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마음의 본성과 심리를 알 때, 변화가 쉬워

맹자(孟子)는 사람의 본성(本性)이 선(善)한데 환경의 영향으로 불선(不善)해진다고 했고, 선(善)한 본성을 잘 유지하고 불선(不善)하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는 환경으로는 가정과 직장, 이웃과 친구 대인관계 등을 들었다.
공자(孔子)는 사람의 성(性)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習)에 의해 사람마다 달라진다고 했다. 즉 성품은 후천적인 습관(習慣)에 의하여 선하게도 악하게도 된다고 보았다. 하여 어려서부터 부단히 좋은 습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순자(荀子)는 사람의 본성은 이(利)를 좋아하고 감각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본능이 있어 악으로 기울어진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악한 성품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인의(仁義)를 학습하고 실천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 선해진다는 것이다.
묵자(墨子)는 소염론(所染論)에서 인간의 본성은 갓 태어날 적엔 백지와 같아 여기에 후천적으로 선과 악에 물들여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부터 나오며 이 욕구의 반복에 의해 물들여진다.

기독교적 입장의 인간 본성은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모상이란 외적이 아닌 내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가르치는데, 즉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이 존귀한 까닭은 하나님의 모상인 ‘사랑’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용서하고 베풀 때 인간은 선(善)해지고, 반대로 탐욕에 사로잡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심에 빠지면 인간은 악(惡)해진다. 인간 구원의 열쇠는 바로 ‘사랑’에 있다고 했다.

불교에서의 인간의 본성은 불성(佛性)이었으나, 욕심의 덩어리인 거짓 가아(假我)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그 죄로 말미암아 늙고 병들어 죽는다고 했다. 일평생 거짓 가아의 그릇된 욕망을 따라 살며,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괴로워하도록 되어 있다고 본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마음의 이치를 따지는 것으로 인간의 마음(mind), 심리(psycho), 정신(spirit)을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이들의 구조를 알아보고 어떻게 작용하고 기능하는지를 알아보는 학문이다. 따라서 심리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심리만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고, 인간 전체를 알고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때문에 인간의 내부 심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까지 관심을 갖고 연구대상에 포함시켰다.

심리학은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과 결과로 인도

결론적으로 현대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는 어떤 것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한 것은 없다. 위의 예시처럼 각가지 설이 난무한다. 다만 이것은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고, 또 어떠해서 그 삶의 가치와 목적을 어디에다 두고 사는 것이 더 인간에게 유익되고 행복하며 유의미한 삶을 살게 하는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은 순전히 실험과 관찰 연구에 의해 집약된 정보를 통해 정서적 육체적 행복을 쉽게 터득하게 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만 좋아서 되는 행복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개개인의 믿음과 행위는 자유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선하고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삶에 지장을 주는 것이라면 용납이 될 수 없다. 그러한 개인의 선택적 삶은 사회에 대하여 해악과 불편·부당을 조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과 같다. 심리학의 연구는 어떤 것이 더 자유와 평화를, 그리고 행복한 사회건설에 더 영향을 끼치느냐하는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차이를 확실하게 계량화하여 쉽게 알아보게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 과정과 결과를 확실히 인지하여 다 같이 올바른 관점과 가치를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선도해 나가야 이상적인 기능이 될 것이다. “심리학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과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결과가 좋고 유익되는 것을 추구하기 마련

인간의 각기 다른 삶의 추구 행태가 있지만, 마음이 옳다고 여겨지고 좋은 것이라 받아들여질 때 선하고 의로운 행동의 동기 유발과 올바른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이렇듯 인간이 올바른 본성관(本性觀)을 가지고 삶의 계획과 목표를 설정해 지속적인 의지와 노력을 가하게 되면 바람직한 습성과 습관을 얻는다. 올바른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새로운 양질의 삶을 살도록 해준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비뚤어진 인생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습(習)을 바꾼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처럼 한번 먹은 의지가 그리 오래 가진 않는다. 그만큼 마음의 변화를 거쳐 피의 변화, 피의 변화를 거쳐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으로 다시 재생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의 모든 노력과 집중력을 가하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도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는데, 어느 분야이든 위대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만(一萬)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경험법칙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세 시간씩 십 년이면 일만 시간이 되는데, 이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 관하여 노력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올바른 습관 길들이기와 피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도 똑같이 그 이치를 적용해 볼 수 있겠다. 게다가 반드시 십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를 초초로 바라보고, 고도로 집중하면 꿈을 꿀 때도 생시의 연장선상에서 24시간 내내, 1년 5개월이 채 안 돼서 변화를 입을 수도 있다. 바로 완전히 변화해서 강한 양심체이자 신·하나님·부처님으로 거듭나게 된다.*
김주호 기자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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