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주운 승리신문에서 미륵불의 출현 소식 접해

작성자 : 승리제단Date : 2014-02-24 13:34  |  Hit : 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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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회-우연히 주운 승리신문에서 미륵불의 출현 소식 접해 우레와 같은 미륵불의 음성은 내 마음속 삿된 기운을 여지없이 몰아내는 것이었다. 마음이 시원하였다.   성경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말씀 하나 하나가 감탄 감동이었다. 향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목이 터져라 찬송가를 부르니 참회의 눈물,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내렸다.
  지하철 안에서도 향취냄새가 나고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 주님의 얼굴로 보이기도 하였다. 어려운 상황은 ‘그저 잘 이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와 기쁨으로 이겨나가는  신앙생활이 자리잡았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제법 학교공부도 잘하였던 바 5남매의 장남으로서 집안의 기대를 모았으나 S대학에 실패한 후 천성이 내성적인 성격이라 심한 좌절감으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지방대학 법학과에 들어가 고시 준비를 했는데 고교 동기들의 고시 합격소식이 들리면 가슴이 답답하고 살맛이 나지 않았다.  머리 빡빡 깎고 학교 다닐 땐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데…. 자존심이 좀 강한 편이라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니 만큼 고시는 포기하고 빨리 취직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대 후 3개월도 되기 전에 다행히 KAL에 취직이 되었다. 신입사원이라 회사 업무 익히기 바빠서 고시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응어리가 맺혔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강증산 선생에 대한 호기심에 대순진리회에 입도(入道)하다  대학졸업 한 달 전에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에 다니면서 쉬는 날이면 친구와 테니스를 치거나 하숙집에서 틈틈이 주로 철학, 불교 관련 책을 읽고, 고전음악을 들으며 소일하곤 하였다. 불교는 주로 마음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이 내면적인 것을 추구하는 나의 취향에 비교적 잘 맞았던 것이었다. 고승(高僧)들이 어떻게 공부 했는지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불교 지식 전반에 대한 아주 전문적인 수준 정도는 아니고 불교에 대한 맛은 보았다고 할 정도의 교양적인 수준의 독서였다.평소에 서점에 자주 들러 책 구경하는 습관이 있던 차에 그러니까 1980년 여름, 종로서적센터(종로2가에 있었던 대형서점, 현재는 폐점되었다)에서 유불선에 고루 밝은 탄허 스님이 쓴 『부처님이 계신다면』책을 사서 읽어 보았는데 다른 불교 스님이 쓴 책과는 달리 흥미있는 내용이 있었다.  ‘주역에 대한 언급과 지축이 바로 서고 세계인구 중 2/3가 죽게 되며, 바다와 육지의 비율이 반대가 되는 대 격변이 있을 것이며, 기존 종교가 다 망하고 유불선이 하나가 되며, 초종교가 출현하고 인류가 그리던 이상향이 도래하게 된다. 한국이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이 된다. 조선시대 말엽에 강증산이라는 이인(異人)이 있었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등등의 내용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보고 강증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어떤 인물일까 호기심이 일어나서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교수들의 논문도 찾아보고, 강연회도 참석해 보고 하던 중 1982년도에 대순진리회에 입도하게 되었다. 중곡동 3층 영대(靈臺)에 올라가서 주문도 읽어 보았다. 한번은 귀신이 나타났으나 내가 귀신을 잡으러 쫓아가면 귀신이 도망가는 그런 꿈도 꾸어 보았다.  아마 주문을 읽으면 잡신도 범접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대로 믿고 주문을 읽으니까 그런 모양이었다.한 달에 두세 번 정도 가기도 하였지만 대순진리회 자체의 신도 교육체계가 갖추어지지 못했는지 시원한 설명을 제대로 받아 보지를 못했다. 대순진리회의 선무나 교무는 강증산이라는 분이 미륵불로 출세했으며 천지개벽을 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게 되어 있으니 주문을 열심히 읽어야 된다,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는 말만 했다.  