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관보다 휠씬 강한 은혜 내려

작성자 : 승리제단Date : 2014-02-24 13:16  |  Hit : 3,164  
 간증담 전도관보다 휠씬 강한 은혜 내려   저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군 세곡 면입니다. 그런데 큰 아버지께서 정감록 비결을 보시고 남쪽 속리산에 가서 살아야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하여 해방 전에 어머니를 따라 보은군 내속리면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1960년도쯤에 이북 고향에 계시던 큰 외삼촌이 서울에 산다는 소식을 듣고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상봉하게 되었고 아버지께서 속리산에 와 살아야 살 수 있다고 말해 주어 큰 외삼촌 댁도 보은으로 이사를 오시게 되었습니다. 마침 전도관이 옆에 있어서 외숙모님께서는 전도관에 다니게 되셨습니다.   ◇ 직장 잡을 욕심으로 전도관에 들어가  그분들은 1년 후 다시 서울로 가셨고 저는 시골에서는 돈 버는 것이나 공부할 길이 막막하여 외숙모님 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외숙모님이 제게 새벽제단에 다니자고 하였는데 저도 직장 구할 욕심으로 비행장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기와공장에 몇 달 다니다가 폐유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기름독이 올라 팔이 붓게 되어 작업을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전도관에서는 병원에 안가도 영모님이 축복해주시는 생수와 밀크카라멜을 먹고 바르면 낫는다고 하기에 저도 한 번 시험해볼 작정을 하고 외삼촌에게 구해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하지만 당장 제단에는 없다고 하시고 토요일 영모님께서 단에 서시는 이만제단(서울)에 가서 축복한 생수와 밀크카라멜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날 저녁 기도하면서 먹고 바르고 한 다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팠던 흔적도 없이 깨끗이 나아서 그저 신기하고 기뻐서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달 지나 기름독이 나았던 것도 나을 때가 되어 낫게 되었다는 의심이 나기 시작하였을 무렵, 다시 팔에 부스럼이 나게 되었고 그래서 또 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외삼촌이 병원에 가라고 했으나 이번에도 생수와 카라멜을 먹고 나면 진짜 주님의 은혜로 낫는 것으로 믿으려고 외삼촌께 다시 부탁하였고 그래서 이만제단에서 축복한 생수와 카라멜을 받아먹고 바르고 자고 일어나니 아팠던 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신앙촌에 입주하여 영모님께 은혜만 받으면 앞으로 병 없이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더군다나 집에 부모님이 자주 아파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것을 생각하니 식구 모두 신앙촌에 입주하면 만사가 풀릴 것 같았습니다.몇 달 후에 외삼촌댁이 소사신앙촌 D동으로 이사를 가셨는데 외숙모님께 부탁하여 소사신앙촌 건설대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에 덕소신앙촌 비누공장으로 이동하여 근무하고 있다가 일이 많지 않아 제과공장으로 이동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정상 제강공장 용해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1년 가까이 지났을 때 용광로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폭발할 때의 파편이 저의 왼쪽 다리를 강타하게 되어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하는 말이 왼쪽 다리가 무려 13조각으로 부서졌다고 했습니다.*   ◇ 영모님의 축복으로 다리가 붙어
 45 일간을 중부시립병원에 입원치료를 해도 아무 효과도 없이 살이 되살아나지 않자 의사선생님이 의족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하기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퇴원수속을 신청했습니다.  병원에서는 한 번 나가면 다시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강제로 퇴원하였습니다.하루는 제강공장 의무실에서 생수치료를 받고 있는데 다들 새벽기도 가고 혼자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면 친척들이 어떻게 대할까’ 이러한 생각들을 머리가 아프도록 하고 있는데 영모님께서 갑자기 들어오시는 것이 아닙니까! 요즘은 어떠하냐고 물으시면서 눈 안찰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너는 공상을 하면 죽으니 당장 그 생각을 끊으라고 하시면서 다리 상처부위를 축복하시는데 안개같이 김이 서렸습니다.  수시로 찬물방울이 닿는 기분으로 착근함을 느꼈고 수개월 지나서 뼈가 붙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사고 난 다리가 다 나아서 다시 제과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늦가을에는 직장 대항운동회가 있었는데 구내식당에서 특별히 잡채를 만들어 선수들과 공장식구들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날 저녁 야간 일을 했는데 배가 아픈 환자가 너무 많아서 영모님께 보고하여 특별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독신이라고 해서 잡채를 많이 챙겨주어 먹었는데 칼로 창자를 다 자르는 것 같이 아팠지만 보일러를 가동하면서 안찰을 받게 되니 서서히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청년들은 2~3일 정도 앓고 노인들은 1주일 이상 앓았습니다.수개월 후, 수사기관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어느 기성교회 신도가 잡채에 쥐약을 탔다는 내용이 들려왔습니다. 전도관을 망하게 하려고 별의별 사람들이 신앙촌을 찾아 왔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제과공장식구 200여 명이 죽었다면 저도 승리제단에 못 왔을 것이며 또한 이 우주보다도 귀한 영생의 대열에 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그 후, 개인 사정 때문에 사회에 나오게 되었고 직장생활하며 항상 영모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기성교회도 다녀보고 에덴성회도 나가 봤지만 전도관에서 받았던 은혜를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 ‘영생학’을 읽고 제단에 입문하다  그렇게 전도관에서 내렸던 은혜를 갈망하던 중 우연히 책방에서 ‘영생학’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속에 ‘성경의 참 진리’라는 책이 소개되어 있기에 전화를 해보니 청주에 있는 승리제단 전화번호를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청주승리제단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주님의 말씀을 계속 들으니 전도관보다 은혜가 강하게 임함을 느껴 이곳에서 영생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남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수 개월 동안은 제단에 나오는데 여러 가지 마귀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이 영생의 길은 하루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구세주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부득이 빠지게 되면 이튿날은 제단에 두 번 나와 숫자상으로는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기를 썼습니다.   ◇ 앗! 순식간에 택시 보닛위에 올라타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하루는 차 타러 가려고 횡단보도에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택시가 제가 있는 인도로 돌진하였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놀랍게도 제가 택시 앞쪽 보닛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내려와서 몸을 움직여 봐도 아픈 데도 없고 상처 난 곳도 없어 택시를 보내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주님께서 사고를 막아 주신 것이 확실하여 그 후로 더 열심히 제단을 쌓았습니다.그 후로 몇 년 신앙생활을 하던 중, 제단건물 주인이 부도가 나서 전세금도 못 받고 30만원 월세로 이사를 가서 제단을 쌓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제단이 없더라도 저 혼자라도 부모산(청주시에 있는 산)에 올라가서 제단을 쌓을 각오를 하고 다니고 있었습니다.하루는 갑자기 사진을 찍고 싶어 찍게 되었는데 이슬은혜 사진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를 버리시지는 않았구나’ 이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에 지금의 제단을 주님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괴로울 때나 어려울 때 항상 주님께 맡기고 간구하면 길을 열어주시고 지켜주시니 마귀공격이 빗발쳐도 옆길 보지 말고 처음 신앙을 시종일관으로 주님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전진하고 또 전진하면 주님의 뜻도 이루고 영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청주제단 우덕환 승사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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