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인생의 중요한 가치와 의미는 불사영생에 있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Date : 2015-12-15 16:32  |  Hit : 3,376  
 입문수기 마지막 회, 인생의 중요한 가치와 의미는 불사영생에 있다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방위로 빠지다 
 귀국해서는 군대 갈 요량으로 마음 준비했다. 2년간 모아 둔 1000만원 정도를 가지고 해남에 땅을 사자고 아버지께 제의해 봤으나 아무 반응이 없어서 주식에 투자했다. 배를 탈 때, 조타순가 선장님인가 주식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부모님께 여쭙지 않고 섣부르게 투자를 하였다. 고향친구들과 여기 저기 놀러 다니면서 신체검사를 기다렸다. 만약 군대 문제가 잘 풀리면 돈 벌기 위해 다시 외항선을 타고, 그렇지 않으면 군대 갔다 와서 육상에 아예 정착하려는 생각을 했다. 선박생활 할 때,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나의 가슴과 뇌리에 강력히 박혀 있었던 탓도 있었고, 항해사하며 스트레스 받은 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던 탓도 있었다. 
 어느 날 신검 통지서가 날아왔다. 신검 받는 담당관에게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검열관이 그러면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받은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청력이 어느 정도 나쁘면 군대를 면제 받을 수 있다고 알았다. 사실 중학교 때, 선배한테 한 대 맞았는데, 그 때 고막이 찢어져서 왼쪽 귀가 잘 안 들렸다. 그걸 구실삼아 군에 안 가려고 했다. 여기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청력검사를 받을 때 어떻게 수작을 부려볼 예산이었다. 불순하게 무슨 의사한테 돈을 쓰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고, 약간 편법을 써서 왼쪽 귀에 과도한 힘을 주면서 청력을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해서 진단서를 떼어 주니 4급 방위로 빠졌다.
 꼼수에 결과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방위로 그나마 빠진 것이다. 내 생각에 당연히 방위로 빠지면 군대 가야되나보다 판단하고 배를 탈 생각을 포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항선을 3년간 타면 자동 면제된다는 것을 알았다. 결과론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로 가닥이 잡혀서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지역 후배 고참이지만 지시를 잘 따르니 군 생활 편해 
그 해 90년도 5월 광주에서 신병교육을 4주간 받고, 해남읍부대의 기동타격대에 배치를 받았다. 부대에 들어갔더니 대부분이 지역 후배들로 나이가 1년에서 3년까지 어린 후배들이 고참이었다. 나는 다년간 단체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이가 많고 선배라고 해서 거북스럽게 생각지 않았다. 군 기강에 입각하여 고분고분 순종하며 군 생활에 임했다. 그랬더니 고참들이 더 신경 써주고 잘 봐주었다. 동생도 같이 방위를 받았는데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형이 착하여 군 생활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나보다 1~2년 선배들도 방위를 함께 받았는데, 나이 어린 고참한테 많이 개기었다. 그 바람에 개긴 그 기수들은 단체기합을 받거나 군용 야삽으로 가슴이나 엉덩이를 사정없이 맞았다. 거의 제대할 때까지 그런 걸로 안다. 지역 방위다보니 저녁 5시에 퇴근하면 보복을 당할 수도 있으니 감정적으로 하지 않고 군기로서 때린 것이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입소를 해야 하니 앙심을 가지고 맞불을 놓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해남에는 조직이 많다. 상당히 그런 조직이 많아서 피차간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방위생활이었을 게다. 