대순진리회 신도들은 술과 담배를 하는 등 신도의 기본 심법(心法) 교육이 제대로 안되어 있어 실망이었다. 또한 자기가 포덕(布德) 즉 전도한 사람이 대순진리회를 그만 둘 경우에 그 사람 몫으로 성금을 내야 나중에 도통줄이 내려올 때 끊어지지 않고 자신에게 연결된다면서 모든 것을 돈으로 때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간 회의가 들고 그러던 차에 마침 회사로부터 방콕으로 해외지점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어 자연스레 그곳과 멀어지게 되었다. 대순진리회에 입도(入道)한 지 2년 만이었다.     ◇ 우연히 주운 승리신문에서 미륵불의 출현 소식을 접하다  방콕에서 생활할 때에도 도(道)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생활이라 여의치 않았다. 1987년 말경 방콕공항에서 근무 중 방콕에 도착한 비행기 속에서 승리신문을 우연히 주워서 읽게 되었다. 나라는 것이 바로 마귀이며 나라는 마귀를 죽이면 사람이 죽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바로 한국에 미륵불이 출현하여 그 비결을 가르쳐 준다는 내용이었다.  불교에서도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없애면, 즉 무아경지(無我境地)에 이르면 도통한다, 불생불멸(不生不滅)한다고 했는데 그 내용과 통하면서도 아주 분명하게 그 뜻이 내게 다가왔다. 어렴풋이 알던 대순진리회에서 미륵불이라고 하던 강증산 선생과도 어떤 면에서 그 맥이 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하면 꼭 찾아가서 알아보리라.’ 속으로 다짐하고 승리신문을 고이 간직하였다. 1988년 2월 초 열대지방 근무를 끝내고 귀국하고 보니 한국의 겨울 날씨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아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추위가 좀 풀린 3월에야 승리제단(역곡2동에 있었던 舊제단)을 방문하여 예배를 보게 되었다. 우레와 같은 미륵불의 음성은 내 마음속 삿된 기운을 여지없이 몰아내는 것이었다. 마음이 시원하였다.  내가 알기에는 도통한 분은 음성도 보통사람과 다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바로 대 도통을 한 분의 음성이었다. 나는 비록 성경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말씀 하나 하나가 감탄 감동이었으며 사력을 다해 손뼉을 세게 치니 땀이 비 오듯 하였다. 향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목이 터져라 찬송가를 부르니 참회의 눈물,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내렸다.  지하철 안에서도 향취냄새가 나고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 주님의 얼굴로도 보이기도 하였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신앙생활의 기쁨이었다. 대구에 계신 부모님과 두 남동생에게도 연락하여 꼭 제단에 나가도록 권하였다. 아버님도 정년퇴직 하시고 잠시 암자에도 계시면서 불교에 심취하기도 하셨기에 주님의 말씀에 금방 감화되시어 부모님과 두 남동생 모두 제단에 나가게 되었다.  집사람에게도 적극 권하여 미륵불님을 만나 뵙게도 하였으나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 기독교 신자인지라 나의 신앙을 극렬히 반대하였다. 집안 식구가 다 제단에 나가니까 반대는 더욱 심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나를 마귀로 취급하였다. 하지만 일체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 넌 마귀새끼’이지 속으로 되뇌면서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설움의 눈물이 아니다. ‘그저 잘 이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었다.그런 세월이 흘렀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감사와 기쁨의 신앙생활이었다.*         두 번째 회 – 승리제단을 떠난 후 매사가 잘 안 풀려  1990년 3월 하순 갑자기 소련 모스크바 출장 명령을 받았다. 길어야 3일 내지 7일로 예정하였으나 장장 80일이 될 줄은 몰랐다. 3월 어느날 모스크바 공항식당에서 공항 활주로를 바라보면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약 5분 사이에 폭설로 창밖의 공항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처음 온 공산주의 국가여서인지 긴장감과 을씨년스러움이 더했다.   공항 엘리베이터 속에서는 김일성 뺏지를 단 북한의 고려항공 직원과도 만나기도 하였다. 긴장의 시간들이었다. 때마침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최고 지도자였을 때였다. 