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짓이겨 없앴을 때 도통한다

2001년 2월 1일

죄인이 편안한 생활을 하려고 마음먹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이사람은 일찌기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람은 평생동안 편한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죗값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늘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틈만 있으면 중노동을 하고, 고통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예배를 볼 때도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예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사람은 하도 무릎을 꿇어서 무릎 밑에 못이 박혀있습니다.

이사람이 어떤 집을 방문할 때도 항상 무릎을 꿇고 앉으니까 편히 앉으시라는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사람은 하도 무릎을 꿇으니까. 오히려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편안한 자세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이사람은 짓값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고로 오히려 편안한 생활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항상 고통을 당하고, 괴롬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죄악의 탈을 완전히 벗어버리려면

승리제단에 나오시는 여러분들은 죄악의 탈을 완전히 벗어버리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죄악의 탈을 완전히 벗어버리려면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그 죄악의 탈을 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고통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불교식으로 말하면 고행을 하는 장소입니다. 불교가 어느 정도는 도통의 길에 가까운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포인트를 정확하게 몰라서 그렇지, 거의 가까운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인들이 승리제단에 오면 선두에 서서 달리는 것입니다.

여기는 고행하는 장소이다

여기에서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라고 가르치고 있으나 곧 실천이 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천이 안되어지는 것을 되게끔 여기서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안되어지는 것을 되도록 만들려니까 육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고로 말씀이 듣기에 좋다고 생각만 하라는 것도 아니요, 귀를 즐겁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사람이 6천 년 인류역사이래 처음으로 도통을 하여, 사람이 변하여 의인이 된 모델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사람이 걸어온 발자취를 여러분들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람이 걸어온 발자취는 너무 험하여 힘이 들고, 견딜 수 없는고로 평생을 늘 눈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길을 걸어도 눈물을 흘려야 했고, 잠자리에서도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생활을 일관성있게 지속해야

형제를 내 몸으로, 형제 사정을 내 사정으로 여기는 생활은 희생하는 생활인데 희생이라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생활인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생활을 일관성있게 하려니 처음에는 고통스럽고 잘 안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생을 나 자신을 죽이고자 눈물로 지냈던 것입니다.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자신을 죽이며 희생제물이 되어야 했고, 직장에 나가면 직장에서, 사회에서 완전히 나 자신을 죽이는, 희생제물이 되는 생활을 일관성있게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희생 생활은 양심적인 생활인 것입니다. 양심적인 생활을 계속해서 하니 양심이 점점 강해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전히 양심이 나의 주체 영이 되어 하나님이 되어버린고로 오늘날 여기에서 인류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능력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행하는 생활이란

고행하는 생활이란 그 몸을 연단시키고 연단시켜서 「나」라는 주체 영을 완전히 짓이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람이 그와 같이 짓이기면서 ‘이긴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졸리면 잠을 안 잤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노릇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졸릴 때 잠을 안 자려고 가시로 이마도 찔러보고 넙적다리도 찔렀던 것입니다. 가시로 안되면 바늘로 찌르고 별짓을 다 했던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그 차가운 물 속에 뛰어 들어가기도 했던 것입니다. 너는 죽어도 좋으니까 죽으려면 죽으라는 심정으로 나를 짓이겼던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이긴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이사람이 젊어서 은혜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렸던 것입니다. 너무 나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무리하게 하면 육신에 부담이 크게 오는 것입니다.

이사람은 아주 젊었을 때부터 연단을 받기 시작했으며, 나 자신과의 투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19세, 20세부터 다른 생각을 안 하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시멘트 벽을 들이받아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몇 시간 만에 깨어나곤 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사망의 경지에서 투쟁

이사람은 사망의 경지에서 투쟁을 하였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람이나 하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람은 결사적으로 매달리며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고로 하나님께서 죽음 가운데서도 지키시며 키우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어이 당신께서 ‘이긴자’가 되신 것입니다.

