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목표는 ‘하나님 되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며 기쁨을 추구합니다.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는 ‘행복’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면 병이 들게 되어 있고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면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불행하기 때문에 사람은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의 기준을 남녀의 만남에 두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선배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볼 때, 남녀 간의 사랑에 행복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행복의 부재는 잘못된 가치기준에서 비롯해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은 찰나적인 행복을 줄 뿐 아픈 상처와 괴로움만 남기고 사라져 갑니다.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이 욕망의 이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으로는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고로 물질이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여 물질을 쌓아 놓은 곳에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열심히 돈을 벌어 보지만 그곳에는 역시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권력을 쥐면 행복을 누릴까 하여 권력을 잡아 보았지만 역시 거기에도 행복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인류는 왜 이러한 실패를 거듭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가치기준이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잘못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 세상에 훌륭한 철학이 많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세상에 온전한 철학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온전한 철학을 내세웠더라면 세상은 달라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 자체가 온전한 세상으로 바뀌게 되어 있었습니다.
철학이란 인생의 목적과 이념을 어떻게 설정하였는가를 말하는데 오늘날 까지 인생의 목적과 이념을 올바르게 설정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온전한 철학이 등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왜 인생의 목적과 이념이 잘못 설정될 수밖에 없었느냐 하면 모든 인생들의 주체 영이 바로 마귀 영이었기 때문이며 인생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마귀 영은 마귀의 생각 밖에 못하므로 ‘나라고 하는 주체 영’이 주는 욕망의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는 욕망’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으므로 한계가 있는 철학을 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의 주체영이 마귀영이라고 하는 엄청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주체 영’으로 말미암아 불행이 오고, 고통이 오고, 피가 썩고, 늙음과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나는 ‘나라고 하는 의식’의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으며 그러므로 한계가 그어져 있는 좁다란 철학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사람의 주체 영은 하나님의 영이었으며 그때는 인간(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불행이란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고 기쁨과 희열과 영생만이 존재했습니다.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인 것은 사람들 속에 그 증거가 남아 있음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나를 버릴 때에 놀라운 은혜체험을 하게 되어 있어

양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이 양심이 주체 영이었고 이 양심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야말로 생명의 영이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영입니다. 지금도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되는 양심의 힘으로 생명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과학자들에게 ‘사람이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근본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다만 살고 있는 것뿐이다.’ 하는 것이 그들의 대답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학문 또한 학문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진리추구가 그 목적이며 진리는 변하지 않는 생명 속에 존재하는 것인데 사람이 왜 사는지 모르고 왜 죽는지와 죽지 않게 하는 방법을 모르니 학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오늘날 참 학문이 나와야 사람이 왜 살며, 왜 죽으며, 사람이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또 무엇인가 하는 것을 논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는 질문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이에 대하여 ‘인간은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산다’ ‘ 인간의 본향이 되는 하나님의 영을 회복하기 위해서 산다’ 고 말합니다. 원래 우리 인간의 주체 영이었던 하나님의 영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생명의 영이므로 우리의 생명을 죽이는 마귀의 영과 싸워서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으로 거듭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목적이요 이념입니다.

우리의 조상 되시는 하나님은 그 자식이 갖은 고생 끝에 결국은 죽고 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영원무궁토록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원무궁토록 살려면, 그 인생이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무궁토록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괴롬이 있다든지 하면 영생할 수가 없습니다. 영생하려면 그 마음속에 그늘이 없어야 합니다. 그 마음속에 기쁨이 차고 넘쳐야 영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잠시만 기쁘고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면 영생은 불가능합니다. 항상 기쁘고 항상 즐겁고 항상 행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바로 영생이요, 영생이 바로 기쁨입니다.
하나님 신은 기쁨의 신입니다. 하나님의 신을 알게 될 때 말할 수 없이 기쁨이 차고 넘칩니다. 그것이 양심의 기쁨이며 양심의 기쁨은 변치 않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기쁨은 잠시 후에는 식어 버립니다. 나라는 영이 욕심을 충족시킬 때에는 잠시 잠깐의 쾌락이 있는지는 몰라도 다음 순간 더 큰 욕망 앞에 그 기쁨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라는 주체 영’이 작용할 때 하나님의 신은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자는 말할 수 없이 우울하고 몸이 무겁고 말할 수 없이 마음에 괴로움이 스며드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행복의 비결을 간명하게 알려주시는 조희성 구세주

여러분들,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나라는 것을 아낌없이 던져 버리고 희생적인 정신을 가지고 움직여 보십시오. 나를 던져버릴 때에 비로소 기쁨의 신인 하나님이 내가 되어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없어지고 그 자리를 하나님의 신이 점령하시는고로 기쁨과 즐거움만 넘치니 이 사람을 봐도 즐겁고 저 사람을 봐도 즐겁고 저 사람을 봐도 천사 같고 이 사람을 봐도 꽃과 같이 아름답고 예쁘고 귀엽고.
그런고로 내 마음이 천사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상대방도 천사의 모습, 하나님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마귀의 마음 즉 아상(我相)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리 상대방을 하나님처럼 보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마귀 새끼는 누굴 봐도 도둑놈처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봐도 도둑놈, 저 사람을 봐도 도둑놈처럼 보이는 것은 자기가 도둑놈이고 자기가 바로 사기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마귀인고로 누구든지 마귀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처럼 보입니다. 누구를 보든지 귀한 존재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말 한마디를 해도 조심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귀한 존재이므로 누구든지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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