승리제단의 미륵불님께서 “공산주의를 없애겠다”고 하신 대로 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 없이 그저 단순한 이론으로만 만들어진 공산주의 자체의 모순으로 경제가 완전히 거덜 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시민은 호텔 출입이 금지되고 저녁이면 거리는 완전히 암흑천지가 되었다. 출장 기간 중 밤에는 외출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호텔에 80일 있는 동안 식사 메뉴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메뉴는 소 혓바닥, 소시지, 계란, 빵, 치즈, 요구르트, 채소는 오이 하나뿐이었다.  이른 아침 슈퍼마켓 앞에는 아줌마들 수백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늦게 들어가면 상품이 동나기 때문이다. 돈이 있다고 음식을 마음껏 사먹을 수도 없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의 고위 경영진이 모스크바에 와서 두 끼 굶고 간 일도 있었다.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를 없애시는 미륵불님의 능력을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보던 예배를 못 보게 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세상에 오염이 되어 괴로웠다. 매일 예배 보라시던 미륵불님 말씀이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던 것이다. 6월 초 귀국하여 매일 예배를 보게 되니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 “안 가면 좋을 텐데”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세상 인연 줄에 꽁꽁 묶인 나에게 운명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1991년 홍콩 부임 발령이었다. 하늘이 노랗고 앞이 캄캄했다. 소설 속에서나 앞이 캄캄하다는 것을 읽어 보았으나 실제로 당해 보니 정말 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웠다. 주님께 말씀을 드리니까 안 가려면 안 가게 해줄 테니 말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이미 인사명령이 났는데 어떻게 안 갈 수 있나, 안 가게 되면 회사생활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면서 주님께 아무 말씀도 못 드리고 있으니 “안 가면 좋을 텐데” 하시는 것이었다. 아! 용기없는 바보였다. 세상 줄에 꽁꽁 묶인 용기 없는 바보였던 것이다. 무슨 역마살인가 그만 홍콩으로 가고 말았다. 그렇게 또 세월이 지나갔다. 세월 속에 세상 때에 오염되면서 말이다.
정도령을 따라 도를 닦아야 되는 사람이 정도령을 떠나게 되면 세상사가 실타래처럼 엉키게 된다  그 후 다시 귀국하여 직장생활은 더욱 바쁘게 돌아가고,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는 등 세상사에 묶여서 신앙 문제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내가 방콕에 간 이후로 동생들도 제단을 떠나 있었다. “안 가면 좋을 텐데”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이 잘 돌아가질 않았다.  주님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였다. 1997년도에는 선배 되시며 회사의 경영진에 계시는 분이 뉴욕으로 가서 근무하라고 했으나 거절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외국에 나가서 살지 말라는 글을 본 것이 생각나기도 했었다. 그때 뉴욕으로 갔다면 아마 미국에 주저앉았을 것이고, 이렇게 다시 승리제단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 강증산을 진짜로 알아보려고 증산도에 들어가다  스트레스 불안 초조한 생활 속에서 어느덧 정년퇴직이 5개월 정도 남았을 때 ‘이래선 안 된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자’라고 마음을 다잡고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강증산 선생에 대한 궁금증이었으니까 ‘이번에는 강증산이라는 분을 확실히 알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증산도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1500페이지 정도 되는 증산도의 경전인 『도전』, 『우주변화원리』등의 책을 읽었으며, 동양 철학, 고대역사 등 거대 담론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심취하게 되었다. 천지개벽이라는 단어의 중압감에 눌려 최면 걸린 듯 읽고 읽었다. 최소한 10번은 읽어야지 하면서 지하철에서도 버스 탈 때도 기다릴 때도 읽었다. 틈만 나면 읽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렇게 공부해 보긴 처음이었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산책하면서 골똘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글귀들이 한자어이며 상징적이고 비결문(秘訣文)들이 많아서 막히는 부분이 곳곳에 있었다. 