여기는 나를 짓이기고 죽여서 완전히 속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 성령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밟는 곳입니다. 이사람이 6천 년 동안 굼벵이 노릇을 하다가 그 굼벵이가 6천 년 만에 매미가 된 것입니다. 이사람은 여기 앉아서 억만 분의 1초 사이에 우주 어디든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이러한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된 하나님의 신이 이루어지기까지 말할 수 없는 연단의 연단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이사람은 제단에 와서만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요, 골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계속해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의 평생 동안을 나 자신을 짓이기는 데 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생명을 온전히 맡겼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막바지에 이사람은 30일 동안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아니하고 물 한 모금 안 마시며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완전히 나 자신을 의식치 아니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 채 하나님만 의식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요, 자갈 위에서 얼음 위에서, 마지막에는 유리병을 깨고 그 위에서 금식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10일씩 금식기도는 평생 동안 밥먹듯 했고 30일씩 금식기도를 14번을 했던 것입니다. 유리병을 깨고 그 위에 맨살로 무릎을 꿇을 때의 심정은 죽음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유리가 살을 째고 들어와 피가 줄줄 흘렀으며, 점차 몸무게로 인하여 유리는 뼈 속까지 파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피를 많이 흘리니 현기증이 나고 의식이 흐려지려 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에 나를 의식하면, 나의 생명을 염려하는 마음이 눈꼽 만큼만 들어도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람은 나의 생명과 모든 전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고로 하나님만을 고도로 사모하고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움직이지 않는고로 흐르던 피가 응고되어 멈추었던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다시 흘러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사람은 30일 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기에 살았던 것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도 따라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고 그에 따라 몸이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람은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던고로 사망의 경지에서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30일 동안을 끝마친 후 뒤로 넘어지면서 유리 위에서 나와 뼈 속까지 박힌 유리 조각을 하나하나 뽑아내며 반창고를 붙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이사람의 무릎 밑은 온통 흉터 투성이인 것입니다. 언젠가 이사람이 그것을 보여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잠시 와서 예배볼 때 무릎을 꿇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때 ‘이긴자’가 된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했어도 안되어져서 마지막에는 밀실이라는 곳으로 인도되어, 거기에서 세상과는 완전히 인연을 끊고, 과거의 나의 모든 생각조차도 죽이는 연단을 받았던 것입니다.

생각의 자유도 전혀 없었다

생각의 자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내 생각이 돌아가면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곤두박질을 치며 애를 써도 잘 되어지지 않는고로 밤낮없이 통곡을 하며, 매를 맞고 지냈던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사람의 생각을 온전히 죽이시고 점령하셨을 때, 이사람은 50평생 부르던 자신의 이름까지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증인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사람이 걸어온 길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되어진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늘날 이사람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여러분들 앞에서 말씀을 하니 그냥 쉽게 어디서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해서 되어진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나 그것이 절대 아닌 것입니다. 이사람은 50평생을 죽음의 경지에서 견디었으며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지에서 고통을 받으며, 밑바닥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해온 것입니다. 종의 종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모저모 갖은 모양으로 시험을 하신 후에 이사람을 점령하시어 좌정하신 것입니다. 6천 년 동안 인류를 구하시려 애쓰시던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시려 6천 년 동안 비통하게 절규하시던 하나님께서 호락호락 아무렇게나 좌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6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사람이 항상 여러분들께 말씀하듯이 내가 이긴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나를 이기시고 점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완전히 버려서 하나님께서 나를 점령하시게 되면 그가 바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 도통(道通)인 것입니다.

이사람은 길이 없던 때에 그 길을 개척하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으면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이사람이 고속도로를 뚫어놓은고로 여러분들은 이사람이 걸어온 길의 만분의 일 정도만 해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에게 매일같이 드리는 말씀, “형제를 내 몸처럼, 형제 죄를 내 죄로, 형제 사정을 내 사정으로 여기라”는 이 말씀이 도에 이르는 정확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실천하여 내 속에서 이루어졌을 때 그가 바로 의인이 된 것이요, 도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미운 사람, 못마땅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그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안 들거나 못마땅한 생각이 나오면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입니다.

‘나를 버리는 비결’은 너와 나라는 ‘분별의식’이 없어져야

이사람이 시간시간 ‘나를 버리는 비결’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려면 너와 나라는 ‘분별의식’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형제를 내 몸으로 여기는 것이요, 형제를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은 쉽게 들릴지 모르나 실천해 보세요. 누구든지 이 말씀을 온전히 행할 수 있을 때에 그는 의인이 된 것이요, 하나님이 된 것이요, 도통을 한 것입니다.

이사람이 그것을 온전히 행하여 이루어진고로 여러분들이 매일같이 여기에 와서 이사람의 말씀을 듣고 또한 은혜를 받으면서 양심이 강한 힘을 얻어 나날이 그 말씀을 행하여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인이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전 인류가 의인이 될 때 진정한 도가 완성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이것이 도통하는 것입니다. 이사람이 완전히 도통한 첫 번째 사람인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시는 여러분들은 이사람과 똑같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고로 이사람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려면 여기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사람이 걸은 길을 조금씩이라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죽지 않는 몸, 불사영생체(不死永生體)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먼저 나오신 여러분들이 이루어지면 가족과 이웃, 나아가서 전 인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전 인류가 모두 의인이 되었을 때, 이 세상에 완전한 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이 멀리 하늘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요, 이 땅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도통의 길인 것입니다.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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