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는지

 작성자 : 최고관리자Date : 2014-02-24 12:54  |  Hit : 3,531  
간증담  >>>김원찬(52세)/, 대전제단 책임승사 어쩌다가 이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는지   누구나 한 번 생각하는 것이겠으나 저는 어릴 때부터 해와 달과 별이 왜 떠 있는지, 사람은 어디에 있다가 태어나며,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 매우 궁금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우주, 종교, 철학 등과 관련한 내용의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1988년 가을 어느 날, 수원역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기 위해 열차표를 사고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역 근처 「경기서점」에 들러 여러 종류의 책을 대충 보다가 『영생학』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제목만 보고 그 책을 샀습니다.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일별하고난 저는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을 찾게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어릴 때에 동네 어른으로부터 정도령이 나타나면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난리나는 사회가 없어지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며, 늙지 않고 늘 청춘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회가 된다는 말씀을 들었으며, 내가 살아서 정도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생학』책을 보니 사람이 죽는 원인이 피의 썩음에 있고, 썩은 피만 제거하면 늙지 않는다는 내용과 마음먹은 대로 피가 변한다는 것, 그리고 예언서(격암유록)의 정도령 출현에 관한 내용 등을 소개한 것이 그 동안 본 어떠한 내용의 책보다 구체적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로써 진짜 정도령이 출현했다는 것을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으나 저는 무엇인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 동안 살아오면서 잘못된 부분을 생각하고, 더러운 마음과 행동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도령님을 뵙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어, 그 분을 뵙기 전에 잘못 살아온 부분에 대한 때를 씻어 내기 위하여 중간 과정을 거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천존의 집」을 찾아갔으며 그 곳에서 주최한 강연회에 몇 번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정도령님 생각에 있다 보니 제가 생각한 대로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정도령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이긴자이신 조희성님이 진짜 정도령님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죄가 많아 정도령님 앞에 가기가 부끄럽습니다. 언젠가 저를 정도령님께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그 무렵 꿈에 제가 역곡에 가게 되었는데, 정도령님이 계신 곳이라며 누군가 말해줘서 보니, 1평쯤 되어 보이는 판잣집이었으며, 그 옆에 계단이 많고 높은 건물을 신축하고 있는데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는 과정으로 계단 거푸집을 인부들이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정도령님께서 신축 건물로 옮기실 것이라고 인부가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부산제단이라고 하는 곳을 안내 받아 가보니 오래된 3층 건물이었으며, 앞에는 단상과 무대 같은 것이 있고 바닥에는 카펫트가 깔려 있었는데, 사람은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저는 때가 되어 정도령님께서 이끄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생학』책 뒷면에 인쇄된 번호로 전화를 하여 부산제단 전화번호를 안내 받아 1989년 9월 19일 승리제단에 입문하였습니다  .부산제단 책임 승사님의 안내를 받아 예배실 내부를 보니 꿈에 본 모습 그대로여서 신기하게 느꼈습니다. 예배실 앞에 앉아 비디오테이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 약 10분간은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는데 어색하여 손뼉이 쳐지지 않았으며, 정도령님 말씀을 듣는 동안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향기냄새가 나기도 하여 신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한 느낌이 약 5일 정도 반복되고 난 후, 머리 아픈 것이 없어지고 손뼉을 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21일 수련과정을 마치고 스스로 몸과 마음이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승리제단에 다니기 이전에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담배도 피웠으며 얼굴 전체에 시커멓게 기미가 있었는데, 21일 수련과정 이후에는 술과 담배가 입에 써서 먹을 수가 없었으며 몸에서 받아주지 않았고 누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거나 화를 내면 먹은 음식까지 토해내야 했을 정도로 변화되었으며, 기미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또한 저는 군 입대 후 귀향조치될 정도로 건강상태가 나빴으며, 제 아이들도 몸이 약하여 병원출입이 잦았었으나 승리제단 입문 후에는 병원출입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제가 승리제단에 입문한 지 4∼5개월쯤된 1990년 2월경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정도령님께서 부산제단에 주 4회 오셨습니다. 한 번은 단상에서 “이 사람이 약 열흘간 일본에 다녀오는데, 그 동안 추울 거예요. 추워도 좀 참으세요. 아셨죠?” 하고 말씀하셔서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궁금하게 여기니까 몇몇 분들이 저에게 정도령님께서 그 동안 풍운조화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하여 말해주어 저는 궁금증을 풀 수 있었으며, 저는 제 아내에게도 며칠 동안 추워질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아내는 제가 승리제단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며칠이 지나 정도령님께서 출국하셨는데, 과연 비행기출발 이후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부산에서는 수 십년 만의 추위라고 보도하였으며, 겨울에도 좀처럼 수도배관이 얼어 터지는 경우가 없는데, 그때는 수도배관이 얼어 터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도록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류에게 영생의 복을 받게 하시려고 천지공사의 건물인 백만승리제단을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역곡3동에 신축하시는데 땅을 얼게 하지 않으면 다른 건물에 균열 등의 피해를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정도령님께서 풍운조화의 능력을 갖고 계심을 실감하였으며, 그후 매년 태풍이 올 때나 장마철에 정도령님의 풍운조화 능력을 실감하였습니다.  태풍이 우리나라에 직접 상륙하여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진로로 움직이다가 부산 앞 바다에서 온대성 저기압으로 바뀌어 바람은 소멸된 채 비만 내리고 지나가거나 중국이나 일본 쪽으로 방향이 바뀌거나 또는 육지를 피해 바다를 통과하는 것을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한반도 중에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에는 수년간 흉년이 들어 굶주리고 있는데, 남한에는 계속 풍년이 들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로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 남한 땅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제 큰 아이가 감로에 대하여 궁금하게 여기며 질문을 해 온 경우가 있는데, 그 이튿 날, 작은아이가 학교 숙제를 하면서 숙제하는 과정에 대하여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여 큰아이가 집에 있는 일반자동카메라로 사진촬영을 했으며, 그 중 연속적으로 4장의 사진에 감로가 찍혀져 나왔습니다. 4장의 연속적인 사진으로 감로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일로 아이가 감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일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감로 사진에 대하여 조작이나 잘못 나온 사진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한 이후에는 감로 사진에 대하여 시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다 한 몸이니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기며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흔히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하고는 있으나 그 말씀 속에 영생의 진리가 숨겨져 있었음을 주인공이 아니면 누가 깨닫겠습니까?이제, 남북한간에 화합과 협력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고, 세계가 하나로 이루어지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정도령님의 능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어쩌다가 이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저절로 감사의 눈물이 납니다. 감로의 은혜로써 죄의 때로 더러울 대로 더러워진 피를 맑혀 주시고 건강과 기쁨과 영생의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정도령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승우 기자*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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