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화목함을 지켜주시는 구세주님

작성자 : 최고관리자Date : 2014-02-24 11:46  |  Hit : 3,177  
   간증담.>>>석선자(64세,분부제단 권사) 가정의 화목함을 지켜주시는 구세주님  1988년 11월 어느 날 뒷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차 한 잔 마시자고 해서 놀러갔다가 차를 마시며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봤더니 절에 가서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나도 갈 수 없냐고 했더니 며칠 있다가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와서 가보니 그곳은 마산승리제단이었습니다.그곳은 난생 처음 들어본 곳이라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습니다.  뒷집 사람이 매일 가자고 해서 집에 있는 것도 심심하던 차에 매일 나갔는데 3일째 되는 날 일이 있어서 오늘은 못 간다고 했더니 안가면 안 된다기에 그런가 하며 또 갔습니다.부산에 가고 대구에도…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다보니 처음엔 무슨 말씀인지도 몰랐는데 어쨌든 이곳은 나쁜 곳은 아니다 옳은 말씀만 하신다고 여겨지고 집에 있는 것보다는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라 생각해 계속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화장실에서 썩은 피가 몸에서 나오기 시작했는데 썩은 송장냄새가 진동했고 옆의 사람이 냄새난다고 피할 만큼 지독했습니다. 그 기간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내가 가지고 있던 병이 다 낫고 몸이 가벼워지고 좋아져 그때가 45살이었는데 아무리 일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고 새벽5시에서 밤12시까지 일을 해도 몸이 쇳덩어리처럼 되어 아프거나 힘든 줄 모를 만큼 건강해졌습니다.  그 다음해 저희가 집을 짓게 되었는데 우리 땅에 집짓는 사람이 두 채를 지어 우리가 한 채를 갖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세무서에서 세금 500만원을 내라는 고지서가 나와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나온 세금은 안 내고는 안 된다며 모두 낼 수밖에 없다는 말만 했습니다. 낼 돈도 없고 고민을 하다 회계사를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서류를 준비해 찾아갔더니 집짓는 사람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집 지은 사람과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 즈음에 국가 정책적으로 세무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해 정책차원에서 추진되는 일이라 그 일이 더 빨리 해결되어 서류비로 단돈 5만원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정책이 바뀌면서도 해결이 되어가는 걸 수없이 경험해왔습니다.또 한 번은 시가 댁에서 굿을 하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평소에 굿할 때 기도하면 굿이 안 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주님의 얼굴을 새기고 기도를 하니 무당이 2시간이 지나도 땀만 흘리고 입이 안 떨어져 굿을 못하고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오늘 굿은 안 될 것 같으니 그만 하라고 하니 그 무당이 그냥 가버린 일도 있었습니다.그리고 산소에 가면서 뱀이 지나가는데 주님의 얼굴을 새기고 기도하면 뱀도 꼼짝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장난삼아 그렇게 했더니 진짜로 뱀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있어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저는 다른 성도님들보다도 집안 전도를 쉽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제단에 나온 지 4, 5일쯤 지났을 때였는데 진해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언니야, 어디 좋은 데 없나? 너무 답답하다.” 그래서 저는 “그럼, 빨리 와라. 내가 가는데 가자.”라고 대답했는데 다음 날 진해 동생 부부가 제 집에 찾아왔습니다. “오늘 내 가는데 따라 가자.” 이 말 한마디에 제 동생은 승리제단에 입문하게 되었고 약 1주일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고정관념과 싸우더니 마침내 승리제단의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얼마 안가서 동생 부부 모두가 전도되었습니다.  또 며칠 있다가 시골에 계신 저의 친정어머니께서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종갓집 며느리로서 일평생 고생을 하며 살아오셨는데 그러다가보니 몸에 병이 생기게 되었고 특히 위장병이 심했습니다. 병원에서는 포기를 하며 퇴원을 권유하였습니다.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을 하고 있는 친정어머니께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심심한데 내 따라 가볼래?” 이랬더니 친정어머니는 “그래. 심심하던 차에 잘 됐네. 가보자.”라고 대답하시고는 그 이후부터 승리제단에 계속 다니시게 되었으며 병원에서조차 포기를 했던 위장병과 그 이외의 병들이 말끔히 없어지게 되었습니다.그때 어머니의 연세가 69세고 일십팔년이 지난 지금은 87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머니의 육체적 나이는 같은 동네에 사는 60대 사람들보다도 훨씬 어립니다.  왜냐하면 요 근래 어머니가 동네 길을 다닐 때에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손에 물건을 들고도 그냥 몸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동네 아줌마들보다 훨씬 빠르게 걸어 다니신다는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다음해 1989년 4월 큰 딸이 대학교 2학년에 다닐 때인데 새 식구 전도 열풍이 불어 큰 딸을 전도는 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 내가 꼭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는데 다른 사람은 다 해결했지만 나만 못했다. 그래서 내가 눈총을 받게 생겨 참 곤란한 지경에 있는데 네가 해결해주면 안되겠나?” 큰 딸은 “그게 뭔데?” 이렇게 물어보았고 저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가주는 게 숙제다.”라고 말입니다. 딸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잠깐 가는 거야 그리 나쁜 게 아니니까 숙제 하나 해결해주지 뭐.”라고 대답했습니다.  큰 딸은 제가 전도를 하기는 했지만 제단에 먼저 와 있었던 대학교 과 선배들의 용광로 같은 분위기 속에서 금방 영생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참 많은 일을 겪으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할 때 분명하고도 명확한 답을 찾도록 제시해 주었고 그렇게 해서 여태까지 주님을 따라온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단 나오기 전 3년을 밤마다 저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불러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저의 간절한 바람이 지금에 와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또한 세상에서 살 때 항상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과는 다른 좀 더 좋은 세상이 없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을 동경하며 항상 맘속에 품고 살았는데 여기 승리제단에 와서 보니 하나님의 역사 그 자체가 실제로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꿈에서나 뵐 수 있을까 생각한 이 세상 으뜸가는 하나님의 본체를 만나 만가지 복을 받고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하나님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정리 이승우 기자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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