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은 바로 지금 여기에

오직 하나님만 사모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면 호흡하는 것까지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의식하면 여지없이 마귀가 주는 생각에 떨어지므로 나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기를 쓰지만, 그러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순간 자기를 의식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대로 마음의 싸움에서 여지없이 실패한고로 가슴을 치며 머리를 시멘트 벽에 들이 받으며 “너 같은 새끼는 죽어라”하고 자신을 짓이겼다.
오직 그 생각이 하나님께만 있어 온 정성을 하나님께만 기울이게 되어 있는고로 다른 생각은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과거를 생각하려야 할 수가 없었고, 상대를 의식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고도로 사모하는 그 향함의 정도가 한 시간 전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정보다는 지금 현재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정이 한층 고도로 올라가야 된다. 하나님만을 고도로 사모하는 생각이 그대로 하늘을 찌르는고로 다른 생각은 하려야 할 수가 없었으며, 오로지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만을 사모했던 것이다.

여러분들! 은혜 받는 중에 마귀는 형제들과 말을 하는 사이에 틈을 타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피하여 접촉할 기회를 만들지 않았고 그 은혜를 쏟을까봐 벌벌 떠는 생활을 오십평생 했던 것이다. 노력없이는 안되어지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여 혼자 걷기도 많이 걸었다. 일생을 오직 일편단심으로 하나님 밖에는 몰랐던고로 그 귀한 은혜를 쏟을까봐 늘 찬송을 쉬지 않고 불렀다. 온 밤을 지새우며 애끓는 심정으로 밤새도록 불렀던 것이다.

이긴자 걸어온 발자취 따라와야…

그러므로 이긴자가 걸어온 길을 만분지일만 따라와도 구원은 문제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누누히 말했다. 유사이래 이긴자가 걸어온 이와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 이긴자가 걸어온 그 발자취는 생각 전체가 하나님만을 향한 것이다. 이 사람을 봐도 하나님 저 사람을 봐도 하나님으로만 여겼지 멸시의 대상자가 이 사람에게는 없었다. 누구든지 내 하나님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나님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일부러 하나님처럼 보려고 애를 쓴 것이 아니라 저절로 하나님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누구나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한 하나님처럼 여겨져 머리 숙이며 마음 속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했던 것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이것을 하라 하면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 하면 저것을 했던 것이다. 종의 종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율법에 걸리는고로 곧 은혜가 떠나버리는 것이다. 종의 종노릇을 해야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 거하시지 조금이라도 내가 주인 노릇을 한다든지 윗 사람 노릇을 하면 은혜는 순간 떠나버리는 것이다.

자유율법은 마음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길이다. 이긴자와 친하다고 해서, 이긴자의 손을 거쳤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길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인격이 갖춰져야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되고 안 되고는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 그 마음이 항상 희생적이요, 항상 겸손하며 항상 종의 종인 입장에 서야 그래야 은혜가 간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성품인 것이다.
이 사람이 항상 홀로 있을 때면 눈물을 흘리는 것은 형제의 사정이 진짜 내 사정으로 여겨지는고로, 눈물이 그칠 날이 없다. 하나님은 온유하고 자비로운 사랑의 심령인고로 항상 희생적이다. 하나님의 심령은 형제 전체의 사정이 당신의 사정인고로 누구를 특별히 사랑하고 누구는 관심을 안두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평등의 신인 것이다. 그러나 마귀에게 사로잡히면 무딘 심령이 되는고로 자기밖에 생각할 줄을 모른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우리들만 구원 있고 너희들은 구원이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저절로 하나님처럼 여기는고로 누구에게나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마음은 너와 내가 없는, 누구든지 내 사정으로 여겨지는 평등한 사랑의 마음인 것이다. 승리제단 식구들은 항상 어디서나 본이 되어야 한다. 서로 만나면 활짝 웃으면서 꼭 인사를 나누고 형제의 잘못을 내 잘못으로 여기면서 서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협조를 해야 한다. 형제가 죽어가거나 형제가 잘못되거나 아랑곳없이 자기밖에 모르는 그러한 태도는 이기적인 마귀의 태도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희생적인 신