그 어렵다는 한동석 선생의 『우주변화의 원리』도 10번을 읽어 보았다. 그럼에도 워낙 난해한 책이라 대강 큰 틀만 알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문수련도 했다. 도공(道功)도 했다.  도공이란 눈을 지긋이 감고 앞에서 치는 북이나 징소리에 맞추어 팔을 흔들며 주문을 외우는 수련이다. 도공 수련시의 신비체험도 있었다. 도공에 몰입이 되니 갑자기 징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크게 소리 내어 읽는 ‘원황정기내합아신(元皇正氣來合我身)’이라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보름달보다 더 밝은 황금색 발광체가 나타나고 땅에서 하나의 물줄기가 올라오고 또 두 개의 물줄기가 올라오고 그리고 식후에 사용하는 식기 운반용 벨트가 보였다. 그 벨트가 S자로 바뀌더니 황룡으로 변하여 하늘을 나는 등 신기한 일도 있었다.  체험자는 앞에 나와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나는 원래 그런 체험이라는 것은 자기의 심령상태의 반영일 뿐 그런 것에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도 않았다. 어느 종교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고 있었다.  불가(佛家)에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 하여 수행 중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가 나타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모두 다 참이 아니고 헛된 상(相)이라. 거기에 매달리면 옆길로 빠지는 것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 증산도의 모순이 보이기 시작하다  그렇게 거의 6년이 흘렀다. 열심히 한 만큼 별 소득이 없으니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수도(修道)라는 게 마음을 닦는 것인데 나의 마음은 예전 마음 그대로였다. 도라는 것은 돈으로 살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증산도에서는 신명(神明)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될 수 없으니 조상 천도식을 자주 올려야 된다고만 강조한다.  자기 조상이 자기 후손을 도와주지 누가 도와주나 하면서. 신도들 대부분 천지개벽 때 사는 것이 목표라고 출석, 헌금 등을 점수화해서 품계를 정해준다. 개벽되면 품계에 따라 자리가 정해진다면서. 물론 단체를 운영하는 데에 돈이 필요한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을 닦는 것은 거의 중요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 회 – 돌아온 탕자, 다시 영생의 길로…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날뛰는 마음을 어떻게 조복(調伏)받을까 
노심초사하던 중 승리제단과 연결되었다
     ◇ 도인의 몸에서 향기가 나야 할 텐데  그뿐만 아니라 심신(心身)을 맑히는 일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술 담배는 기본이고, 술 마시면서 개벽을 얘기한다. 말로는 상생(上生)이나 행동은 상극(相剋)이다. 천도식 후 남은 막걸리는 도장 안의 냉장고에 보관해서 두고두고 마신다. 담배 피는 신도 옆에 가면 담배 찐 내가 난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할 도인의 몸에서 담배 찐 내가 웬 말인가?  지상선경(地上仙景)으로 가는 남조선 배를 타야 할 사람들이 담배 피면 이번 남조선 배가 아니고, 5만 년 후의 다음 배(담배)를 타게 될 것이라고 웃으면서 얘기해도 별 충격적 느낌이 없는 그들이었다. 심봉사(沈學圭)가 눈을 뜨려면 심청(心淸)이가 있어야 한다고 지나가는 말로 얘기해 주어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다.  마음의 눈이 어두운 사람이 눈을 떠서 광명을 얻으려면(도통을 하려면) – 심학규(沈學圭)는 이름 그대로 中央戊己五十土(하나님)을 공부하는 사람 – 마음이 눈보다도 더 희고 깨끗해야 된다(心淸)는 뜻인데 알려고 자세히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다들 그냥 교단의 지도자 말씀을 받아쓰기 바쁘다. 알음알이 지식으로 도를 닦는다. 학생들 암기 교육 하듯 뜻도 모르고 받아 적는다.  떠 먹여주는 것만 받아먹는 어린애 같은 신앙 아닌가! 진리는 언어 문자(이론, 지식)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는 데도 말이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 서(序)에 “진아(眞我)는 일신유거지궁(一神攸居之宮)”이라 했다. 진아(참나)는 하나님의 신이 거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진아를 찾아 회복하면 하느님을 모셨다{시천주(侍天主)}가 되고 또 신인합일(神人合一)이 되는 것이 아닌가. 