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두 가지 이유/수상

때때로 아주 무서운 강적이 나타나 기진맥진 할 때가 있다. 고독(孤獨)의 마(魔)다. 아무도 없는 항해, 허접한 대화라도 나눌 상대가 없는 막막한 바다사막, 잔잔한 파도에도 기가 질리건만 고독의 마라는 사나운 강풍이 일어 집채만한 파도가 출렁일 때면 애간장이 다 타들어가고 그래서 입천장까지도 다 말라버린다. 그 놈과 낑낑대며 싸움을 하다가 결국에 가서 먹히고 나면 만사가 다 싫어진다.

지긋지긋하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세상의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높은 벼랑에 올라 눈 딱 감고 몸을 던지고 싶다. 그렇게 최후까지 몰리다 보면 일점의 소리도 없이 한도 끝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경험했다. 그렇게 당할 때로 다 당하고 나서 벌러덩 드러누워 하늘을 보면 아직 가슴에서 다 내려가지 못한 고독의 피 끓음이 느껴진다. 여전히 흔들리는 배 바닥, 아무런 말도 걸어오지 못하는 뜬구름….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있자니 힘들고 그 꼬리를 놔주면 즉시로 먹히고 만다는 호미난방(虎尾難放)의 상황에 정확히 해당된다.

하지만 단지 두가지 이유로 여전히 살아남는다. 첫 번째는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 코너에 몰리고 시커멓게 뒤집어 씌어도 당신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애를 쓰고 기를 쓰면 하얗게 벗겨지기 때문이다. 그 어떤 종류의 마구니일지라도 그놈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는거다. 그것을 손에 잡지 못하였다면 이 작은 몸은 아마도 벌써 오래 전에 염라대왕의 반찬꺼리가 되었으리라. 두 번째 이유로는 희생하신 스승님 때문이다. 그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처참한 모습으로 희생하신 모습을 지근의 거리에서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었지만 너희들은 그 무궁한 세계에서 영원무궁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달라는 그 진실된 어머니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다. 스승보다 더 나은 제자가 되라는 말이지만 그만 못할지라도 최대한 스승을 닮는 것이 당신에게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 된다. 그래서 구차한 목숨을 보존하는 거다. 아니, 쿵쾅거리는 생명이 내 것이 아니기에 마음대로 못하는 거다. 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 살아남고 싶은 마음은 없다. 고생고생 하다가 결국에 죽는 길로 간다면 구태어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이 세상에 살아남을 이유가 없다는 거다.

아직도 불로불사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무량대수 마귀의 군단과 싸워서 이기는지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검증된 듯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상식(常識)에 속지 말아 달라는 거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말이 상식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멍청한 다수에 의해 시궁창으로 기어들어가는 엉성한 민주주의 걸음걸이와 동일하다. 먼저 걸어가서 확인하고 또 확인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는 거다. 사람의 몸은 그 사람의 마음에 의해 망가진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 기인한다는 말씀이 정확하다. 불로불사를 만나게 되는 길도 또한 마음에 의해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정확하다. 그래서 불로불사의 길을 걷노라면 여러 가지 종류의 마귀들을 만나 보게 될 것이고 고독의 마도 언젠가 만나시리라. 그때 가면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선구자들, 외로워도 외롭다고 표현 못하고 마음속에서 삭이고 걸어간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하시게 되시리라.*

안준영 승사 / 호주 시드니 승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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