여러분들! 하나님의 사정을 일찍이 알게된 이 사람은 늘 눈물을 흘렸다. 여러분들은 거리에서 떠는 거지가 불쌍히 보일지 모르나 6천년동안 마귀에게 짓밟혀 왔던 하나님만큼 불쌍한 존재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깊은 속사정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이 너무너무 불쌍한고로 ‘하나님! 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는 한번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 이것을 제물로 삼아 이것이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을 희생제물로 삼아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뜻을 이룬 다음에 이것은 지옥에 던져도 좋습니다.’ 그 다음의 구원을 원치 않았다. 오로지 희생제물이 되겠다는 그 결심 그 심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것을 희생제물로 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당신 뜻을 다 이룬 다음, 온 인류를 다 구원한 다음 이것은 걸레조각처럼 버려도 좋습니다. 당신 뜻만을 이루어 주옵소서’ 이와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충성심, 오직 그것 뿐이었지 언제 한번 하나님께 ‘나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나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는 이러한 기도는 해본 적이 없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음란죄요, 욕심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율법에 걸리는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늘 함께하신고로 항상 희생적인 하나님의 마음만 움직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신은 온유, 겸손하고 정결하고 신선한 마음속에 거하시지, 조금이라도 불의를 행하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조금이라도 자기를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은 공의로운 길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느냐 안 품었느냐 여기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내 입장에 서지 말라. 상대방 입장에 서고 상대방의 사정을 깊숙히 알고 상대방의 사정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공의로운 입장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처음 보고 무섭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 사람이 사랑을 베풀어도 마귀의 영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면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켠에 서있느냐 마귀켠에 서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일초 일초를 잘 믿어야지 현재 일초 일초를 잘못 믿으면 작년에 잘 믿은 것은 소용이 없다. 미래도 과거도 필요없는 것이다. 내일부터 잘 믿겠다는 것도 필요없다. 간혹 내게 와서 ‘내년부터는 한 번 잘 해보겠습니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뭘 내년부터 하십니까? 지금 당장 하세요…’해도 그들은 못 알아 듣는 것이다. 내년부터 내일부터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현재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다. 지금 현재 내가 하나님께 서있느냐 서있지 못하느냐를 스스로 점검해 가지고는 지금 당장 하나님켠에 바로 서야 한다. 그래서 일초 일초 믿으라하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필요없다. 그런고로 일초 속에, 현재 속에 천국이 있지, 과거 속에도 미래 속에도 천국은 없는 것이다.

이 말은 철학적인 말이다. 현재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미래나 과거에는 하나님이 안계신다. 그런고로 현재 속에 하나님을 그대로 내 맘에 모셔야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안에 있다가 되는 것이다. 영생도 현재에 있는 것이다. ‘내가 영생의 물결 속에서 현재 존재하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현재 영생의 물결 속에 존재하면서도 영생의 확신이 없는 자는 마귀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일초 일초 온전한 완전자가 돼라! 했던 것이다. 과거에 잘 믿은 것, 미래에 잘 믿겠다는 결심 다 필요없다. 지금 바로 현재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현재 내가 잘 믿고 하나님 안에 온전히 있으면 그가 바로 하나님인 것이다. 과거에 잘 믿었던 것, 하나님께 어떻게 기울였던 것 그 과거를 생각하는 자체가 자유율법에 걸리는 것이다.

이기는 비결은 현재에서 항상 새출발하는 것

항상 오늘이 첫 날인 심정으로 오늘이 출발이고 이 시간이 출발이라는, 이러한 마음을 항상 가져야 향상이 있고 발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긴자가 걸어온 발자취요 철학이다. 항상 현재에서 현싯점에서 새 출발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이기고 온 세상의 마귀를 여지없이 이길 수 있었던 이긴자의 비결이었다. 항상 이러한 생각 속에 움직이는고로 현시점에서 계속해서 새 출발하는 심정으로 사모하니까 일초 전보다 일초 후가 더욱 더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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