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늘과 새땅이 열리고 있습니다

구세주가 출현해야 말세

예수는 자기가 살았던 당시를 말세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때가 말세인 줄 알고 말하였으나 말세는 구세주가 출현한 6천 년 대이며 예수의 당대인 4천년 대가 아닙니다.
예수는 마귀가 주장하는 자로서 마귀의 힘으로 병자를 고치는 등의 기적을 행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예수가 말했습니다. 예수 스스로가 ‘성령’ 즉 ‘하나님의 영’으로 역사하지 않았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무슨 신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은 것이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신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니 예수는 바로 마귀의 힘을 입은 것입니다. 예수는 결코 하나님의 신이 작용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마귀신을 받았음은 그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이 다 죽음으로써 사망의 열매를 거둔 것을 보아 예수는 사망의 나무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일부만 죽은 것도 아니고 모두 다 죽었습니다.

성경에는 구원론이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과일을 먹어야 구원을 얻는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얻는다’ 그런가 하면 ‘부활함을 입어야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안에서 행동해야 구원을 얻는다’ 등의 다양한 구원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구원의 방법을 인간은 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도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나 하나님 안에서 행 할 수가 있는 것이며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행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나라고 하는 주체의식’을 가진 인간은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곧 마귀이며 선악과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야고보서1장 15절)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란 욕심이며 욕심 자체가 욕심을 부림이 아니고 나라고 하는 개체의식이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므로 나는 죄의 뿌리, 즉 원죄이며 선악과입니다.

성경에는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스스로의 의지로 먹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아담과 해와에게 마귀가 침투함으로써 ‘나라는 주체의식’이 되는 순간 하나님이었던 아담과 해와가 인간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사람은 흙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사람이 흙으로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라도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으면 만들 수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흙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살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34장 16절에 ‘너희는 여호아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아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란 대목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한 이 말은 성경을 해석하는 암호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짝을 맞추어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인데 성경에 이런 거짓말이 들어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마귀와는 원수가 되므로 마귀는 인간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신, 마귀를 속여가면서 기록한 것이 성경이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과 사정이 숨겨져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이 주장하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성경은 풀려야 풀 수 없는 책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저마다 성경을 다르게 풀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수많은 종파가 생기고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사정을 정확히 아는 자가 없었던 것에 연유합니다.

오늘날 안식교에서는 안식일을 토요일이라고 하는 반면에 또 다른 파에서는 금요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금요일도 토요일도 아니며 그렇다고 일요일도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는 모두가 안식일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관하여 성경에서 관련되는 구절을 찾아서 짝을 맞추어 볼 때 전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 하시니라(창세기 2장 1절)’의 구절과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다’(베드로후서 3장 8절)의 구절로 보아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신 것은 사실은 육천 년 동안 일한 것이 되므로 일곱째 날 쉬신 것은 육천 년이 지나서 칠천 년 때부터 안식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일요일이 안식일’ ‘토요일이 안식일’이라는 주장은 둘 다 성경과는 거리가 먼 주장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의 하루가 아니고 하나님이 마귀의 계략을 피해서 구세주를 배출하는데 성공하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끝내시고 영원토록 안식에 들게 하는 때가 안식일인 것입니다. 일요일 하루 쉬고 다음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인간이 쉬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쉬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 4천 년과 신약시대 2천 년의 도합 6천 년이 된 시점은 1984년으로써 주역에 의하면 대갑자 년입니다. 대갑자 년이 지나면 7천 년 대를 향해 달리게 되는데 그 사이 천 년 동안에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져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되고 만물도 하나님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은 죽음이 없는 세상으로 화합니다. 인간은 물론이고 죽지 않는 풀과 꽃, 날짐승, 만물이 죽지 않고 살아서 ‘사망이 이김에 삼킨바 되는’ 천지개벽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죽지 않는 세상은 인간의 세상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만물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원무궁토록 살게 되며 그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지 인간의 세상은 아니므로 끝 말, 인간 세의 말세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구세주가 출현하여 마귀세상을 뒤집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마귀를 섬멸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뒤집어 죽음이 없는 세상, 영원토록 기쁨 속에서 사는 천국을 건설하러 온 자가 바로 구세주인 것입니다. 구세주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며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명을 갖고 권능의 화신으로 출현하여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천지개벽의 역사를 전개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이룬다’는 말은 구세주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구세주를 믿고 그의 말을 따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반면에 구세주를 의심하는 자는 영생의 조류를 타지 못하여 끝내는 멸망을 받을 뿐입니다. 구세주가 나왔으므로 반드시 영생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맙니다. 구세주가 왔으므로 영생은 꼭 반드시 이룬다는 확신을 가지고 따르면 영생의 조류를 타게 되고 이는 노아의 8식구가 방주를 탐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구세주는 영적(靈的) 노아

방주를 만들어서 방주를 타고 대홍수에서 구원을 얻은 노아 여덟 식구의 이야기는 구세주가 출현한 오늘날에 될 일을 그림자로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조류를 타고 흐르는 자는 하나님이 되어 날아다니며 눈물과 고통과 사망이 없는 세계에서 영원무궁토록 살며 쾌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세주를 의심하는 자는 결국 멸망을 받을 뿐입니다. 본래 하나님이었던 인간이 마귀의 계략으로 선악과를 먹게 됨으로써 인간으로 전락하였으나 구세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으로 되는 것을 ‘원시 반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 사람이 이긴자가 되어 동방의 땅끝 땅모퉁이 한국에서 출현하였음으로 이 모든 성경의 비밀과 하나님의 사정이 낱낱이 풀어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지금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는 개벽의 역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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