처벌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 원칙과 이중처벌 금지의 원칙에 반하였던 것입니다(승리진경, 이긴자의 1차수난 7장).
선생은 위 두 개의 재판에 의해 종교단체에 헌금한 것이 사기라는 유례없는 판결로 약 7년간 복역한 후 2000년 8월에 출소하였던 것입니다.

조희성 선생은 출옥 후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기울어진 교세를 회복하고 신도들의 신앙을 재건하기 위하여 애를 썼습니다. 본부제단 예배를 마친 후 거의 매일 전국의 각 제단 방문하여 예배를 보고 신도들을 독려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제단도 방문하여 승리제단 재건운동을 맹렬히 해나갔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떠나갔던 신도들이 다시 돌아오고, 많은 새식구들이 들어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옥고를 치르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승리진경, 2000년 8월14일의 환희 1:12-21).
특히 선생은 2008년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빛이 선생에게 임하여 발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전 세계 만민들이 한국에 와서 선생의 얼굴에서 나가는 빛으로 인해 영생을 하게 된다고 설교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호의 호조건이 되어 전 세계 만민들이 다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을 불과 5년을 앞둔 2003년 8월에 선생께서는 다시 2차옥고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2차옥고는 소위 승리제단 신도들이었던 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었습니다. 정광조는 자신의 매부 김진태가 실종자 살해와 관계가 있는 것을 알고 선생이 시켜서 신도를 살해했다는 거짓말을 하게 하였고, 이에 따라 검찰은 선생을 신도살해 혐의로 구속하였습니다(승리진경, 주님의 2차수난 1-2장).
선생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으나 수원지법 1심재판부는 김진태의 허위진술을 받아들여 선생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선생은 즉각 항소하여 서울고법에서 2심 심리가 되었고, 선생은 드디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승리진경, 주님의 2차수난 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