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정도령 만나 영생길 간다(下)

1989년 6월 7일 드디어 정도령을 만나다

1989년 6월 어느 날 자전거에 계란을 싣고 순천대학교 부근을 지나는데 길 우측에 반가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6월 7일에 정도령이 순천에 오신다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순천 아랫장날이다. 순천에는 2개의 장이 있는데 5일 10일은 웃장날이고 2일 7일은 아랫장날이다.
순천 장날은 전남에서도 큰 장날이라 매우 혼잡스런 날이다. 그날 장에 가보았으나 집회를 어디서 하는지 알 수 없기에 두리번거리는데 동천 뚝길에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승리제단이라고 쓰여 있어서 기사에게 집회장소를 물으니까 저쪽 시장 안 유명약국 2층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회장소로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설교말씀을 듣고 있었다. 정도령은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나이 많은 노인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사복에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설교 말씀은 우렁차고 얼굴이 환해 보였다. 집회가 끝나고 제단에 남아서 제단 식구들과 승사님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정도령님이 일꾼이 들어왔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해주었으나 당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21일 공부를 하려면 매일 제단을 나와야 한다고 하는데 낮에는 장사하느라 나갈 수가 없어 저녁 7시경에 나가기로 하여 송 수의과 원장과 같이 야간예배를 보기로 하였다. 송 원장이 나에게 정도령이 오셨다는 것을 알려는 주었지만 정도령을 내가 먼저 만나보게 되었고 그래서 송 원장과 같이 제단에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입문 한 달 후 집사람을 전도하여 지금까지 30년을 같이 나오고 있다.
저녁 시간에 송 원장과 같이 예배를 보는 도중 카메라로 비디오 화면을 촬영했는데 크게 대각선으로 이슬이 찍혀 나왔다. 그후로도 여러 판의 이슬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새로운 이슬이 찍혀 나와 정말 흥미롭고 신기하였다.

설교말씀을 자세히 들어보니 외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정도령이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위대한 구세주를 만났다는 생각에 너무나 가슴이 벅차고 마음이 뿌듯하였다. 격암유록 예언서에는 3대적덕을 한 집안 자손이나 정도령을 만날 수 있지 그렇지 않고 억지로는 만날 수 없다고 하였는데 과연 외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정도령은 아무나 만날 수 없는, 복된 집안의 자손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제단에 오래 나오면서 알게 되었다. 그 정도령이 성경의 주인공 이긴자 구세주요 불교의 주인공 해탈자 생미륵불이요 유교의 주인공 극기승자 진인이요 남사고 예언서 격암유록의 주인공 궁을십승 정도령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정도령이 모든 종교와 학문을 통일하는 완성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천도복숭아가 찍혀 나왔다

1991년 신미년 8월 12일은 구세주 정도령의 생신일이다. 회갑연 겸 백만제단 신축헌당식이 함께 열렸다. 많은 귀빈들과 윤치영 박사도 초청되었고 정도령님은 윤치영 박사와 같이 승리제단 간판 현판식도 가졌다.
헌당예배 도중 사진을 찍었다. 현상해 보니 천도복숭아가 찍혔다. 첫판에는 초록색과 분홍색배경에 분홍색 복숭아 1개 흰 복숭아 1개가 찍혔다. 둘째판에는 성도들 옆으로 하얀 복숭아 2개가 나란히 찍혔다. 정말 신기했다. 예배 장면을 찍었는데 어떻게 복숭아가 찍혔을까. 예배 장소에 과일상을 차려놓은 것도 아니고 복숭아를 갖다 놓은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분명히 복숭아는 찍혀 나왔다. 1장도 아닌 2장에 복숭아가 4개가 찍혀 나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도복숭아로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동안 우리 제단에서 성도들이 찍은 이슬사진이 수없이 많은데 그중에 천도복숭아가 찍혀 나온 것은 내가 찍은 게 유일하다. 부천은 원래 복사골이라 불렸다. 그런데 그 복사골인 부천 소사에 있는 역곡 승리제단에서 천도복숭아가 사진에 찍혀 나왔으니 앞으로 부천 소사에 하늘나라 지상천국이 건설될 것을 구세주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천도복숭아는 천국 무릉도원의 상징이요 에덴동산의 상징이라 하겠다.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라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다. 외할아버지께서 말씀하기를 마루에 앉아서 건너편 산에 있는 큰 바위를 손가락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계속 겨누고 있으면 종래에는 그 바위에 구멍이 뻥 뚫린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승리제단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나와야 구원이지 가끔 빠지면 구원이 없다고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사실 세상 살면서 매일 제단 나오는 것 쉽지 않을 일이다. 나는 다행이도 자영업을 하는 덕분에 열일 백일 다 제쳐두고 오직 제단 출석에만 집중했다. 영생이 귀하기 때문에 여러 모임에서 관광여행 가자고 했어도 이런저런 핑계로 다 거절했다.
올해로 영생길을 걸은 지 30년이 된다. 30년은 날짜로 치면 10950일이다. 참 긴 시간이다.

30년 이 영생길을 가는 동안 많은 영적 풍랑을 겪었지만 그 중 가장 큰 것 두 가지는 1994년 죄없는 구세주를 헌금사기범으로 몰아 구속시킨 풍랑과 구세주의 보광이다. 이런 억울한 사건을 겪으니 역시 이 세상은 너무나 악하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악해서 우리 승리제단과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아도 죽을힘을 다해서 참고 또 참으며 끝까지 따라가면 마지막에 아리랑 고개가 나온다. 그 고개 너머에 천국이 있다고 하셨다. 격암유록에 기록된 아리랑 고개 말이다.
아리랑고개의 참뜻은 세상 어느 지명이 아닌 인간 마음속에 있는 영적고개이다. 그 영적고개를 맨 처음 넘은 분이 바로 정도령님이요 그 다음 우리 승리제단 성도들이 따라 넘기 위해 열심히 도전하고 있다. 아리랑고개를 넘는 것과 매일 제단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과 바위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는 것 3가지를 짝을 맞추어 보면 끝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력, 매일 제단에 출석하는 정성, 그리고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을 정도의 집중력 3요소가 영생길을 가는 데 확신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승리제단의 역사 무엇을 의심하리요. 이 하나님의 제단, 영생의 제단, 추호도 의심할 게 없으니 우리 모두 끝까지 따라 갑시다. 하루도 빠지지 말고 영생길을 갑시다.

이 입문수기를 쓰게끔 영적으로 도와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30년간 주님께 배운 내용을 비록 천학으로 박식하지 못하지만 어두운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밝혀 보고자 합니다.*

오양현 / 순천제단 책임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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