가아(假我, 거짓 나-현재의 나)는 마신유거지궁(魔神攸居之宮)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 즉 현재의 나라는 것은 마귀의 신이 거하는 집이 되니 나라는 것이 마귀란 미륵불님의 말씀이 기가 막히도록 똑 떨어지는 게 아닌가!     ◇ 강증산 선생이 ‘사람 둘이 필요하다’고 한 뜻은?  강증산 상제님이 천지공사가 끝났다고 선포하니까 제자가 그럼 세상에 나서라고 하지만 사람 둘이 없어 나서지 못 한다고 했다. 왜 사람 둘이 필요한가는 아는 사람이 없다. 나도 알지 못했다. ‘사람 둘이 어디 있나’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대두목(大頭目)으로서 이윤(伊尹)의 도수(度數)와 문왕(文王)의 도수(度數)가 붙어 있는데 사람으로선 그 도수(度數)를 감당하기가 극히 어렵다고 하였는데, 증산도를 처음 시작한 안운산과 안경전 부자(父子) 두 사람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근거가 빈약하여 항상 찜찜해하고 있었다.이윤의 도수(度數)는 ‘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라 하여 오십(五十)에 도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윤은 하(夏)나라 마지막 왕인 폭군 걸왕을 49년을 섬겼으나 나이 50이 되어 탕을 도와 폭군 걸왕을 쳐서 은(殷)나라를 열게 한 사람이다. 또 문왕의 도수는 7년 옥고를 치르는 것을 뜻한다.  문왕은 은나라 마지막 왕인 폭군 주왕의 핍박을 받아 유리 옥에 갇혀 7년간 감금생활을 하였다. 주왕은 문왕의 아들 백읍고의 정혼녀인 달기를 빼앗아 취하고 백읍고를 죽여 그 인육을 요리하여 문왕에게 보내어 먹게 했다. 안 먹으면 죽여 없애고 먹으면 목숨만 살려 주려 했다. 문왕은 피눈물을 흘리며 먹는 체 하였다고 한다.  이윤과 문왕의 도수란 나이 50에 도통하고 7년 옥고가 있어야 하는데 증산도의 두 부자(父子)가 그에 해당된다는 것은 미심쩍었다. 그러던 중에 대전에 가서 교육 받을 때 평소 격의 없이 얘기하던 신도인데 나보다는 10년 연상으로 과거 목사로서 있었던 양반이 다른 신도와 같이 지난 밤 새벽 네다섯 시까지 술 마셨다고 떠들고 얘기하기에 그만 싫은 소리 몇 번 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지나쳤다면 용서하시라고 사과한 후 더 이상 증산도에서 신앙생활을 할 마음이 없어졌다. 교리가 지식 이론에 치우쳐서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없다 보니 신도들의 신앙관이 너무 유치하여 개벽 때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어 보인다. 마음을 닦지 않고 그저 욕심이 앞설 뿐이다.  진리는 언어 문자(지식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다는 어느 고승(高僧)의 가르침을 볼 때에 마음이 닦여지지 않았는데 주문 읽는다고 살 수 있나? 나 스스로도 잡념 망상 음심을 없애는 문제에 있어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등 수행의 진전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개벽 논리에 최면 걸려 있지 말고 그만 두기로 했다.     ◇ 돌아온 탕자  또 다시 시작이다. 불교부터 시작이다. 45살에 견성했다고 알려진 강정진 거사가 쓴 『영원한 대자유인』, 성철스님의 『백일 법문 VOD』, 23세에 견성해서 33살에 통도사 조실스님이 되신 전강선사의 VOD 법문, 재가불자로서 도통하고 청담스님이 조실스님으로 모시려했던 백봉 김기추 거사의 VOD, 책 등을 듣고 읽으면서 인간의 마음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산전수전(山戰水戰) 공중전(空中戰)까지 다 겪은 나로서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새로운 각오로 마음의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렘브란트의 명화 ‘돌아온 탕자’   조계종의 주된 경인 금강경을 매일 읽으면서 말이다.육조 혜능스님은 머리 깎고 계를 받기도 전에 문자해독이 안된 분으로서도 마음의 비밀을 깨닫고 불교에서 말하는 도통을 하지 않았는가? 유불선을 똘똘 말아 한 글자로 표시하면 마음 심(心)자이다. 마음 심(心)자의 세 점이 불선유(佛仙儒)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마음을 볼 뿐이라’는 강증산 선생의 말씀도 있다.  ‘성경신(誠敬信) 석 자로 닦으며 진심으로 고대하면 참사람을 만나리라.’라는 증산도 경전인 도전의 말씀대로 참다운 선지식을 만나야지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마음이라 마음~. 동양철학이나 여러 책을 살펴보아도 지금 때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판단이 되었고, 나 자신의 변화를 이룰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오직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날뛰는 이 마음을 어떻게 조복(調伏)받을까 노심초사하던 중 2013년 2월 말경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승리제단에 접속되었다.  