 우리 기동타격대는 전라도에서 5.18광주 민주화 운동의 뼈아픈 역사가 있었기에 상시 데모 진압하는 장비를 갖추고 훈련을 빡세게 받았다. 실상 현역에서 훈련하는 거와 똑같이 일과가 짜져 훈련받는 방위로 통하였다. 당시 진지구축이 사단의 핵심과제여서 여름에는 대부분 야산에 참호와 진지를 구축하느라 삽질과 곡괭이질을 참 많이도 했다. 지금도 삽질이라면 누구한테 안 진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간혹 주식을 확인해 봤는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제일 싸고 많이 내린 종목을 샀다. 얼마 안가서 회사가 부도가 나서 망해버려 돈을 다 날렸다. 상당히 큰돈이었지만, 또 벌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18개월의 방위 근무를 별 탈 없이 마쳤다. 군 생활에서 깨달은 것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것이 심신이 편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꿈을 찾아서
군대를 제대하고 해남에서 좀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고향을 떠날 것을 말씀 드렸다. 그때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무당이 그러던데 해남을 떠나면 사주팔자가 안 좋다”고 하였다. 그런 말에 신경 쓰지도 믿지도 않았다. 경기도 하남에서 밀링과 선반 공장을 하는 이모님 집에 상경했다. 이모부가 사장으로 계셨고, 가정집과 공장을 겸하는 건물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모부가 하는 일을 도우면서 그럭저럭 지냈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는 지장은 없었다. 몸이 아픈 데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크게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장래에 대한 비젼과 목적의식이 없어서 다소 무기력하고 의지박약하여 몸이 약간 부실했다. 그런 입장이다 보니 건강에 대하여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가올 장래를 전망컨대 앞으로는 돈과 명예도 중요하겠지만, 건강과 장수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안목을 갖게 되었다. 공장 일은 나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 적극적으로 배우지를 않았다. 몸만 머물러 있었지 마음은 딴 세계에 가 있었다. 선박생활을 할 때나, 이모님 댁에 있으나 항시 일본어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복에 기름 묻히는 블루칼라로서 살기보다는 넥타이에 힌 와이셔츠를 입고 일하는 화이트칼라를 소망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일본어 통역관이 되고자 하는 꿈을 꿨다. 어떤 때는 과감히 일본어 문화원에 필기시험을 지원해서 응시하기도 했다. 막상 일본어에 대한 시험을 보니 내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힘이 빠졌다. 그래서 좀더 체계적이고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생각한 것이 일본어어학원을 찾아가봐야 하겠다고 작정했다. 그리하여 길을 나선 것이 1992년 2월 9일이다. 뭔가 일상의 무사안일(無事安逸)한 딱딱한 틀을 깨부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데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일어학원을 찾다가 승리제단으로
하남시를 나와 서울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역 가운데 구로역이 익숙해서 구로역에서 내렸다. 역 앞에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길을 물었다. 여기 근처에 일본어 어학원이 어디에 있느냐고 낯선 할아버지한테 길을 물은 것이다. 그 분이 바로 승리제단에서 전도하러 나오신 조 장로님이었다. 그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왜 일본어 어학원을 찾느냐고 물어 보았다. “예, 일본어를 공부해서 일본어 통역관이 되려고 그럽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조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단체에 가면 일본에 유학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라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일말의 의구심을 갖지 않고 조 장로님을 따라 나섰다. 그날 저녁 지금의 이 임분 권사님 댁에서 하룻밤을 유숙했다. 다음날 조 장로님과 함께 당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건물인 승리제단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일본에 갈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낯선 승리제단에 거부감 없이 들어섰다. 그날부터 제단에 머물렀고, 이모와 이모부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말 못할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승리제단에 머물면서 예배도 보고, 다른 청년들과도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승리제단의 외적 내적 법도와 체계를 익혀 나가면서 동화되어 갔다.  내 나름 전망한 불로장생시대의 도래와 코드가 딱 맞았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배우며 새로운 지식을 진공청소기처럼 마구 흡수했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고 지각없는 사람은 아니다. 조리에 맞지 않고 사리가 어긋나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사리분별을 정확히 하는 사람이다. 항상 세상을 살 때에 바르게 살고,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중심과 확고부동한 윤리관을 가졌다. 승리제단에서 논하는 건강의 개념과 원리, 불로불사의 도와 실천방법이 너무나 합리적이고 완벽했다. 한점 의구심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지나온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하고 깨달은 건강과 생명의 중요성, 그리고 불로장생 시대의 도래가 대세 흐름이라는 것이 나와 너무나 딱 맞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승리제단과 생사고락을 하여 온 지가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내 삶과 내 심정을 적나라하게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어가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여기에는 어떠한 가식적이고 억지로 치장한 얘기는 없다. 진실로 이 글을 통하여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인지, 또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느끼고 공감하였다면 글쓴이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 본다. 여기에 더하여 늙고 병들어 죽음이 없는 승리제단의 진리의 기치 아래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감사합니다.* 
                                                                                                            김주호 승사 / 본부제단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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