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적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 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후략)

*위 산문은 박완서님의 글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다른 분이 쓴 글이다.  쓰신 분의 성함이 생각나지 않아 글쓴이란은 그냥 빈칸으로 나둔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의 이른 아침, 아파트 화단에, 가정집 담 너머로 장미꽃이 만발했다. 날씨도 화창하고 풍경도 화사하니 기분이 더 상쾌하고 즐겁다.
우유를 받으시는 한 단골 할머니는 부지런하셔서 늘 아침 일찍 대문을 열어놓고 우유가 오기를 기다리신다. 오늘은 우유를 전해드리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집안에 들어가셔서 맛있어 보이는 쑥절편과 과일을 한 보따리 싸서 건네주신다. 전날 제사라도 지내셨나 보다. 내가 혼자 자취한다고 자주 뭘 많이 챙겨주셔서 늘 감사하다.

배달일을 마칠 무렵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한 할머니가 꼬부랑 허리를 하고 유모차를 잡고 서 있다. 유모차에는 파지가 실려 있다. 아침 일찍 파지를 주우려고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신가 보다. 나는 쑥절편이 아깝기도 하고, 남의 이목도 있어 잠시 멈칫하다가 시장 모퉁이를 돌아가는 할머니를 쫓아가 집에 가 드시라고 떡과 과일 보따리를 전해드렸다. 고맙다면서 웃으시는 할머니께서 어디서 주우셨는지 뒤축에 약간 흠이 있는 구두를 건네며 신으라고 하셔서 감사히 받았다.
할머니는 생활이 어려우니 아침부터 불편한 몸을 움직여야만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열심히 걸어다녀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도 일상의 가난과 난관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좋은 약이 될 수 있으니 오히려 축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좋겠다.

오전에 타 지방에 계신 지인 두 분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 건강이 안 좋다고 하셨다. 두 분 모두 할머니인데 한 분은 다리에 점점 힘이 빠진다고 하셨는데 곧 수술을 받을 예정이고, 다른 한 분은 허리에 통증이 점점 심해져 힘들어하셨다. 중년이후의 많은 여성분들이 걷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주로 척추나 무릎관절이 상한 이유이다.
초능력 생겨 아픈 분들 감쪽같이 낫게 해드리고 싶다
내 주위엔 무릎연골이 닳아 수술을 받은 분들도 있고, 한 할머니는 금이 간 고관절이 붙지 않아서 몇 년째 바깥에 나가시지 못하고 집안에서 걷는 연습을 하고 계신다. 수술조차 불가능해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또 다른 할머니는 매일 방안에 갇혀 지내는 게 괴로워 얼마 전에 수면제를 20알 드시고 자살까지 시도하셨다. 이 분들은 모두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다. 이 분들에게 꿈에도 그리는 기적이 일어나 편히 걸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옆에서 보는 나도 안타까와서 어떤 때에는 나에게 초능력이 생겨나 허리나 무릎이 아픈 할머니들을 싹 낫게 해준다면 좋겠다는 어린 아이같은 상상도 해본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에게 다리에 힘이 있을 때 여행도 많이 하고, 치아가 성할 때 식도락도  즐기라고 말씀하신다. 나로서는 여행이나 식도락을 즐길 여유는 없다. 하지만 다리가 성해서 여행보다 더 값진 발걸음의 일들이 주위에 널려있음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거칠고 맛없는 음식이라도 농민들이 흘린 땀의 노고를 생각하면 귀중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보면 내 몸도 늘 건강하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 건강할 때에 몸을 잘 보살피고 시간을 아껴 보람된 일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많은 완성의 미륵불 출현해 중생들 눈물 씻겨 주길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일요일에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 댁에 모였다. 큰 누나는 장염이 걸려 아픈데도 어머니께 드릴 옷과 꽃을 사들고 왔다. 내가 안마를 해주는데 보니 그 많던 머리칼도 숱이 많이 빠져 듬성하고, 목과 어깨가 많이 굳어있고 팔을 살살 주무르는데도 비명을 지른다. 누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몸이 많이 상한 것 같아 보였다. 나와 나이 터울이 많아 어릴 적부터 엄마처럼 자상하게 보살펴주던 누나의 약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또 어린 아이같은 마음이 되어 소원을 빌어본다. 이 땅 위에 완성된 미륵부처님들이 많이 출현하셔서 고생스런 삶을 살아가는 여러 중생들의 눈에서 눈물을 깨끗이 씻어주는 날이 하루빨리 오소서 하고.*
라준경/ 대구승리제단 책임승사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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