왜 여태까지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미친 듯이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읽어 보았다. 무지개이슬 카페도 들어가 보았다. 미륵불님 사진도 보았다. 웃는 모습이시다. 지난 날 은혜 받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흥분과 호기심이 섞여 일어난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물론 그간의 내용은 대강은 알고 있지만. 가 볼까 말까, 이틀 동안 망설이며 홈페이지, 카페를 훑고 난 후 일단 일요일 날 가보자.  진리를 찾으면 오지 말라고 돌을 던져도 돌에 맞고서라도 가야 하고, 진리가 아니면 금덩이를 주어도 가서는 안 된다고 배웠으니 2013년 3월 3일 일요일 예배시간에 맞추어 길을 나섰다. 돌아온 탕자의 심정으로 말이다. 경비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미륵불님의 사진이 보였다. 웃고 계시는 모습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미륵불님께서 이 못 난 죄인을 잊지 않으시고 제단으로 이끌어주심이라 감사할 뿐이다.  증산도에서 의문 나던 문제는 제단에 나오면서 알음귀를 열어 주시어 간단하게 해결되었다(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원고를 써야 될 것 같다). 21일 공부하는 동안 중간에 몸살이 났다. 그래도 예배를 빠질 수는 없다. 배 두드리고 편안하게 도 닦을 수는 없는 법, 도 닦을 땐 원래 사대육신이 노곤노곤한 법이라고 내 자신을 다독이며 직장근무로 시간이 빠듯하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예배 볼 때이다.  한번은 꿈에 뱀 한 마리가 보이더니 목이 끊어지고 독인 듯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아마 내 속에 많은 뱀 중에 한 마리 죽은 모양인가. 더 많은 뱀이 죽어야겠지…이제 제단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의미의 새 식구가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거듭난 그런 의미에서의 새 식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반대생활을 생활화 체질화해서 말이다.  수원(水源)나그네(생명수의 근원이 되시는 분)가 미복차림으로 궁을 나와 세상 돌아가는 민심을 살피려 가난한 선비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후 궁으로 돌아가서 과거를 실시하는데 과거시험 문제는 그 선비와 나눈 얘기라는 고사가 생각난다.  임금님이 궁으로 돌아간 것은 미륵불님의 보광이요 과거시험 문제는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기고 평소 반대생활을 통하여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마음개벽, 천지개벽)이 아닐까? 50점 이상이면 합격하여 주님을 뵈올 것이고 50점 이하는 낙방이겠지.     ◇ 도반(道伴)들에게  여래(如來)는 크게 보면 온 적도 없으며 간 적도 없고 다만 온 듯하다고 해서 여래(如來)라고 합니다. 작게 보면 오고감을 마음대로 하시는 분입니다. 벗님들이여! 운은 다 그 운이 있고, 때는 다 그 때가 있고, 사람은 다 그 사람이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지 맙시다.  절체절명의 그 때를.육도삼략 운행지도 상으로 볼 때 54궁 수운 최제우 선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아 동학을 창시하였고, 63궁 강증산 선생이 그 바통을 이었으나 시대와 역사가 성숙되지 못하여 동학을 완전히 펴지 못하였습니다(강증산 선생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내내 한 것이 동학이라 하였습니다).  원래 시대와 역사가 성숙한 정도에 따라 그에 상응한 도법(道法)이 펼쳐지게 되어 있는 고로 그 당시의 상황에 따른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때는 완전히 성숙되었고 미륵불 무극대도(無極大道)의 가르침, 즉 완성의 참 동학이 승리제단에서 1981년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에 펼쳐질 날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확신합니다.  120년 전 동학혁명 당시와 달리 하나님의 진리라는 용천검으로 비진리의 우상들을 쳐부술 것입니다. 동학혁명 당시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가보세! 가보세! 승리제단으로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丙申 되면 못 가보리. ”누구든지 내 몸처럼! 감사합니다.   박명하 /본부제단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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